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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베이스볼인플레이

그러니까, '문제는 수비'다

by 토아일당 2018. 1. 25.

[베이스볼인플레이]  그러니까, '문제는 수비'다

일간스포츠 2017.03.16 



한국 국가대표팀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트 탈락에서 가장 뼈아픈 장면은 이스라엘전 패배였다. 


2017년 WBC의 첫 경기. 그 경기 승패가 달랐다면 우울한 논란 대신 2라운드 응원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물론 야구에 '만약'은 없다. 패배를 불운 탓으로 돌리기도 어렵다. 이스라엘 타자의 잘 맞은 타구가 야수 정면으로 향한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연장 10회 1점 차 패배였다. 한국에 조금 행운이 따랐다면 바뀔 수도 있던 승부는 아니었을까. 


결승점을 만든 것은 10회초 2사 후의 내야안타였다. 코스가 좋았던 땅볼 타구였다. 연장 승부 이전에 경기를 끝낼 기회가 한국에도 있었다. 하지만 6회 1사 1·2루, 7회 무사 1루에 나온 병살타가 기회를 무산시켰다. 그런데 허경민과 이용규의 타구는 둘다 그럭저럭 잘 맞아 나갔다. 


인플레이 타구의 안타 여부는 투수 능력 외에도 운에 따라 많이 좌우된다는 게 야구 통계의 정설이다. 그리고 WBC 1라운드의 운명을 결정지은 것은 땅볼 타구가 굴러간 방향이었다. 그런데, 배트에 맞은 공이 안타가 될지, 범타가 될지는 '수비'의 역할이다. 정확한 타구 예측과 넓은 수비 범위는 인플레이 타구의 피안타율을 낮춘다. 


이스라엘의 1회말 수비 이닝에서 다소 낯선 장면이 있었다. 서건창이 타석에 섰을 때 유격수가 3·유 간이 아니라 1·2 간으로 자리를 옮겼다. KBO 리그에서는 자주 볼 수 없는 수비다. 타자 서건창이 볼넷을 골라 나갔기 때문에 경기에 미친 영향은 없었다. 하지만 수비 시스템에 대한 이스라엘 대표팀의 관점을 엿볼 수는 있었다. 


WBC 대표팀은 페넌트레이스에 속한 클럽 팀이 아니었다.


선수들은 소속팀도 다르고 속한 리그조차 달랐다. 특히 센터라인을 맡은 두 내야수는 새파란 신예였다. 이스라엘의 스물세 살 유격수 스콧 버챔은 마이너리그 싱글 A 2년 차다. 2루수 타일러 크리거는 그보다 한 살 어린 스물두 살이고, 2016년 아마추어 드래프트 출신이다. 싱글 A에서 1년을 뛴 게 프로 경력 전부다. 수비 시프트에 필요한 데이터도 리그 경기에 비하면 휠씬 제한적일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대표팀은 당연하다는 듯이, 초반부터 수비 시프트를 전개했다. 전력 분석을 통해 상대 타구 방향을 예측하고 짧은 팀 훈련 기간에도 불구하고 수비수의 개인 기술로 소화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선택이었다. 한국전보다 데이터가 풍부한 네덜란드 전에 수비 시프트가 더 많았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사진 - 일간스포츠


2016년 KBO 리그 57614타석 중에서 4사구, 삼진, 홈런을 빼고 수비수가 타구를 처리할 기회가 있던 인플레이 상황은 40215번이었다. 이 중 아웃 카운트를 잡아낸 비율을 수비효율성(DER)이라 한다. 이 수치는 0.649였다. 팀별로 보면 우승팀 두산이 0.665로 가장 높았고, 최하위팀 kt가 0.618로 가장 낮았다.


메이저리그는 어떨까. 2016년 평균 DER은 0.693으로 KBO 리그보다 0.044 더 높다. 수비효율성(DER)을 1에서 빼면 ‘인플레이 타구 중 실책 또는 안타로 출루한 비율’이 된다. 메이저리그에서 인플레이 타구로 출루하는 비율은 KBO 리그보다 4푼4리 더 낮다는 뜻이다. 


2016시즌 KBO 리그의 평균 타율은 0.290이었고 인플레이 타율은 0.339로 둘 다 역대 최고였다. 만약 DER이 4푼4리 높아졌다면 BABIP는 거의 그와 비슷하게 낮아져서 0.300에 못 미쳤을 것이다. 2000년 이후 인플레이 타율이 3할보다 낮았던 해는 역대 투고 시즌 중 하나인 2006년 0.295 딱 한 번이다.


0.690 전후로 꾸준하게 유지돼 온 메이저리그의 수비효율성(DER)과 비교했을 때, KBO 리그의 DER은 2012년 0.687 이후 급격하게 하락하며 최근 3년 동안은 0.651-0.655-0.649에 머물러 있다. 선수 개인의 인플레이 타율과 달리 리그 평균은 운이 아니라 리그 특성을 고려해서 봐야 한다.


