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2014 불펜투수 레버리지인덱스(wmLI)
가장 긴박한 상황에서 등판했던 투수들: 임창용, 김진성, 봉중근, 이동현
2015 프로야구 개막전, 넥센히어로즈는 목동 홈에서 오프시즌 화제의 팀 한화이글스를 만났습니다.
넥센은 강정호의 이탈 탓인지 작년 같은 공격력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4번타자 박병호는 4번의 타석에서 안타는 커녕 출루조차 하지 못했고 에이스 밴해켄은 6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4실점 후 마운드를 내려갔습니다. 다만 경기는 아직 1점차. 1-4로 끌려가다 7회말 2득점으로 경기는 한점차 승부가 되었고 남은 이닝은 무조건 막고 공격에서 한점 이상을 뽑아 연장승부 혹은 역전을 노려야 하는 경기가 됩니다.
8회초 한화의 선두타자 모건은 안타로 출루한 후 도루까지 성공시켜 넥센이 1점을 뒤진 무사2루의 위기. 추격에 성공한 이닝 바로 다음에 실점해서 스코어가 벌어지면 흔히 말하듯이 분위기가 넘어갈 상황입니다.
넥센의 벤치는 타석 중에 투수를 바꾸는 강수를 택했고 마운드에 오른 것은 지난 시즌 69.1이닝을 던지며 ERA 2.47 을 기록한 승리조 불펜 조상우였습니다. 그는 볼넷을 하나 내주긴 했지만 삼진과 내야땅볼로 위기를 막았고 팀은 12회 서건창의 끝내기 홈런으로 개막전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팀을 위기에서 구하는 보직, 구원투수
야구에서 팀이 위기를 맞았을 때 구원등판하는 투수를 소방수(fireman)라 부르기도 합니다. 제로베이스에서 피칭을 시작하는 선발투수와 달리 구원투수는 보통 아슬아슬한 순간 등장하게 됩니다.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위험수당"이라는게 있습니다. 맡은 역할에 더해서 감수해야 하는 부담의 댓가입니다. 만약 야구에서 "위험수당"이라는 것이 지불된다면 그것을 받을 자격은 누구보다 앞서 구원투수들에게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야구에서 구원투수들의 위험정도를 측정할 수 있을까요? 야구통계의 일종인 세이버메트릭스의 레버리지인덱스는 그런 것을 계산합니다.
레버리지인덱스는 2006년 톰탱고의 theBook에서 소개되었는데 경기의 모든 플레이가 팀의 승리확율을 얼마나 변화시키는지 측정해서 WPA(Win Probability Added)를 계산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득점차, 이닝, 아웃카운트, 주자상황을 모두 고려해서 경기의 특정한 순간이 얼마나 승패결정 중요도가 높은지 수치화시킨 것입니다.
점수차가 큰 경기후반이라면 LI는 아주 낮습니다. 평균적인 상황을 LI 1.0 으로 볼때 0.1 이하가 됩니다. 즉 승패결정 중요도가 1/10 이하라는 뜻입니다. 반대로 가장 긴박한 상황은 동점의 9회 2사만루 상황인데 레버리지인덱스가 11 정도 됩니다. 위험도가 평균보다 11배 높다는 뜻이죠.
레버리지인덱스는 1)경기후반에 갈수록 2)득점차가 적을수록 3)위기상황일수록 높아지고 반대의 경우 낮아집니다.
WPA, 승리확율, 승리가치 - 클러치에 관한 세이버메트릭스
레버리지인덱스LI 는 여러 방법으로 사용되는데 그중 wmLI 는 구원투수 등판시점의 LI 를 계산한 것입니다. 즉 얼마나 위험하고 긴박한 순간에 등판하고 있는지를 수치로 알려줍니다. 레버리지인덱스가 측정하는 승패결정의 중요도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의 부담을 뜻하기 때문에 대략 이것을 그들의 맡은 임무의 "위험도"라고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KBO2014 불펜투수들의 레버리지인덱스
다음은 KBO 2014시즌 40이닝 이상을 던진 불펜투수들의 wmLI 순위입니다.
대체로 각 팀의 마무리 투수들의 wmLI가 역시 높습니다.
wmLI 즉 등판시점의 승패결정 중요도 또는 위험도가 가장 높았던 것은 삼성의 클로저 임창용이었습니다. NC 김진성은 13시즌의 경우 마무리투수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느슨한 상황에서만 등판하게 되어 "귀족마무리"라는 놀림을 받기도했든데 14시즌은 오히려 위험도가 매우 높은 등판이 많았습니다.
3위와 4위는 같은 LG의 마무리와 셋업 봉중근 이동현이었습니다. 투수력에 비해 타격이 약했던 14시즌의 엘지트윈스는 경기 후반까지도 늘 빡빡한 승부를 해야했고 그런 것이 wmLI에 드러납니다. 삼성의 셋업 안지만도 중요도가 높은 등판이 많았고 김승회, 최영필, 어센시오 등이 다음입니다.
