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인플레이]역대 타고투저, 이유는 각각이었다
일간스포츠 2016년11월25일
2016년 KBO리그를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는 '타고투저'다.
10개 구단의 경기당 평균 득점은 5.61점이다. 역대 최고였던 2014년(5.62점)에 이어 2위다. 역대 3위 시즌인 1999년의 5.38점과는 꽤 차이가 있다. 타고투저와 투고타저를 가르는 기준이 대략 경기당 4.5점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타자들의 시대'다.
한국야구위원회는 올시즌을 앞두고 스트라이크존을 좁히는 등 타고 완화를 위한 시도를 했다. 시즌 초만 해도 노력은 효과가 있는 듯 보였다. 4월말까지 118경기 평균득점은 4.84점이었다. 2014년(5.25점)과 2015년(5.06점)에 비해 확실히 떨어졌다. 하지만 5월이 넘어가면서 야구장은 다시 불타기 시작했다. 5월 122경기 중 한 팀이 15점 이상을 올린 경기만 무려 14번이었다. 4월 118경기에서는 4번 뿐이었다.
그런데 올해와 2014년의 타고투저와 세 번째 다득점 시즌이던 1999년에는 차이가 있다. 1999년은 홈런이 득점을 부른 시즌이었다. 득점으로는 3위지만 경기당 홈런은 2.4개로 역대 1위였다. 장타율에서 타율을 뺀 순장타율 역시 0.165로 역대 1위다.
같은 타고 시즌이라도 그를 주도한 흐름이 무엇인지는 다르다. 최근 두 시즌 전체 홈런에선 역대 1, 2위 기록이 나왔지만 경기 수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타석당 홈런수로 비교하면 1999년이나 2009년에 미치지 못한다.
득점 기준 역대 5위였던 2001년엔 볼넷이 많았다. 9이닝당 볼넷은 4.15개로 역대 1위다. 반면 장타는 두드러지지 않았다. 경기당 홈런 8위, 순장타율도 8위다. 대신 출루율 4위, 순출루율(출루율-타율) 1위였다. 삼진도 적었다. 그래서 볼넷/삼진 비율이 92년 이후 가장 높았다. 장타보다 출루율이 주도한 타고시즌이었다.
KBO리그는 전통적으로 타고투저보다는 투고타저 시즌이 많았다. 타고 기간은 크게 1999~2001년, 그리고 2014-2016년이다. 득점 기준 역대 6위인 2009년은 두 기간 사이 짧게 나타났다 사라졌던 다득점 시즌이었다. 경기당 홈런이 1.09개로 역대 2위, 9이닝당 볼넷 4.09개로 역대 2위였다. 타율보다는 홈런과 볼넷이 주도한 타고시즌이다.
2014년부터 다시 시작된 타고는 1999~2001년, 그리고 2009년과는 차이가 있다. 2014년과 2016년은 득점 기준 역대 1, 2위지만, 타석당 홈런수에서는 각각 9위와 7위에 그친다. 볼넷 증가를 가리키는 순출루율 역시 그렇다. 2014년이 20위. 1206년이 23위로 오히려 중하위권이다.
최근 3년의 타고를 주도한 요인은 타율, 좀더 정확히 말해서 인플레이 타율(BABIP)이다. 배트에 맞아서 페어그라운드로 날아간 공의 안타 비율이 유례 없이 높아졌고 그것이 타율을 끌어올렸다. 시즌 타율 및 BABIP 모두 2016년이 역대 1위, 2014년이 2위, 2015년이 3위다.
출루율과 장타율 역시 크게 높아졌지만 원인이 다르다. 홈런과 볼넷이 아니라, 더 많아진 안타가 출루율과 장타율을 끌어올렸다.
2014년의 타고성향은 확실히 갑자기 나타났다. 2013년 4.65점이던 경기당 득점이 5.62점으로 1점 가까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득점을 주도한 BABIP은 2007년 이후 꾸준히 높아지는 추세를 보인다.
BABIP가 상승하는 이유는 둘 중 하나다. 야수의 수비범위가 좁아졌거나, 타구의 질이 좋아졌거나. 둘 중 하나를 꼽으라면 후자다. 1999년이나 2009년 만큼은 아니더라도 홈런 증가 현상이 함께 나타났다. 타자들이 이전보다 더 강한 타구를 날리고 있다고 보는 게 개연성이 있다.
