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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볼인플레이] WBC와 인사이드 피치의 '글로벌 스탠다드'

일간스포츠, 2017.03.06 



메이저리그에 "가족을 생각하면 몸 쪽을 던지고 친구를 생각하면 바깥쪽을 던져라"는 격언이 있다.   

 

투수가 타자를 이겨 내기 위해 거는 몸 쪽 승부는 그렇게 중요하다.  감독들이 투수를 칭찬할 때 흔히 쓰는 클리셰에도 ‘몸 쪽 공을 던질 줄 안다’는게 있다.

 

KBO리그 투수의 패스트볼 로케이션을 스트라이크존 중앙을 기준으로 나눠 보면 바깥쪽이 57%, 몸 쪽이 43%로 바깥쪽이 약간 더 많다. 그런데 외국인 투수들은 몸 쪽 승부를 좀 더 즐겼다. 한국인 투수의 몸 쪽 승부 비율이 42%인데 외국인 투수들은 48%로 6%포인트 더 높다. 그들이 수준 높은 투수여서 그럴 수도 있지만, 성향의 차이 때문일 수도 있다.  미국 마이너리그 트리플 A 의 평균 몸 쪽 승부 비율도 46%로 KBO리그 평균보다 높다.

 

한국 투수들이 공이 타자의 몸에 맞는 것을 유독 부담스러워해서일 수도 있다. 게다가 한국 타자들은 홈 플레이트에 좀 더 다가서는 편이다. 하지만 스트라이크존도 관계가 있을 수 있다. 


<그림> 투수시점 . 스트라이크 판정 비율 70% 이상 기준. 사각형은 높이 50~100cm, 가로 -30~30cm. KBO 리그 2016, 트랙맨 / MLB 2016 PitchFX


흔히 KBO 리그 스트라이크존은 메이저리그에 비해 몸 쪽이 더 넓다고 말한다. 투구추적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실제로 그런 면이 있다. 하지만 차이는 좀 더 복잡하다. 기본적으로 MLB 스트라이크존은 위아래가 넓고 KBO 리그는 좌우가 넓다. 그런데 타자가 어느 쪽 타석에 서느냐에 따라 특징이 다르다. 좌타자 몸 쪽은 KBO리그가 MLB보다 공 한 개 정도 더 넓지만 우타자 몸 쪽은 거의 같다. 스트라이크존의 차이는 투수의 피칭 전략에 영향을 줬을 것이다. 


패스트볼을 던질 때 KBO 리그에서는 좌타자 몸 쪽 공략이 더 많았다. 좌타 43.6%, 우타 39.8%다. MLB에서는 반대다. 우타 47.5%, 좌타 37.6%로 우타자를 상대할 때 몸 쪽 승부가 많았다. 투수들은 아마도 리그의 판정 성향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투수가 더 넓은 스트라이크존의 유리함을 활용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우타자의 경우는 두 리그의 몸 쪽 존 너비가 거의 비슷했다. 그럼에도 MLB의 우타자 상대 몸 쪽 승부 비율 47.5%는 KBO 리그의 39.8%보다 휠씬 높다. 여기에도 스트라이크존의 영향이 있을까. 


몸 쪽 공략은, 성공했을 때 투수에게 우위를 주지만 동시에 실패의 위험부담도 따른다. 제구가 어긋났을 때 공짜 출루를 허용할 위험도 문제지만, 사용할 수 있는 구종이 제한된다. 타자가 몸 쪽 공에 받는 압박은 바깥쪽에 비해 더 빠른 반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몸 쪽 공략에는 느린 변화구가 아니라 빠른 속구가 필요하다. 그래서 구속이 받쳐 주지 못하면 효과는 반감된다. 하지만 모든 투수가 시속 150km 이상의 강속구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메이저리그(MLB) 투수들은 KBO 리그 투수들보다 평균적으로 더 빠른공을 갖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MLB의 타자들은 그 빠른공에 잘 적응돼 있다. 몸 쪽 공략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뭔가 더 특별한 무기가 필요하다. 새로운 구종·구질의 개발이 그렇게 이루어진다.


그래픽 - 일간스포츠


하나는 로케이션이다. 구속이 같아도 몸 쪽에 더 붙일수록 그리고 높이가 높을수록 타자에게 더 빠른 반응이 필요하다. 결과적으로 스피드건에 찍힌 숫자는 같지만 타격에 영향을 미치는 효과 구속이 빨라진다. 하이 패스트볼과 커터가 그런 맥락에서 맞는 구종이다. 라이징 무브먼트가 있는 하이 패스트볼은 높은 곳에서 더 높은 곳으로 움직인다. 커터는 반대 손 타자에게 던졌을 때 몸 쪽에서 더 깊은 몸 쪽으로 움직인다. 타이밍으로 타자를 압박하는 전략이다. 


