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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스키가 홈런타자보다 "수비형 선수"를 추천한 이유

by 토아일당 2015. 4. 30.

사도스키가 홈런타자보다 "수비형선수"를 추천한 이유, 

그리고 잭한나한 실종에 대한 또다른 아쉬움




라이언 사도스키(Ryan Keith Sadowski)는 은퇴 이후에 더 유명해진 특이한 이력의 선수입니다.  2009년부터 3시즌 동안 롯데자이언츠에서 뛰며 남긴 기록은 썩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리 좋지도 않습니다.  고만고만한 스쳐가는 흔한 외국인 투수 중 한 명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뛰어난 분석가로서 알려진 것은 2013년 WBC에서 네덜란드 대표팀에 제공했던 한국에 대한 분석보고서부터 였습니다.   그의 스카우팅 리포트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름 괜찮은 전력을 꾸려 참가했던 한국대표팀은 네덜란드에게 불의의 패배를 당했고 본선 1라운드에서 탈락합니다.  앞의 2번의 대회에서 2연속 준우승을 했던 것과는 판이한 결과였죠.


사도스키 리포트 (투수편) - http://baseball-in-play.com/36

사도스키 리포트 (야수편) - http://baseball-in-play.com/37


사도스키 리포트가 스마트한 분석가로서 그의 명성을 가져다주었다면 같은해 NC에서 방출된 외국인 투수 아담 윌크와의 sns 설전은 개념있는 “친한파” 캐릭터를 만들어주었습니다.  


아담윌크가 뜬금없이 한국을 “언제라도 배를 타고 일본으로 도망갈 준비를 해야 하는 나라”로 비하한 것으로 팬들이 분개하고 있을 때 라이언 사도스키는 '내가 한국에서 겪었던 생활과 야구인생이랑은 다른 이야기들이다. 난 창원과 마산에서 생활했을 때 항상 안전하다고 느꼈고 한국 생활을 즐기고 굉장히 만족했었다'고 SNS를 통해 밝히며 부글거리던 이들의 환호를 받았습니다.


그는 KBO로 이적하는 외국인선수에 대한 컨설팅 등을 하다가 올해부터 롯데자이언츠의 프론트오피스의 외국인 스카우팅 및 코치 업무로 합류한 상태입니다.  게다가 시즌 초반 롯데의 외국인선수들이 잘나가고 있는 것과 맞물려 탁월한 책략가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지난 2014년 한국의 야구팬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외국인선수 스카우팅에 대한 의견을 밝힌 적이 있습니다.


또 하나의 [사도스키 리포트]


빽빽하게 채워진 A4 4장 분량의 영어와 한국어로 함께 작성된 이 리포트는 KBO구단의 외국인선수 평가가 툴(tool) 즉 기술과 운동능력에만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대신 세이버메트릭스로 대표되는 통계와 데이터에 기반한 평가는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죠.  여기까지는 대략 많은 팬들도 동의할 만한 의견입니다. 오히려 KBO구단의 뒤떨어진 운영방식을 비판할 만한 근거였죠.


그런데 이 리포트에는 또 다른 중요하고 다소 실험적인 아이디어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구단이 홈런 30개 이상을 쳐줄 거포형 외국인타자를 선호하는 관점에 대한 비판이었습니다.  


"대부분의 팀들은 가장 큰 장타력을 소지한 타자를 찾는데 중점을 뒀고 이런 선수들은 주로 수비력이 뛰어나지 않은 1루수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국내파 1루수 포지션은 KBO에서 수비능력이 가장 뛰어난 포지션 중 하나 입니다. 그리하여 WAR 4.25의 가치가 있는 외국인 1루수 선수 영입은 현명한 선택으로 보일 수 있지만 국내파 1루수 선수가 WAR 2.0의 가치가 있다면, 새로 영입된 외국인 1루수 선수의 진정한 가치는 WAR 2.25 (4.25-2.0), 즉 리그 평균 이하가 됩니다."