그렇다면 타구 질의 향상은 왜 일어났을까. 투수들의 수준이 떨어졌기 때문일까. 섣불리 단정하긴 어렵다. 꾸준히 진행되던 BABIP 증가가 왜 갑자기 2014년을 기점으로 유독 가팔라졌는지도 설명해야 한다. 투수에 비해 타자의 수준이 향상되었다 해도, 1년 만에 급격한 향상이 일어났다고 보는 건 무리다. 타고, 또는 투고 현상의 원인은 휠씬 더 다양하다.
과거 타고투저 시즌 전후에도 외적 변수는 많이 있었다. 1998년엔 외국인선수 제도가 처음 도입됐다. 잠실구장의 좌우펜스가 95m로 당겨지기도 했다. 스테로이드 등 경기력 향상 약물 복용 의혹이 넘쳐났던 시기기도 하다. 2007년에는 한동안 13인치였던 마운드 높이가 10인치로 조정되기도 했다.
2013시즌에는 NC다이노스가, 2015시즌에는 kt위즈가 새로 리그에 진입했다. 적지 않은 구장이 신축 혹은 개보수를 통해 규격이 달라졌다. 2014년에는 외국인선수 제도가 3명 보유 2명 출전으로 확대되며, 한동안 실종됐던 '외국인 타자'가 등장했다. 공인구 반발력과 스트라이크존 크기·모양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원인이 무엇이었든, 득점환경이 극단적인 흐름을 가질 때 리그는 적절한 균형점을 잡아갔다. KBO리그 뿐 아니라 메이저리그, 일본프로야구에서도 그랬다. 야구는 평균이 지배하는 경기지만, 투수와 타자의 기향 향상은 불균등하게 나타나는 시점이 있다. 공과 배트 같은 경기도구 역시 시대에 따라 변한다. 경기장 규격도 그렇다.
하지만 그에 앞서 타고투저의 정확한 원인 분석이 먼저다. 또 선택될 정책이 미칠 효과에 대해 정교한 분석도 필요하다. 가령 1999년 홈런 증가가 주도한 타고 성향이 강해지자 KBO는 마운드를 높였다. 하지만 영향은 미미했다. 타고 현상은 그 뒤로 2-3년 동안 더 지속되었다. 2001년에 이르러 홈런은 감소했지만 볼넷이 증가하며 또다른 양상의 타고현상도 나타났다. 이후 득점이 너무 적어지자 2007년에는 마운드 높이를 13인치에서 10인치로 낮췄다. 그런데 타고투저가 다시 찾아온 때는 2년 뒤인 2009년이었고, 곧 사그러들었다.
2010년에는 스트라이크존을 넓혔다. 그해 시범경기 동안 “이렇게는 야구를 못한다”는 불평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2010년 평균 득점은 전해 대비 불과 0.2점도 채 줄어들지 않았다. 정작 큰 폭의 득점하락이 나타난 것은 이듬해 2011년이었다. 또 그 이듬해인 2012년은 평균득점이 더 낮아져서, 2000년대 이후 2번째 저득점 시즌이 되었다.
어떤 변화는 효과가 즉시 나타나지 않는다. 선수들의 적응으로 상쇄되기도 한다. 의도한 방향과 반대로 나타날 수도 있다. 또 새로운 환경에 대응한 전략과 기술의 개발로 그 효과가 증폭되는 경우도 있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규칙이나 구장 환경을 바꾸는 게 전부가 돼선 안 된다는 점이다. 투수나 타자의 기술과 전략 향상을 유도하는 변화가 돼야 한다.
메이저리그의 경우 타자들의 파워 증가로 장타가 늘어나자 싱커나 커터와 같은 변형패스트볼이 유행했다. 통계 분석으로 BABIP가 중요하다는 사실이 발견되자 시프트가 극적으로 늘어났다. 그러자 홈런과 삼진이 동시에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타자들이 삼진이라는 비용을 감수하며 장타를 노리는 스윙을 시도하고 있다는 정황이다. 2010년대 이후 스트라이존 좌우폭이 좁아지고 위아래가 넓어졌다 그러자 투수들은 높은 쪽의 라이징무브먼트, 몸쪽의 커터 무브먼트, 낮은 쪽의 싱킹 무브먼트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피칭을 했다.
결국, '타고투저'가 완화돼야 한다면 그 자체가 목적이어선 안 된다. '득점을 줄이자'가 아니라 '더 수준높은 야구를 만들자'가 우선돼야 한다.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363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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