다른 하나는 배트의 중심을 피하는 움직임이다. 타자 앞에서 가라앉는 공, 싱커다. 커브나 스플리터는 크게 떨어지며 타자의 헛스윙을 노리지만 싱커는 휠씬 짦게 변한다. 대신 구속은 포심패스트볼과 거의 같다. 헛스윙이 아니라 빗맞은 타구를 노리는 구종이다. 그래서 몸 쪽 낮은 곳을 노린다. 이 두가지 전략은 압도적인 구속 없이도 몸 쪽 승부를 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MLB의 (특히 우타자) 스트라이크존은 이런 시도가 효과를 볼 수 있는 유리한 환경이 된다. 하지만 KBO 리그는 달랐다. 하이 패스트볼이나 싱킹 패스트볼을 던졌을 때 기대할 수 있는 이익이 상대적으로 적다. 몸 쪽 높은 존이나 몸 쪽 낮은 존이 좁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자들 역시 이런 공에 대한 해법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할 동기가 약했을 것이다. 하지만 WBC의 승부는 새로운 ‘선택 압력’이다.           


6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서울라운드 한국전 1차전 선발로 예고된 이스라엘팀 투수 제이슨 마르키스는 패스트볼을 전부 싱커로 던진다. 좌·우타자 모두에게 60% 가까운 비중이다. KBO 리그에서 보기 힘든 유형이다. 평균 구속은 시속 140km 정도지만, 역회전이 강하게 걸려 있고 집요할 정도로 스크라이크존의 낮은 경계선을 공략한다. 다만 이 공은 2스트라이크를 잡아 놓기 전까지는 몸 쪽보다는 바깥쪽 낮은 로케이션이 더 많다.


구원등판이 유력한 딜런 액설로드는 좌타자 몸 쪽에 커터, 우타자 몸 쪽에는 투심을 붙이는 승부에 능숙하다. 대신 한국의 좌타자들은 KBO 리그에서보다 몸 쪽 바짝 붙은 공에 압박을 덜 느껴도 될 수 있다. 그래서 액설로드의 더 중요한 무기는 슬라이더다. 그리고 이 슬라이더야말로 KBO 리그와 다른 MLB의 ‘선택 압력’이 드러나는 구종이다.


KBO리그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리고 더 효과적으로 먹히는 슬라이더는 중간 높이 바깥쪽에서 더 먼 바깥쪽으로 도망가는 움직임이다. 그쪽의 존이 특별히 더 넓기 때문이다. 하지만 액설로드가 던지는 슬라이더는 홈 플레이트 근처 낮은 쪽에서 좀 더 낮은 쪽으로 떨어진다. 그게 MLB의 스트라이크존에 적합한 방식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WBC의 상대팀 타자는 KBO 리그식 슬라이더에 반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들 세계에서 그 공은 대체로 볼이었기 때문이다.    


WBC본선 1라운드 이후부터 판정은 주로 MLB 심판들이 담당한다. 스트라이크존 역시 MLB에 가까울 것이다. 승부의 유불리를 따지자면 낯선 환경에서의 승부는 당연히 부담이다. 하지만 야구의 재미로 보면 장점도 있다. 


미디어환경의 변화로 메이저리그 경기를 보는 것은 어렵지 않아졌다. 톱레벨 선수들의 진출로 간접 비교의 기회도 늘어났다. 하지만 리그의 주축 선수들이 ‘다른 진화 경로를 밟아 온’ 경쟁자들과 팀 대 팀으로 직접 맞붙는 것은 역시 이런 국제 대회 말고는 기회가 없다.  


KBO리그의 수준이 여전히 일본프로야구(NPB)나 MLB에 뒤떨어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예전만큼의 격차는 아니다. MLB 톱플레이어들의 참가도 제한적이다. 그래서 WBC와 같은 국제 대회를 ‘선진 야구 습득의 기회’로 삼자는 슬로건은 덜 와 닿는다. 자국 리그의 인기가 국가 대항전을 향한 관심을 압도하는 상황에서, 순위 경쟁에서 생기는 열기도 한계는 있다. 그렇다면 “야구의 다양성”은 WBC 같은 이벤트의 가장 의미 있는 가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다양성은 그 자체로는 우열이 아니라 차이일 뿐이다. 하지만 발전과 혁신의 기회는 많은 경우 다양성으로부터 온다. 그리고 ‘이종교배’야말로 이 다양성의 가장 흔한 원천이다.  



신동윤(한국야구학회 데이터분과장)

 

데이터는 신비로운 마법도 절대적 진리도 아니다. 대신 "당신 야구 얼마나 해봤는데?" 라고 묻지도 않는다. 그것은 편견 없는 소통의 언어이며 협력의 플랫폼이다.


http://news.joins.com/article/20403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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