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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세이버메트리션의 야구게임 공략기 - 부제: OOTP 중독 주의!!!

by 토아일당 2016. 1. 8.



세이버메트릭스는 애당초 야구게임과 관련이 깊습니다.  

빌제임스가 1978년 [야구개요Baseball Abstract] 를 세상에 내놓는 것으로 시작된 이 혁명에는 결정적인 조력자가 있었는데 다니엘 오클랜트입니다.   


[야구개요]는 출판이라 하기도 민망한 형태로 세상에 나왔는데 빌제임스가 집에서 등사를 하고 스태플러로 제본을 해서 신문광고를 내고 주문을 받았습니다.  첫 해 그 책을 산 사람은 70명 정도였고 이듬해 새로운 버전이 발매되었을 때는 그래도 300명으로 늘었다고 합니다.  댄 오클랜트는 이 300명 중에 하나였습니다.


프리랜서 스포츠작가였던 그는 이 책을 소개한 기사를 우여곡절 끝에 미국 최대 스포츠지인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에 싣게 됩니다.   그리고 빌제임스와 그의 아이디어가 비로서 세상에 널리 알려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댄 오클랜트는 또다른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되는데 로티세리 리그를 통해서 입니다.  이것은 그와 그의 친구들이 모여 환타지 야구게임을 하던 식당의 이름을 딴 것인데, 그는 선수카드경매 형식에 가까웠던 이전의 게임 방식에 정교한 스코어링시스템을 추가합니다.   해서 [로티세리 리그]란 오클랜트의 스코어링규칙을 사용하는 환타지야구게임을 말합니다. 


이 게임은 엄청 재미있어서 입소문을 타며 금새 전국으로 퍼져 나갔는데(당시엔 인터넷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마침 1981년의 MLB 파업과 겹치면서 더욱 확산이 빨랐다고 합니다.  저널리스트였던 그의 친구들 중에는 당연히 미디어 쪽 종사자들이 많았고 그래서 로티세리리그의 초기 멤버 중에는 이쪽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금융계 쪽도 꽤 있었다고 합니다. 


빌제임스의 아이디어가 소수의 하드코어 팬들의 관심을 끌었다 해도 그들은 힘없는 일개 야구팬들에 불과했고 따라서 변화는 찻잔 속에 폭풍에 그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세이버메트릭스와 로티세리 리그가 만나자 두번째 화학작용이 일어나게 됩니다.


세이버메트릭스의 토양이 된 로티세리 리그


로티세리 리그 매니아들은 생업을 작파하고서라도 좀더 높은 승률을 올리기 위해 뭐든 하겠다는 사람들이었는데 (아마도 수천만원 현질을 해서 지존이 되려는 30-40대 부자 온라인게이머를 연상하면 될 듯) 그들 중에는 돈도 좀 있고 명문대 출신의 엘리트들이며 전통적인 야구관의 불합리함에 치를 떠는 부류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세이버메트릭스는 아주 흥미로운 것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골치아픈 숫자놀음이지만 그들에게는 오히려 그 명료함이 입맛에 딱 들어맞았을 겁니다.


미국야구연구회SABR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비주류 매니아의 한계를 벗어나기 어려웠던 세이버메트릭스는 로티세리 리그를 통해 주류 사회의 힘과 영향력을 얻을 기회를 가집니다.   


댄 오클랜트는, 빌제임스의 아이디어가 SI 라는 강력한 미디어를 통해 대중적을 확산되는 계기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로티세리 리그의 고안을 통해 그들의 강력한 지지자가 되어줄 주류사회의 기반도 만들어낸 셈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환타지베이스볼은 Strat-O-Matic 이라는 전설적 보드게임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후 모든 야구 시뮬레이션 게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마치 비디오 게임에서 RPG라는 장르 자체가 1970년대의 테이블게임 던전앤드래곤으로부터 유래했던 것과 비교될 만 합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PC기반 야구시뮬레이션 게임 OOTP(Out Of The Park) 시리즈는 1998년에 처음 발표되었는데, 리드디벨로퍼 마커스하인손Markus Heinsohn의 인터뷰에 의하면 Strat-O-Matic 같은 게임을 PC 기반으로 구현하려는 의도였다 합니다.  이후 OOTP는 베이스볼 모굴과 함께 시뮬레이션 야구게임의 양대 산맥으로 자리하게 됩니다.


시뮬레이션 야구게임의 계보


보수적일 뿐 아니라 숫자와 친하기 어려운 미국의 주류야구계는 당연히 세이버메트릭스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반면 로티세리 리그로부터 태동한 환타지 베이스볼 게임은  좀 다릅니다.  이만큼 더 궁합이 잘 맞는 조합이 없다 할 정도입니다.  2000년대 초반, 오클랜드의 머니볼을 계기로 주류 야구계가 변화를 받아들이기 전까지 [게임]은 세이버메트릭스의 가장 열렬한 옹호자를 양산해내던 막강한 토양이었습니다.


