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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입장권을 합리적으로 배분하는 방법

by 토아일당 2016. 3. 24.


1. 

곧 시즌이 시작된다. 늘 그랬듯이 표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젠 아이와 함께 가야 하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좀더 좁아졌다. 계열사 초대권 같은 경로가 아니라면 현재 야구장 표가 배분되는 방법은 선착순이다. 유료이긴 하지만 대체로는 아주 부담될 정도로 비싸진 않다. 따라서 가격보다는 부지런한 클릭질이 관건이다. 이것은 합리적일까?


2. 

아내와 (그땐 호칭이 달랐지만) 한참 야구장을 다닐 때 난 표를 한장 더 사곤 했다. 좌석은 좁았고 바닥에도 무릎 위에도 가방과 먹거리를 쌓아두긴 어려웠기 때문이고, 또 비기너였던 그녀에게 이왕이면 야구장에 관한 좋은 기억을 쌓아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선호하는 좌석이 어차피 응원석은 아니었고 블루 윗층이거나 포수 뒤쪽 자리였기 때문에도 그랬다. 하지만 사람이 꽉 들어차는 그런 날이면 내가 빼앗은 다른 한 명의 기회에 대해 좀 멋적고 미안한 기분은 늘 남았다.


3. 

유료 멤버쉽이라도 좋으니, 팀의 회원들 즉 나름 충성고객에게 티켓구매에 우선권을 주면 좋겠다는 바램은 늘 있어왔다. 실제로 하루나 단 몇시간이라도 먼저 예매 서비스를 오픈해주는 구단도 있는 걸로 안다. 시즌권까지 사긴 가격이든 관람여유든 잘 없는 그러나 팀에 대한 충성심과 야구에 대한 열정은 뒤지지 않는 그런 이들에게는 정말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공평함에 대한 시비, 암표장사꾼들의 어뷰징 걱정 같은 것이 또 따라 붙는다.


4. 

야구관람이라는 면에서, 자원의 합리적 배분이란 수요와 공급이 적정선에서 일치하는 것이다. 이 적정선이란 그저 기계적으로 수요-공급이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 균형점이 우리가 생각하는 가치에 부합하는 근방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원하는 사람이 관람기회를 가지는 것을 말하고 그것을 통해 야구가 더 의미있는 문화로 자리잡는 것을 말한다.  


공급을 늘리는 방법이 있다. 더 큰 야구장을 만들면 된다.  하지만 수요-공급이 일치하면서 공급자가 적정 이윤을 보장받기 어렵다. 공급을 늘릴수 있는 동기가 없으며 또 공급이 늘어나기까지 아주 많은 시간이 걸린다. 수요 불확실성으로 인한 비용 역시 아주 크다. 3년 후에 새로운 구장이 만들어졌다 쳐도 지금의 수요가 그때와 같다는 보장이 없다.


경기수를 늘릴 수도 있다. 하지만 1년에 야구할 수 있는 기간은 정해져있고 희소성이 높은 주말경기 횟수 역시 뻔하다. 공급확대에는 한계가 있다.


5. 

수요를 줄이는 방법도 있다. 우선은 가격이다. 표값이 비싸지면 표구하기는 좀더 쉬워질 수도 있다. 하지만 가난한 이들도 야구장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싼 표값이 관람에서 설사 좀더 합리적이라 해도 프로야구 비즈니스는 방송중계나 머천다이징을 포함한다. 경기장 접근성 약화는 입장수익 기준의 수익모델에서 설사 효율적이라 해도 프로야구 비즈니스 전체의 합리성에 반할 수도 있다.

물론, 아직은 가격인상의 여지가 조금은 더 남아있을 수 있다.


6. 

수요 측면이든, 공급 측면이든 --- 지금보다 좀더 최적점으로 이동할 여지가 있다 해도 시장의 불합리성이 그걸 가로막는 것도 현실이다. 


입장수입에서 홈팀의 몫은 작다. 구장 소유자인 지자체 몫도 그렇지만 서울에 지나치게 편중된 지역문화로 원정팬 관중의 비중이 크다보니 원정팀과 다시 갈라먹는 것 역시 공급주체에 대한 합리적 시장결정을 교란한다. 