사도스키는 KBO와 MLB 사이의 가장 큰 격차는 (장타력이 아니라) 수비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세이버메트릭스 수비지표 DER로 측정했을 때, MLB의 리그평균 수비효율성은 0.690 정도인데 KBO는 0.650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사도스키가 말한 이 데이터는 약간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2014년의 경우는 KBO의 리그평균DER은 그가 말한 것과 비슷하지만 13시즌이나 12시즌의 경우 이보다 좀더 높습니다.  2014년은 유독 수비효율성이 나빴던 시즌입니다.)


외국인선수는 팀당 3명보유,2명출전으로 제한된 희소한 자원인데 이왕이면 그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하는 것이 구단의 당연한 니즈입니다.  대체로는 국내에서는 찾기 어려운 30홈런+ 수준의 거포가 최선의 옵션이라 믿어왔습니다.   하지만 사도스키는 오히려 수비를 잘하는 야수가 영입효과를 더 극대화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수비형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는 것이 KBO팀들에게 더 이익이다


지명타자를 제외하면 타자는 곧 수비수입니다.  통계적으로는 타격45% 주루5% 투수 30% 수비 20% 정도의 비중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따라서 야수는 타격이로든 수비로든 득점이나 실점억제에 기여하면 되는 것은 맞습니다.  


MLB기준으로는 수비능력에서 평균 혹은 그 이하의 수준으로 평가받는 선수들이 KBO에 오면 최상급 수비수가 되었던 사례들을 보면 사도스키의 주장이 일리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 수비능력이 30홈런 이상을 쳐주는 거포들만큼 가치있을 수 있을까요?



다음과 같은 2명의 외국인 선수가 있다면 어느 쪽이 더 나을까요?  일단 자기 포지션의 수비능력은 정확히 리그평균이라고 가정한다면요. 

 

A: 0.343 / 0.422 / 0.688 / 1.111   514타석 37홈런 (1루수)

B: 0.321 / 0.388 / 0.475 / 0.864   550타석 12홈런 (3루수)


B도 나쁘지 않은 선수지만 A의 파괴력이 워낙 엄청납니다.  A는 NC의 테임즈 B는 롯데의 황재균입니다.  똑같이 550타석에 선다고 가정하면 A는 한시즌 동안 +129점의 팀득점 기여도를 가지게 되고 B는 그보다 40점 적은 +89점의 팀득점 기여도를 가지게 됩니다. (14시즌 wRC기준) 

당연히 아주 큰 차이입니다.   4승 정도의 승리기여도 차이이기 때문에 승차로는 8경기가 벌어집니다.  단, 둘은 포지션이 다릅니다.  


참고 - 2014년 KBO 9개팀 포지션별 공격력 http://baseball-in-play.com/155


2014시즌 리그최하수준 장타력 때문에 팀득점 최하위권이었던 엘지트윈스가 1루수 에릭테임즈와 3루수 휴안 잭퀸(황재균과 같은 타격능력을 가진 가상의 외국인선수) 둘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면 누구를 골라야 할까요?


만약 에릭테임즈가 트윈스의 1루수가 되면14시즌보다 +20점 정도 팀득점이 늘어납니다.  테임즈는 타격에서 +129점 효과의 선수인데, 원래 1루수였던 정성훈이 +109점 효과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차이만큼 입니다.   2승 정도를 더 거둘 것이고 한칸 높은 순위팀과 승차가 4경기 줄어듭니다.  


마법? 전략?  37홈런보다 12홈런이 더 가치있는 이유


그런데 휴안 잭퀸을 영입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는 시즌 전체로 팀득점 +89점을 기여하는 타자입니다.  그런데 14시즌 3루수였던 손주인은 +63점/시즌 타자입니다.  그렇다면 팀득점은 손주인과 잭퀸의 차이인 +26점 늘어나게 됩니다.  이런 팀은 테임즈을 영입하는 것보다 황재균 급의 3루수를 영입하는 것이 더 이익이란 뜻입니다.  


잠깐. 아직 수비능력의 차이는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MLB에서 수비능력 상위권 3루수는 리그평균선수에 비해 한시즌 약 +10점에서 +15점 정도를 수비에서 벌어들입니다.  (2010-2014년 5시즌 동안 MLB 각팀 3루 포지션 선수의 UZR 데이터 기준)  선수층이 상대적으로 얇은 KBO의 경우 수비력 상위선수와 평균선수 사이의 격차가 더 클수도 있습니다.  