가장 터프한 상황을 이겨야 했던 투수들: 임창용, 김진성, 봉중근, 이동현
넥센 손승락은 리그 최고의 마무리투수 중 하나이긴 하지만 압도적인 득점력을 보여준 팀 타자들의 덕인지 아니면 그의 앞에서 미리미리 위기상황을 해결해버린 셋업 투수들의 덕인지 등판상황의 위험도가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확연하게 낮은 것도 인상적입니다.
wmLI가 불펜투수의 등판시점 중요도를 나타낸다면 그 등판의 결과로 어떤 성과를 만들어냈는지 측정하는 것이 WPA(Win Probability Added) 입니다. wmLI가 위험도라면 WPA는 위험을 극복해낸 결과가 되는 셈입니다.
똑같은 한이닝 하나의 아웃카운트라 해도 레버리지인덱스가 높을 때는 WPA의 플러스 마이너스가 더 커집니다. 여러 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은 경우라도 경기가 큰 점수차로 벌어져 이미 승패가 뒤집힐 가능성이 적을 경우 WPA 플러스가 크지 않습니다. 반대로 후반의 박빙승부일 때는 아웃카운트 하나 하나가 상대적으로 높은 WPA 변화를 가져옵니다. 성공적인 결과 뿐 아니라 실패한 결과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데, 중요도가 높은 상황의 출루허용이나 실점은 그렇지 않은 상황에 비해 더 높은 마이너스 WPA로 기록됩니다.
승리기여도가 가장 높은 불펜투수들: 한현희, 김진성, 안지만, 봉중근
다음은 KBO14시즌 불펜투수들의 WPA 순위입니다.
WPA의 기준점은 팀의 5할 승률에 해당하는 기여인데 그래서 팀 선수들이 모두 WPA 0 에 해당되면 그 팀은 5할의 승률을 가지게 됩니다. 승리한 팀의 경우, 출전한 선수들의 WPA 합계는 0.5가 됩니다. 반대로 말하면 출전한 선수들이 0.5 만큼의 WPA를 나눠갖게 됩니다. 반대로 패배팀의 선수들은 WPA -0.5 만큼을 나눠갖습니다.
시즌 전체로 예를들어 60승40패를 기록한 팀의 모든 선수 WPA 합계는 10.0 만큼이 됩니다. 그래서 어떤 선수의 WPA가 1.0 이라고 하면 이 선수 혼자서 팀 전체 5할+ 승리 즉 전체가 100경기라면 50승 +1승의 기여도를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지난시즌 전체 9개팀의 불펜투수들 중 WPA 기준 승리기여도가 가장 높은 것은 넥센 한현희입니다. wmLI가 1.46으로 그리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WPA 1위인 것은 그가 ERA3.20 이라는 비교적 좋은 실점억제능력을 가지고 불펜투수 치고 꽤 많은 78.2 이닝을 던졌기 때문입니다.
승리기여도 2위는 NC 마무리투수 김진성이고 3위는 삼성 안지만, 4위가 엘지트윈스 봉중근입니다. 이들은 팀의 마무리 또는 마무리 바로 앞에 등판하는 셋업맨으로 평균보다 휠씬 높은 wmLI 상황에서 등판했고 결과도 좋았습니다.
"분식"이 불가능한 평가지표 WPA
WPA가 불펜투수의 성적을 평가하는데 유용한 또다른 이유는 소위 "분식(회계)"나 "역분식"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 지표는 자신이 넘겨받은 [승리확율]로부터 마운드를 내려갈때까지의 승리확율변화를 추적합니다.
예를들어 구원투수의 책임소재가 애매해지는 것은 다음과 같은 상황들입니다.
상황A. 무사3루에 등판해서 1실점 허용하고 이닝종료
상황B. 2사1루에 등판해서 1실점 허용하고 이닝종료
실점의 자책, 비자책여부만 따지는 ERA는 A,B상황에 대해 구원투수에게 책임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앞선 투수의 ERA만 높아지고 자신의 ERA는 깨끗합니다. 보통 "분식"라 부르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 구원투수의 실패가 과소평가될 수 있습니다.
ERA의 이런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승계주자실점IRS 라는 지표가 있는데 이는 구원투수가 넘겨받은 주자 중 실점을 허용한 경우를 카운트합니다. IRS에서는 A와 B 모두 1명의 승계주자 실점으로 기록합니다.
그러나 ERA든 IRS든 상황B 보다 상황A가 휠씬 더 실점가능성이 높았던 것은 무시됩니다.
하지만 이럴 경우 B상황에 비해 A상황은 휠씬 더 실점허용가능성이 높았던 것이 무시됩니다.