프로야구단에게 구장의 소유권을 주는 것 역시 당장 답기 되긴 어렵다. 미쿡의 예를들어 그런 주장을 하는 이도 많지만, 그 미쿡 조차 구장에 대한 운영권을 갖는 것이지 소유권을 갖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운영권 조차 그것을 구단이 가진다 해도 합리적 수익창출에 별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몇해 전 한참 논란이 되던 잠실구장의 광고권 문제는 오도된 부분이 많다.  그 전에 엘두가 광고운영권을 갖고 있었을 때 그들은 광고수익을 내는데 거의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광고수익이 늘어난 것은 서울시가 광고운영권을 회수하고 난 이후였다. 

돈 버는데 관심이 없는 주체는 시장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지 않는다.


7. 

좀 달리 생각해보자. 구단이 팬커뮤니티를 만들고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활동에 대해 마일리지를 준다. 쌓인 마일리지가 정한 수준을 넘으면 티켓 구매에 우선권을 준다면? 즉 경제적 비용이 아니라 비경제적 비용으로 수요를 조절하는 것이다. 충성도.라는 가격이 표에 매겨진다. 좋은 방법인가? 흥미롭긴 하지만 좋은 방법은 아닐 수도 있다. 


페북이란 [좋아요]를 얻기 위해 가족도 팔아먹는 곳이란 어떤 비아냥처럼 악화는 아주 자주 양화를 구축하는 법이다. 즉 어뷰징이 오히려 팬덤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  일부겠지만 요즘도 가끔 단관카페들이 일으키는 문제들이 더 만연해질 수도 있다.  


설사 이런 비경제적 비용 부과가 잘 작동한다 해도 기회균등이 또 문제가 된다. 어린아이들, 노인들, 장애인들은 어쩔까? 그들은 팬덤 안에서 두각을 나타나고 활동을 하기가 애당초 어렵다.


8. 

쿼터제? 한 사람이 월단위로 관람할 수 있는 최대기회를 제안하는 것이다. 말도 안된다. 그런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도 문제이니 별 실효과 없을 것이며 야구장 가겠다는 열성팬을 왜 막아야 하나?


9. 

애당초 희소성 기준으로 최상위 재화를 두고 합리적이며 효율적이고 동시에 공정하기까지만 배분방법을 찾는 것이 넌센스였을지도 로른다. 그렇다면 방법이 없을까?


10. 

스무살때 쯤 영국을 여행한 적 있었다. 겪은 문화충격 중에 [콜라]의 다양성이 있었다. 코카콜라나 펩시콜라가 2000원쯤일 때 (그쪽 말로) 로컬콜라는 800원 쯤이었다. 기분에 따라 맛이 덜하다 느낄 수는 있지만 시원하게 목을 축이는데는 별 부족함이 없었다. 돈이 없으니 비지떡을 사먹는 것과는 달랐다. 그것은 선택의 다양성 문제였다.


공급자 측면에서도 좋은 일이었다. 펩시나 코카콜라가 아니면 왜 콜라비즈니스를 할 수 없어야 하나? 아마도 작은 기업들이 비즈니스 기회를 가질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은 고용을 얻었을 것이다.


회소성 기준의 최상위 재화 말고도, 그밖의 다른 시장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퓨처스리그 이야기다. 또는 로컬리그나 로컬팀 아니면 독립리그 팀의 문제일 수도 있다.


11. 

고등학교 때 농구 인기가 최고였다. 조던의 시대였고, 북산의 시대였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동네팀, 학교팀들이 있었다. 가까운 곳에 대학교가 하나 있었고 주말이면 거기서 나름 리그 비슷하게 굴러갔다. 그들의 플레이 수준이 엘리트학교팀이나 실업팀에 비할까마는 우리는 거기에 더 열광했다.


동네에서 농구 좀 한다는 친구들은 그 팀에서 플레이하는 것이 일생의 영광이고 인생의 목표였다. 우리는 그 시간들을 정말 즐겼다. 800원짜리 콜라를 마시면서, 가난한 배낭여행자의 비애를 느끼기보다 그걸로 목을 축이며 로맨틱한 유럽의 풍경과 문화 속에 있었을 때처럼 그렇게 흥분되는 일이었다.


12. 

야구에도 이런 레이어가 생길 수 있지 않은가? 일본에서는 고교야구가 그런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 같고, 미국에선 마이너리그가 그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최상위 재화는 물론 매력적이다. 그런 매력은 아주 글로벌하다. 누구에게나 인스턴트하게 다가갈 수 있다. 코카콜라나 펩시콜라처럼.  더 보편적이지만 그것이 반드시 더 좋다고 할 수 없으며 무엇보다 그것이 유일한 것이지 말아야 한다. 


