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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팀 캔자스시티의 야구는 3세대 머니볼일까?

by 토아일당 2016. 1. 27.


야구통계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라면, 오프시즌은 그리 나쁘지 않은 시간입니다.  매일 매일 데이터가 갱신되고 깊이있는 분석이 그를 따라갈 시간적 여유가 없는 시즌 중 보다 오히려 더 재미있는 읽을 거리가 많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대체로 미국 이야기입니다.  지난 가을 즈음엔 올 겨울에 한국도 그리 만들어보겠다고 내심 벼르고 있었는데 막상 닥치니 쉽지 않네요.)


미국에서 최근 화두 중 하나는 [프로젝션]입니다.  세이버메트릭스 성향의 주요 미디어들, 분석가 그룹들은 이런 저런 프로젝션을 시즌 전에 내놓습니다.  몇강 몇약 이렇게 대충 에두르는게 아니라 어느 선수는 홈런 몇 개, 2루타 몇 개, 불넷 몇 개 그리하여 슬래시라인이 어떻고 어느 팀은 몇 승 몇 패 이렇게 아주 구체적으로. 


시즌 예상이야 한국서도 늘 하는 것이지만, 최근 10여년 동안 세이버메트릭스의 정밀함으로 무장한 MLB의 프로젝션들은 상당한 정확도를 인정받아왔기 때문에 차이가 있습니다.


프로젝션, 챔피언 팀에게 물먹다!!!


그런데 지난 시즌 챔피언 캔자스시티 로열즈는 벌써 3년째 자신만만했던 프로젝션을 완전히 뛰어넘는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지난 1월20일 팬그래프에 올라온 글은 이런 결과가 그들이 오랬동안 갈고 닦아 정확도와 예측력을 인정받아 왔던 프로젝션 알고리즘의 결함이 노출된 것인지 아니면 우연이거나 또다른 이유 때문이었는지를 논하고 있습니다.  (팬그래프의 이 글 말고도 “어긋난 프로젝션”이라는 주제는 최근 그쪽 미디어에서 핫하게 다루어지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The Royals Haven’t Been the Projections’ Biggest Miss

http://www.fangraphs.com/blogs/the-royals-havent-been-the-projections-biggest-miss/


--- 한국에서는, 시즌 전 예상이 맞으면 뉴스가 되지만, 저 동네에서는 프로젝션이 틀리다는게 뉴스꺼리가 된 것도 재미있습니다.     


캔자스시티 로열즈는 지난 2시즌 동안 프로젝션에서는 별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2시즌 연속 최종 시리즈에 진출했고 작년엔 시즌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글은, “캔자스시티가 문제가 아니라 피츠버그가 더 문제”라고 말하고 있긴 한데, 좀 궁색합니다.    통념의 뒤통수를 노리며 반전을 부각시키는 것이 그네들의 흔한 글 스타일이기도 하고 그런 면에서, 정작 피츠버그가 더 크게 프로젝션을 벗어났다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동안 자신만만 야구를 논해오던 프로젝션 시스템을 로열즈가 제대로 물먹인 것은 사실이니까요. 


변종 팀 캔자스시티 로열즈 등장


2000년대 중반 이후, 세이버메트릭스가 야구 패러다임을 완전히 지배하게 되면서 나름 강고하게 자리잡은 관점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 홈런과 볼넷, 즉 장타와 출루가 가장 중요하다.

- 장타능력이 없는 똑딱이 컨택터는 과대평가되어 왔다.  그들은 보기보다 득점생산성에서 별로다.

- 도루와 불펜투수 역시 전통적 야구관에서 지나치게 과대평가되어 왔던 항목이며 별로 중요하지 않다.  

- BABIP 즉 배트에 맞아 인플레된 타격 결과는 우연이다.  잔루처리율 LOB% 역시 “위기관리능력” 따위로 과장되어 왔지만 의미없다.  


그런데 캔자스시티 로열즈의 팀 스탯은 좀 묘합니다.    


우선, 팀홈런은 전체 30개 팀 중 24위입니다. 지명타자가 있는 AL 만 놓고 보면 끝에서 2번째 입니다.   1위 토론토 블루제이즈의 232개보다 100개 가까이 적은 139개.  볼넷을 골라낸 비율 BB%는 심지어 전체 최하위(30위).  


출루율은 11위로 그나마 좀 낫습니다.  그런데 이는 0.269 로 전체 3위에 오른 타율 덕분입니다.  순장타율(IsoP) 은 0.144 로 21위.  그러니까, 타율은 꽤 높지만 장타능력은 없는 똑딱이들이었고 그나마 눈야구도 안되는 팀이었다는 뜻입니다.  