만약 1)3루수 포지션 선수들의 수비력 격차가 MLB와 비슷한 분포이고  2)황재균 수준의 공격력을 가진 그 선수가 KBO에서 상위 15% 수준의 수비력을 가지고 있다면 --- KBO의 적은 경기수를 감안해도 +10득점 정도를 수비에서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스키의 말대로 1루수 포지션의 경우는 한국선수와 외국인선수의 수비능력이 별 차이가 없다면 에릭테임즈 영입의 전력상승효과는 타격에서 +20득점 수비에서 +0득점이고, 후안 잭퀸의 영입효과는 타격에서 +26득점 수비에서 +10득점 합쳐서 +36점이 됩니다.  


금쪽같은 외국인타자 자리를, 14시즌 같은 타고상황에서 기껏 10개 좀 넘는 홈런밖에 기록하지 못하는 황재균 급의 선수에게 할애하는 것은 바보같은 선택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최선의 영입으로 보였던 엘지트윈스의 잭 한나한 계약


15시즌을 앞두고 엘지트윈스는 잭 한나한과 계약했습니다.   MLB 기준으로는 썩 좋은 타격이 아니었다 해도 두 리그의 수준차이를 고려했을 때 후안 잭퀸 수준의 공격력을 기대하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게다가 수비능력은 적어도 경력상으로 급이 다른 수준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사도스키가 지난 2014년 "The current state of player evaluation in Korea" 에서 제언한 외국인선수 영입전략에 가장 잘 어울릴만한 사례는 잭 한나한과의 계약입니다.  기존에 KBO구단이 가지고 있던 보통의 영입방향과는 달랐고 스마트하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서 드러났습니다.  잭 한나한은 시범경기를 포함해서 한타석의 타격도, 한이닝의 수비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잘하고 있으며 이제 곧 경기에 나설 것이라는 구단의 설명은 점점 미뤄지며 어느새 4월도 다 지나갔습니다.  공교롭게 똑같이 3루수 포지션인 두산베어스의 잭루츠도 잠시 얼굴을 비춘 것만 다를 뿐 현재 전력외에 가깝습니다.  


잠실을 함께 사용하는 두팀의 관계자나 팬들은 에릭 테임즈나 브렛 필 같은 경쟁팀의 외국인타자들이 무시무시한 화력을 과시할 때마다 쓰린 속을 달래야 하는 처지에 있습니다.  동시에 거포형이 아닌 "수비형 외국인선수"라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과연 얼만큼이나 실제로 유용한지 확인해볼 수 있는 기회도 점점 멀어져갑니다.


KBO의 프론트야구를 볼 기회를 잃은 것 혹은 프론트야구의 현실을 깨달은 것


KBO리그가 외국인선수를 허용한 것은 1998년부터이고, 3명보유 2명 출전으로 룰이 바뀐 것이 지난 2014년입니다.  외국인선수 3명을 모두 투수로 구성할 수 없기 때문에 최소 타자1명이 포합됩니다.  KBO는 선수층이 얇고 병역의무기간도 있습니다.   반면 선수시장은 활성화어 있지 못합니다.  단일리그이고 구단수가 적으며 FA자격을 취득하기 까지 기간도 깁니다.  보상규정이 무겁기 때문에 리그급 몇명을 제외하면 FA제도 조차 유명무실합니다. 


프로구단의 전력구성이 육성과 거래 두가지로 이루어져있다면 KBO에서는 그중 하나만 실질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셈입니다.  외국인선수 구성은 보강은 그나마 프론트오피스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부분이며 이를 통한 다양한 전력보강전략 역시 프로스포츠의 재미 중 일부입니다.  그에비하면 로또를 사듯 고만고만한 거포 뚱보들을 데리고와서 터질지 아닐지를 그저 지켜보는 정도라면 아쉬운게 당연합니다.  


사도스키의 “수비형 외국인선수 영입전략”은 그래서 신선했고 마침 2015시즌 그에 딱 맞는 한나한 영입은 KBO의 새로운 즐길거리 일 수 있었습니다.  잭 한나한의 기약없는 실종이 더 아쉬운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