일반적으로 강한 타구가 많으면 DER은 낮아진다. 그런데 KBO 리그의 타구가 메이저리그보다 더 강하다고 보기 어렵다. 타구추적레이더 트랙맨이 측정한 2016년 메이저리그 땅볼 타구의 평균속도는 88.6마일(141.7kmh)이고 뜬공 타구 평균속도는 91.4마일(146.2kmh)이다. KBO 리그(15-16 340경기)의 평균 타구 속도는 땅볼 135.8kmh, 뜬공 143.9kmh로 실제로 더 느렸다. 


마이너리그 트리플 A의 데이터와 비교해도 정황은 비슷하다. 타구 속도 10kmh 구간마다 안타 비율을 비교하면 같은 타구 속도일 때 KBO 리그 타율이 더 높다. 특히 150kmh 이상의 강한 타구일 때 격차가 크다. 트리플 A는 0.362인데 KBO 리그는 0.418이다.


물론 다른 변수도 있다. 나쁜 내야 그라운드 사정이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또 평범한 땅볼을 내야안타로 만드는 발 빠른 타자는 타구 속도 대비 타율을 높인다. KBO 리그에는 손아섭, 박민우, 이대형, 고종욱 같은 유형이 더 많다. 하지만 이들을 제외한 통계에서도 격차는 거의 같다. 인플레이 타구를 처리하는 수비수 능력에 따라 차이가 난다는 추측도 해 볼 만하다. 


하지만 KBO 리그 야수 능력이 갑자기 퇴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2006-2007년에는 메이저리그보다 DER이 높았다. 2012년에도 두 리그의 DER 사이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리그 평균 DER이 급격히 하락한 것은 2013년부터다. 그런데 경기당 평균 득점은 4.65점으로 역대 평균과 비슷했다. 그리고 이듬해 역대급 타고 시즌이 시작됐다. 2014년 이후의 홈런 증가는 타자들의 파워가 향상된 정황이다. 그렇다면 파워 증가로 더 빨라진 타구 속도에 야수들이 적응해 가는 과도기일 수도 있다. 


경기에서 수비의 영향은 맨눈으로 보고 판단하기에 한계가 있다. 데이터 분석이 활성화된 미국에서도 수비에 관한 객관적 통계가 본격적으로 활용된 것은 2000년대 중·후반 이후다. 그리고 2015년 스탯캐스트의 도입으로 혁신이 가속화 중이다. 수비 시프트도 ‘예외’가 아니라 ‘기본’으로 변했다. 


급조된 대표팀이 싱글 A 레벨의 센터 내야수 2명을 세워 놓고 자연스럽게 수비 시프트를 실행한 것은 한국 야구에 낯설지만, 그들의 야구에서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제리 웨인스타인 이스라엘 감독은 인터뷰에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도움을 받았다”는 말도 했다.

1경기의 결과로 시프트의 손익을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스라엘팀이 ‘수비라는 야구 기술’에 대해 한국팀과 다른 관점과 발상을 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날 나온 두 개의 병살 타구와 한 개의 결승 내야안타로 갈린, 한국-이스라엘전 승패에 수비가 차지한 비중은 생각보다 휠신 더 컸던 것은 아닐까.


‘애국심’이나 ‘희생정신’ 논란은 오히려 WBC 경험의 본질을 가린다. 대표팀은 ‘세계’ 앞에서 ‘조국’을 대표하기보다 ‘야구팬’ 앞에서 ‘리그 수준’을 대표했다.


WBC의 결과로 뭔가를 되새겨야 한다면 단기전에서 받은 성적표가 아니다. 낡은 ‘정신론’도 유익하지 않다. 3경기 승패만으로 리그 수준을 예단하는 것도 무리다. 2006년 봄 WBC 4강 신화를 썼던 한국 대표팀은 그해 가을 아시안게임에서 참패했다. 반년 만에 한국 야구 수준이 하늘과 땅을 오갔을 리는 없다. 


하지만 경쟁 팀의 경기력에서 격차를 찾아보고 분석하는 것은 필요하다. 투수들의 구속이 느린 게 문제일까. 제이슨 마르키스보다 빠른공을 던지는 투수는 KBO 리그에도 많이 있다. 그렇다면 '타고'는 거품이었을까. 트리플 A에서 수준급 성적을 낸 투수라도 한국에서의 활약은 보장할 수 없다. 그렇다면 수비력은 어떨까. 왜 KBO 리그의 인플레이 타구는 메이저리그나 트리플 A보다 휠씬 더 높은 비율로 안타가 될까.


신동윤


데이터는 신비로운 마법도 절대적 진리도 아니다. 대신 "당신 야구 얼마나 해 봤는데?"라고 묻지도 않는다. 그것은 편견 없는 소통의 언어며 협력의 플랫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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