반면 세이버메트리션들이 “의미없다”며 폄훼해온 부분에서는 발군의 퍼포먼스를 냈습니다.   도루 104개로 전체 4위, AL에서는 휴스턴에 이어 2위입니다.   팀ERA는 12위로 그럭저럭인데 불펜투수 ERA만 따지면 2.69 로 리그평균보다 1.1이 낮은 1위(AL)입니다.  불펜이 소화한 이닝 역시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4번째로 많았습니다.  잔루처리율은 80.8%로 전체 2위.  


스몰볼+불펜중심 = 설마 김성근식 야구?


대충 세이버메트릭스에 중요하다는 것들은 대체로 그저 그렇거나 오히려 아주 나쁜 편이었고, 전통적으로 과대평가되었왔으나 실상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부분에서는 탁월했습니다.  그렇게 2시즌 연속 최종 시리즈에 진출했고 지난 15시즌 마지막 경기에 이긴 팀이 캔자스시티 로열즈입니다.  물론 주루와 불펜 뿐 아니라 강한 수비 역시 그들의 승리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좀 비약하면) 설마, 캔자스시티의 야구란 것이 “김성근식 야구” 같은 것일까요?  섬세한 주루 + 강한 수비 + 불펜중심의 투수운영.(물론 혹사는 빼고)   이렇게 보면 비슷한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스몰볼” 은 이미 시대착오적인 구시대 야구가 아니었든가요?


이런 스타일을 가졌으니 전형적인 세이버메트릭스 방법론에 기초해서 디자인된 프로젝션 시스템에서 그 퍼포먼스를 정확히 계산해내기 어려웠던 것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캔자스시티 로열즈는 세이버메트릭스 성향이 강한 팀입니다.  지난 해 초 ESPN가 모든 MLB 팀을 데이터드리븐 성향에 따라 5단계로 분류했을 때,  ‘올인’ 9개 팀 다음인 ‘신뢰’ 7개 팀에 속합니다. 페이롤은112M$ 로 전체 17위니까 딱 중간입니다.   다저스나 양키즈처럼 부자 팀도 아니고 그렇다고 휴스턴이나 템파베이 같은 극단적인 저예산 팀도 아닌 셈이죠.


1세대 머니볼 오클랜드의 OPS 야구가 세이버메트릭스의 본류였던 것은 이미 10년도 더 된 아득한 옛날 이야기이고 2010년대 이후에는 2세대 머니볼 템파베이가 구축한 수비중심주의가 더 강세였습니다. 


최근 가장 옥소도스한 세이버메트릭스 팀이며 15시즌 페이롤 29위인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집착이라 느껴질 정도의 수비시프트를 시도하며 2세대 머니볼의 극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견고한 수비를 바탕에 둔다는 면에서 캔자스시티 역시 여기에 속할 수도 있지만 불펜과 주루를 중시하는 면에서는 또 좀 다릅니다. 


그들은 이런 야구로 2시즌 연속 리그 최강팀으로 군림했으며 그런 스타일이 단기전에 약할 것이라는 예상도 깨버리며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캔자스시티 로열즈는 아직 뭐라 정의하기 힘든 “3세대 팀”일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승리 레시피


그런데, 로열즈의 가장 전형적인 팀컬러인 “불펜야구”는 이미 2010년대 초반 세이버메트릭스 비주류 쪽에서 종종 거론해온 틈새전략이기도 합니다.   세이버메트릭스가 MLB 구단운영의 중심 전략이 되면서 WAR 같은 선수평가 지표가 저평가하는 [불펜투수]들의 시장가격이 실제 승리기여도에 비해 낮아졌다는 주장이었습니다.  하여 불펜투수에 투자하는 것이 새로운 머니볼이라는 맥락이 되죠.


종종 이야기하지만 머니볼의 본질은 절대불편의 승리 레시피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져평가된 승리요인을 끊임없이 “새롭게” 해석하고 찾아내는 과정이며 그 결과로 생기는 “정보의 비대칭성”에 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출루율의 야구, 수비효율성의 야구에 이어 캔자스시티는 또 한번 저평가된 승리요인을 먼저 찾아내고 전략에 써먹은 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이버메트릭스이 가치는 “야구에 관한 객관적 지식의 추구”입니다.  그런데 절대불편의 진리가 없는 한 “객관적”이란 것은 새로운 것에 대해 늘 열려있는 “유연성”과 “개방성” 과 동의어가 되어야 합니다.  게다가 한때 창조적 혁신이었던 것이 주류의 지배자가 되면서 스스로 도그마로 변하는 것이 흔한 일이니 그것은 부단한 자기비판, 자기혁신을 의미할 수도 있겠죠.


이젠 (적어도 미국에서는) 세이버메트릭스도 그 안에서 주류와 비주류를 구분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프로젝션 실패를 두고 아직은 주류 내부에서 “우리가 틀렸다”고 말하는 것 같진 않습니다.   물론 한 두시즌이 더 지나고 나서 캔자스시티나 피츠버그의 성공이 그저 반복된 우연에 불과했다는 결론이 날 수도 있겠죠.  