사실 이 글의 본론은 최근 열흘 가까이 식음을 전폐하고 빠져들었던 OOTP(Out Of The Park)라는 게임경험에 관한 것입니다.  (정확히는 오리지널 OOTP보다 좀더 캐주얼한 형식의 모바일 버전 iOOTP.  PC버전의 OOTP는 겁이나서 차마 손을 댈 수 없었습니다)


OOTP는 MLB구단의 단장 겸 감독이 되어 자신의 팀으로 리그에 참여해서 더 많이 이기기 위한 전략을 짜내는 게임입니다.  


플레이방법을 대략 이해하기 위해 만만한 국민구단 다저스로 한 두 시간을 플레이한 후 본격 시작하며 선택한 팀은 샌디애고 파드레스였습니다.  MLB에는 딱히 선호하는 팀도 없고 그저 유유자적하고 사랑스러운 이 도시에 대한 로망을 빌어 여기를 야구의 성지 쯤으로 만들어보겠다는 포부였습니다.  


순혈 세이버메트리션의 OOTP 공략


그런데 이 팀은 (현실에서도 좀 그렇지만) 게임 설정 상 지독한 스몰마켓팀이었습니다.  2012년부터 시작된 첫 시즌에 리그의 평균 페이롤이 8000만$ 정도인 것에 비해 샌디에고는 고작 4000만$에 불과했습니다.   개인적인 성향 때문에도 그랬겠지만, 이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은 지독한 머니볼일 수 밖에 없습니다.


전략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비싼 선발투수는 사치


다저스 시절의 커쇼가 참 그리웠습니다.  하지만 혼자서 천만이 넘는 페이롤을 잡아먹는 투수는 그림의 떡입니다.  (이 부분은 현실과 좀 다르겠지만) 반면 자유계약으로 싸게 나오는 퇴물선발을 사서 1-2년씩 돌려쓰면 그럭저럭 버틸 수 있는 정도가 됩니다.


2. 수비가 생명줄


그런 이유로 관건은 수비입니다.  OOTP의 환경에서 수비는 값이 싼 툴입니다. 아마도 템파베이가 이룬 두번째 머니볼 기적의 시점에서 그랬던 것처럼.  

강한 수비는 또 특정한 타잎의 선발투수와 궁합이 아주 잘 맞습니다.  압도적인 구위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살살 달래가며 맞춰잡는 베테랑 선발투수들은 대략 땅볼비율이 높은 편이고 여기에 강력한 수비력이 합쳐지면 BABIP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들은 싸게 구할 수 있습니다.  일타쌍피!!!


스탯으로 설명하자면, SO/9 이 낮지만 BB/9 도 낮으며 이닝이팅능력이 있는 투수들 중 높은 피BABIP으로 인해 ERA가 나쁜 투수들입니다.  이들 중 GB%가 높은 녀석들을 골라서 강한 수비를 등 뒤에 세워주면 애당초 낮은 피IsoP 를 유지하며 피BABIP도 획기적으로 낮아집니다.  그렇게 ERA를 0.5 이상 낮출 수 있습니다.   


3. 1번부터 6번까지 애덤 던


공격력에 관해서는 오클랜드 시절의 오리지널 머니볼과 비슷합니다.  애버리지 0.250 이하에 IsoP 0.200 에 육박하는 거북이 빅뱃들을 비교적 싸게 구할 수 있습니다.  형편없이 낮은 타율 때문에 저평가되어 있지만 그들의 득점생산성은 A급 타자 못지 않습니다.  물론 요즘의 시장은 이런 타자들도 꽤 비싸지만 OOTP 환경에서는 그렇진 않았습니다.  


4. 불펜은 비싼 선발보다 더한 사치 


솔리드한 불펜은 역시 비쌉니다.  가난한 팀에 거기 투자할 여유가 없습니다.  기량이 떨어졌지만 계약기간이 남은 짜투리 선발들이나 어중간한 중망주들로 돌려막기해도 그럭저럭 비슷한 퍼포먼스를 낼 수 있습니다.   


5. 선택과 집중 - 포수와 중견수


뚱뚱이 뜬금포들은 그러나 대체로 수비가 안됩니다.  해서 수비가 생명이라는 원칙과 양립시키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해서 코너 수비수는 공격력 중심, 센터 수비수는 수비력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결되지 않는 포지션이 중견수입니다.  선풍기 타잎의 중견수가 제대로 된 레인지를 갖기는 아무래도 어렵겠죠.  포수 역시 수비력과 공격력을 함께 가지면 아주 비싸집니다.


포수와 중견수 둘 중 하나는 살림을 다 팔아서라도 사오고 다른 하나는 즉전감을 주고 탑프로스펙트를 데려다가 키워서 씁니다. (물론 여기엔 약간의 반칙이 있습니다.  2012년 시점에서 시작된 게임이기 때문에 저는 유망주들의 미래에 대해 좀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결국, 1루, 3루, 좌익, 우익은 수비를 포기, 극단적인 애던덤 스타일로 가고, 2루수와 유격수는 애버리지 2할대 초반, 장타율 3할 아슬아슬을 감수하는 극단적인 수비 스페셜리스트로 갑니다.  대신 페이롤의 절반을 공수겸비 포수와 중견수에 몰빵하는 구성이 만들어집니다.