상황C. 아웃카운트 2개 잡고 볼넷 허용으로 2사1루 상황에서 강판. 다음투수가 홈런 허용으로 2실점
상황D. 무사만루 위기를 남기고 강판. 다음 투수가 삼진 3개로 무실점 이닝종료
상황C의 투수에게 자책점 1점이 기록되고 상황D의 투수는 자책점이 없습니다. 공평하지 않을뿐더러 정확하지 못합니다. 상황C의 투수는 작은 실패를 했지만 큰 책임이 기록되고 상황D의 투수는 큰 실패를 했지만 책임은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이닝당출루허용WHIP 같은 지표를 사용한다고 해도 2사1루와 무사3루 사이의 차이는 여전히 구분되지 않습니다.
9회말 끝내기 홈런을 맞은 경우와 10점 정도 점수차에게 맞은 홈런을 동등하게 취급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경기상황의 승패결정 중요도에 따라 가중치를 부여하는 WPA가 경기후반 박빙승부를 지키는 임무를 가진 구원투수들의 기여도를 좀더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습니다.
불펜투수를 위한 세이버메트릭스
그런데 불펜투수의 객관적 가치 또는 불펜투수들을 어떻게 운용하는 것이 최선이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런저런 논란이 있습니다.
MLB든 KBO든 현재의 야구계를 지배하고 있는 구원투수에 대한 관점은 1980년대 후반 오클랜드의 감독이었던 토니 라루사에 의해 시도된 1이닝 마무리를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을 따서 라루사이즘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 방식은 당시 오클랜드의 데니스 애커슬리를 이기는 경기의 9회에만 등판시키는 것을 통해 엄청난 성공을 거둔 이후 다른 팀에게도 널러 퍼져서 지금이 이릅니다. (애커슬리는 불펜투수로는 흔치 않게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기 했습니다) 1988년 이전에 시즌 40세이브 이상을 기록한 투수는 역대로 5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되었습니다.
1이닝 마무리에 대해 부정적인 대표적인 인물은 세이버메트릭스의 교조 쯤 되는 빌제임스입니다. 그는 불펜에이스를 9회에 쓰기보다는 7회나 8회 위기상황에서 사용하는 쪽이 좀더 효율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을 실제로 실행한 것이 그가 고문으로 있었고 또 테오 옙스타인이 단장을 맡으며 세이버메트릭스를 팀의 운영전략으로 삼았던 2003년의 보스턴 레드삭스였습니다.
보스턴은 정해진 클로저 없이 소위 집단마무리(closer by committe)를 시도했는데 시즌 초반부터 불쇼가 난무하며 결국 이를 포기하고 전문마무리로 돌아갔습니다. 이때 팀의 클로저로 영입했던 김병현이었죠. 물론 보스턴의 실패가 집단마무리의 실패라고 단정짓긴 어렵습니다. 당시 보스턴의 불펜투수들의 워낙 허접했기때문입니다.
다만 1이닝 전문마무리를 쓰는 팀이라 해도 클로저를 맡은 불펜에이스에게 그리 많은 돈을 지불하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선발투수나 타자들의 연봉이 휠씬 더 높습니다.
일본의 프로야구에서는 마무리투수를 수호신이라 부르며 떠받드는 편입니다. 최고의 마무리투수는 종종 리그최고의 연봉을 받기도 합니다. 지금은 MLB로 이적한 한신의 후지카와 규지도 그랬습니다. 한국은 경우 어느쪽인지 좀 불분명합니다. 불펜투수들이 힘들고 빛나지 않는 임무를 묵묵히 해내는 것에 비해 대우가 나쁘다는 주장도 있지만 동시에 수준급 클로저에 대한 대우는 꽤 좋은 편에 속합니다. 리그급을 넘어 역대급에 속할 오승환을 제외하더라도 봉중근이나 손승락의 연봉은 팀내 최고수준입니다.
불펜투수이 가치와 기여도에 대한 좀더 객관적인 분석은 여전히 숙제로 보입니다. MLB기반의 미국 세이버메트리션의 연구들이 좀 있긴 하지만 딱히 이것이다 라고 검증된 답이 없기도 하고, 또 선발투수의 소화이닝이 적어서 불펜투수의 비중이 높은 KBO의 리그특성은 또다른 변수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경험적으로 부상 개연성이 높고 여전히 혹사성향이 있기 때문에 얆은 선수층은 소수의 A급 불펜투수들을 쉽게 대체하기 어려운 조건도 있습니다.
그런 부분을 고려한다면 WAR 같은 단일스탯으로 선수들을 줄세우는데 몰두하기보다 WPA나 wmLI 같은 지표들을 고려해서 KBO에 좀더 어울리는 불펜투수의 평가기준을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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