“야구 몰라요”란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모르니까 그냥 대충 하자거나 아니면 뭐든 다 결과론이니 닥치고 야구하던 사람들에게 맡겨라는 식이라면 틀린 것이고, 오늘 맞았던 패러다임이 내일은 틀릴 수도 있다고 하는 의미에서라면 맞는 것입니다.  


그저, 신비롭고 아득한 불확실성에 맞서 치열하게 그리고 할 수 있는 최선의 정교함을 쫒아 싸워가는 과정이 의미있는 일입니다. 데이터가 있을 때 야구가 더 매력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붙임 -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받은 몇가지 피드백에 대한 대답 겸 보충 겸 붙여봅니다.


1. 캔자스시티 야구의 특징은, 불펜중심, 강한수비, 적은 홈런, 적은 볼넷 말고도 몇가지가 더 있습니다.  일단 K%가 리그에서 제일 낮습니다.  삼진을 거의 안당합니다.  볼넷도 적은데 삼진도 적으니 그만큼 인플레이 타구가 많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강한 수비가 [넓은 레인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2. 홈구장이 약간 특이합니다.  최근 5년 정도를 볼 때, 득점팩터는 평균이상인데, 홈런팩터는 대체로 0.8 근처일 겁니다.  반면 2루타, 3루타 팩터가 꽤 높습니다.  따라서 담장을 넘길 수 있는 홈런파워를 가진 타자들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면도 있습니다.  한국의 잠실이 그렇듯이 쎄게 쳐도 잘 안넘어가니까, 홈런파워가 있는 타자들과 그렇지 못하고 담장 근처까지만 타구를 날릴 수 있는 타자 사이의 생산성 차이가 좀 줄어드는거죠.  

이런 경우, 

1) 전형적인 홈런타자가 아니라 컨택이 무난한 중장거리형 타자입장에서, 인플레이 타구가 많아지는 것은 이로울 수도 있습니다.  홈런 아닌 장타 확율이 높을테니까요.  

2) 그런데 투수입장에서는 반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인플레이 타구를 허용할 때 위험이 커진다는 뜻도 됩니다. 해서 수비수들의 레인지 효과가 다른 구장보다 더 커질 겁니다.  필딩런+가 높은, 특히 레인지에 의한 필딩런+ 가 높은 캔자스의 수비가 이런 조건에 최적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도 됩니다.


*** 그런데, 애매한 것은, 캔자스시티가 그렇다면 원정경기에 비해 홈경기에 특별히 더 강했냐 하면 그렇진 않았습니다. 홈경기 승률이 좀더 높긴 하지만, MLB의 경우 일반적으로 원정경기에 비해 홈경기 성적이 좋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비교할 필요가 있습니다.  홈경기 승수는 AL 3위, 원정경기 승수가 AL 2위니까 오히려 원정경기에 더 강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2014년에는 더했습니다. 홈경기 승률은 AL 8위 밖에 되지 않았는데, 원정경기 승률이 1위였습니다. 

그러니 캔자스시티의 성공을 "구장 최적화"에서 찾는 것도 무조건 정답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 게다가 홈런이 아닌 안타 팩터가 높다고 해도, 볼넷출루의 뒷받침 없이 충분한 득점생산성을 확보할 수 있을만큼의 차이냐 라는 것도 관건이죠.  홈런에 대한 불리함은 우리팀 타자나 상대팀 타자나 같지만, 볼넷에 관한 승부전략은 그에 영향을 받지 않으니까요. 


3. 결과적으로 캔자스시티 타자들의 전략이 주류를 벗어난 것은 사실입니다.  15시즌 기준으로 그들의 존컨택%는 리그1위입니다.  그런데 O컨택%와 O스윙% 역시 꽤 높습니다.  즉, 스트라이크만 골라 친 결과라기 보다는, 왠만하면 치고 나간 결과로 Z컨택%가 높아졌다고 보는게 더 개연적입니다.  그런데 이런 식의 타격전략은 오클랜드의 머니볼 임팩트 이후, 빨리 승부하지 말고 왠만하면 공 한개라도 더 보면서 투구수를 늘리고 볼넷을 노리는게 이롭다는 OPS지향 전략과는 배치됩니다.  장타능력이 있고 볼넷을 많이 고르는 타자를 최고로 쳐온 최근 10년 동안의 타자가치평가기준과도 좀 다르죠.  


요컨데, 오클랜드의 머니볼 임팩트 이후 올드스쿨 야구를 무력화시키며, 10년 정도 경기전략을 이끌어온 세이버메트릭스의 대세와는 약간 비껴진 선택을 한 팀이긴 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올드스쿨은 전혀 아니지만요.  해서, 세이버메트릭스에도 이제 주류와 비주류의 구분이 필요할 수 있다 썼고, 로열즈는 주류라고 보기엔 뭔가 좀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