출루, 장타, 수비를 모두 갖춘 꿈의 중견수 (2012시즌 플레이 기준)


결과는?


환상적이었습니다.  시즌이 거듭되며 페이롤이 조금씩 올라가긴 하는데 결국 부자팀의 절반을 넘지 못합니다.  리그평균의 60-65% 수준입니다.  하지만 10시즌 정도를 이어가며 거의 매년 플레이오프에 나갔고 2번 우승했습니다.  


여기까지가 1막입니다.  세이버메트릭스의 위대한 승리.


이제 좀 게임에 익숙해지자 작전이나 수비포메이션 같은 좀더 디테일한 구성을 하기 위해 텍스트 모드로 시뮬레이션 결과만 보던 것과 달리 경기를 플레이바이플레이로 관찰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숫자로 표시된 성적과 시즌 순위를 보며 충분히 만족스러웠던 것과 달리 당혹스러운 패닉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재앙. 이건 야구도 아니다!!!   


1사 3루에서 외플에 떴는데 주자가 들어오는 법이 없습니다.   2사 2루에 단타로도 홈에 잘 못들어옵니다.  9회말 동점에 주자가 나갔는데 보내기번트는 번번히 실패합니다.  소위 진루타라는 것을 만루홈런 만큼 보기가 힘듭니다.  한 두 점 리드한 채로 경기 후반에 이르면 경기는 호러로 장르가 바뀝니다.  언제 어느 놈이 불쇼를 할지 도무지 예상 불가입니다.  


물론 꾸역꾸역 어떻게든 이기는 경기가 더 많기 때문에 성적이 잘 나오긴 하지만 도대체 이 야구는 차마 눈뜨고 볼만한게 아니었습니다.  


뒷목을 잡으며 속에서 치미는 생각이 진짜로 이랬습니다.

“세이버고 나발이고 저 느림보 뚱뚱이들은 당장 짤라버려야해. 꼴찌를 하면 했지 저런 야구는 더 못보겠어.  저건 야구도 아냐 #$%%$$!!!!”


세이버메트릭스에게 최적의 토양이었던 시뮬레이션 야구게임, 그중에서도 정통 중에 정통인 OOTP를 하며 저는 도리어 세이버메트릭스에 대한 회의와 절망을 느끼고 말았던 것입니다.  


거기에 더해서 팬들의 냉담하고 신랄한 비난도 문제였습니다.


조정신청으로 높아지는 연봉 때문에 2-3년 간격으로 선수들은 계속 물갈이가 됩니다.  그나마 파릇파릇한 영건들이면 보는 맛이라도 있겠지만 애지중지 맘 붙이던 유망주는 사라지고 그 자리는 여기저기서 버린 퇴물이 채웁니다. 


이겨야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가뭄에 콩나듯 살아남은 성골 프랜차이즈들 조차 FA 자격을 가질 즈음이 되면 가차없이 팔려나갑니다.    (게임의 설정상) 그럴 때마다 [팬 관심] [팬 충성도] 수치는 사정없이 쳐막힙니다.  눈이 빠지게 스탯을 들여다보고 매년 팀을 통째로 갈아엎듯이 꾸려나가며 리그평균의 60-70% 밖에 안되는 페이롤로 지구우승을 밥먹듯이 하며 3-4년에 한번씩 리그 챔피언이 되는 팀을 만들고 꾸리는 제는 늘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받아야 했습니다.


Our fans are shocked that you did not keep OOO on the team. The overall fan interest almost crashed!


난들 그러고 싶지 않았을까요?  페이롤 1억4천$ 짜리 팀들처럼 아직 젋은 프랜차이즈 FA들에게 수표를 척척 써주며 잡아두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젠장, 구단주가 돈을 안주는걸 어쩌라구요.  그리고 어떻게든 난 파드레스를 이기는 팀으로 만들고 싶다구요. 


하지만 제가 팬의 입장이라도 이런 야구를 즐기고 이 팀을 사랑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OOTP의 경험은 제게 아이러니한 두 가지 감상을 남겼습니다.


첫째, 극단적 세이버메트릭스를 팀이 이기는데 역시 효과적이다.  둘째, 반면 그 야구가 좋은 야구인지는 좀 다른 문제일 수 있다. 


이쯤에서, 앞에서 소개했던 댄 오클랜트의 명언 하나를 떠올립니다.


If you can't enjoy the game unless you are pretty sure your team is going to win, baseball is not the game of you.  Remember, the best team in baseball in any year is going to be beaten about 60 times.


물론 이상은, 야구 이야기가 아니라 야구게임 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