800원짜리 콜라가 모자란가?  경쟁에서 밀려난 자들이 어쩔 수 없이 자위하며 집어드는 선택인가? 그냥 콜라이기만 하면 물론 패배자들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하지만 그 콜라를 어디서 마시느냐 누구와 마시느냐가 다르다. 


코카콜라를 파는 큰길가 스토어에서는 그저 관관객일 수 밖에 없지만, 800원짜리 콜라를 사러 뒷골목으로 들어가면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우리는 더이상 관관객이 아니라 여행자 또는 탐험가가 될 수 있었다.


그것은 좀 밍밍하게 느껴지는 800원짜리 콜라의 모자람을 차고 넘치게 메워주었고 우리들은 오히려 코카콜라를 마시는 얼뜨기 관광객들을 안쓰럽게 바라볼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좀 싸구려 힙스터그러운 일이었지만.


13. 

퓨처스 리그 경기장이 연습장이나 훈련장이 아니라 그 또한 프로야구의 일부인 경기장이면 좋겠다.


우선은 교통문제. 근처 버스터미널과 경기장 사이의 셔틀버스면 족할텐데. 예약제 유료여도 좋다. 전세버스 사용할 만큼의 비용이라면 십시일반으로 나눠 지불하면 된다.  굳이 팬을 위해 비용을 감수할 필요도 없다. 


둘은, 중계를 위한 최소한의 인프라. 직접 돈들이라 안할테니, 개인방송제작자를 위한 부스와 통신시설 정도는 해둘 수 있지 않을까? 카메라 스팟만이라도 만들어준다면.


셋은, 실시간 기록제공. 어차피 기록원 있을거다. 그리고 기록원이 수작업 말고 간단한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서 컴퓨터에 입력하도록 하자. 거기까지만 되면, 실시간 문자중계 그리고 경기장에서 타블릿이나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조회할 수 있는 시스템까지 발전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뭤하면 기록만 온라인에 올려줘라. 데이터 캐스팅은 나라도 만들어서 구현할 수 있다.


14.

몇해 전 운좋게 스카이박스 표를 얻었던 적이 있었다.  조카들과 그 친구들을 초대해서 신나게 놀았다. 요즘도 가끔 녀석들이 그 이야기를 한다.

이젠 내 아이와 그런 경험을 나누어야 할 때가 되었다.  하지만 꼭 그와 같은 경험이기만 해야 할까?  뽀대나게 스카이박스에서 야구를 보고 구단직원이 찾아와 챙겨주는 사인볼까지 선물한 것은 물론 폼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다른 것도 있다.


좀 허름하고 좀 한적한 장소에서의 경험일 것이다.  거기엔 덜 유명한 선수들과 덜 다듬어진 야구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좀 다른 경험이 있을 수 있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앳된 루키들을 보며 "아들아. 난 저녀석에게 걸었다.  저 녀석이 우리팀 10년 유격수가 되어 줄거야"라고 허세를 떨고 한두해도 채 안남은 커리어를 악착같이 이어가려 애쓰는 늙다리 전설들을 보며 한때 그들이 얼마나 찬란하게 빛났었는지 조곤조건 알려주고 싶다.  아이는 꿈꿀것이고 나는 살짝 고개를 돌려 울컥해지겠지.  이런 것도 괜찮지 않은가?   


큰 소리 질러 그들과 이야기도 나눌 수 있고 운좋으면 악수라도 나누고 사진도 찍을 수 있을 것이다.  조카 앞에서야 폼잡는게 더 나을 수 있지만 내 아이에게 전하고 싶은 야구경험은 오히려 이쪽이다.  무엇이 무엇보다 더 좋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더 많은 기회가 있다.  그걸 나누는 방법을 찾아보고 싶다는 것이다.  멋지지 않은가?  해볼 만한 일 아닌가?


-- 주어진 문제 즉 희소한 주말경기 입장권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를 푸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더 많은 공급이나 더 적은 수요를 유도하는 방법이 있을 수도 있지만 -- 다른 공급, 다른 수요를 찾아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더 많은" 이나 "더 적은"이 아니라, "좀 다른"이 더 나은 정답을 찾게 해줄 수도 있다.   


If You Build It, He Will C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