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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를 진화시킨 현명한 "이기주의" (1/3) - 연봉조정신청

by 토아일당 2015. 8. 3.


저에게는 남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위로는 한두살 터울로 누나 둘.  대략 그 즈음 평범한(?) 사이즈의  4남매 가족입니다.  고만고만한 터울의 아이들 넷이 북적거리면 뭐든 경쟁이 만만치 않아집니다.  특히 한살 터울 남자형제의 먹을 것 다툼은 어지간한게 당연하겠죠.  

사과 한개, 케익 한조각, 아이스크림 한사발, 빵 한덩이를 동생과 둘이 나눠 먹을 일이 꽤있었는데 누가 조금이라도 더 많이 먹나 신경전이 장난 아니었습니다. 


한살 터울 형제 사이의 규칙은 지극히 명쾌하고 또 합리적이었습니다.   첫째, 둘은 최대한 같은 크기로 먹을 것을 나눈다. 둘째, 다만 형이 아주 약간 더 갖게 되는 것은 서로 인정한다. 

문제는 이것을 실행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이 무엇이며 쌍방의 이해관계자가 어떻게 갈등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두 사내녀석의 아버지는 처음엔 최선을 다해 사과 한개를 귀신같이 똑같은 크기로 나누려고 했고 가끔 그렇게 해냈지만 그렇다해도 둘중 한명의 원망은 늘 같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새로운 방법이 고안되었습니다.  간단합니다.  먼저 동생이 먹을 걸 둘로 나눈다.  그리고 형이 먼저 선택한다.  이상.


이 방법은 놀랄만큼 효과적이었습니다.  동생은 자신에게 돌아온 몫이 많이 작은 경우조차 형이나 아버지를 원망하고 더 나아가 동생으로 태어난 자신의 실존을 부정하던 이전과 달리 더 정밀하게 사과를 나눌 방법을 연구하는데 몰두하게 되었으며,  형은 가끔 두조각이 유독 비슷하게 보일 때 동생에게 먼저 선택권을 양보하여 형제애를 향상시킬만큼의 너그러움과 현명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희소한 자원을 공평하게 나누는 것은 어느 사회, 조직에서나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공평함이란 사과 하나를 둘로 쪼갤때 각각이 얼만큼이나 물리적으로 비슷한가에 있지 않습니다.  어느 시스템에서든 100% 완전무결하게 똑같이 나뉜 2개의 조각을 기대하진 않습니다.  문제는 항상 납득할만한 차이와 납득할 수 없는 만큼의 차이 사이에서 생겨납니다.   분배의 기계적인 형평성이 문제가 아니라 분배의 과정이 납득할만한가 라는게 핵심이라는 뜻입니다.


 

MLB의 연봉조정 salary arbitration 


MLB에서 잘나가는 신예급 선수의 연봉계약 시즌이 돌아오면 자주 듣는 말이 [연봉조정신청자격]입니다.  KBO와 마찬가지로  MLB에서도 구단이 드래프트로 획득한 선수가 FA자격을 취득하기 전까지 그 선수에 대한 배타적인 보유권을 가집니다.  선수는 소속구단 이외의 다른 구단과는 계약할 수 없습니다.  선수입장에서 만약 구단이 제시하는 계약조건을 납득할 수 없다해도 선수생활을 그만둘게 아니라면 그것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보통의 샐러리맨들 연봉협상보다 어떤 면에서는 휠씬 더 험하고 불평등한 관계입니다)  


이런 규약에 대해 선수 측의 반발이 늘 있어왔고 MLB 선수측과 구단측은 풀타임 6년차가 지나야 구단의 배타적 보유권이 소멸되고 다른 팀과 계약할 FA권리를 가지게 되는 기존의 방식을 유지하는 대신 3년 이상 MLB에서 뛴 선수들에게 [연봉조정신청]이라는 옵션을 주는 것으로 타협하게 되었습니다.  

선수는 구단의 계약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을 때,  연봉조정위원회에 조정(arbitration)를 신청하고 그의 결정에 따라 새로운 계약을 체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제도가 시행된 것이 1974년입니다.


그런데, MLB의 연봉조정신청제도는 그 자체로 별로 특별할 건 없어보입니다.   당사자의 합의가 원할하지 않을때 쌍방이 인정하는 제3자가 조정하고 중재하여 결정하는 것은 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식탐이 강한 형과 동생이, “공평하게 그러나 형이 약간 더 갖는것은 인정.  싸울것 같으면 아빠나 엄마에게 갈라달라고 할 것”이라고 하는 아주 명쾌하고 합리적인 규칙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평과 원망, 다툼을 멈출 수 없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해서, MLB 연봉조정 시스템에서 진짜 흥미로움은 다른데 있습니다.


첫째, 구단과 선수측 제시안을 조정하여 결정하는 방법입니다.


MLB의 연봉조정위원회의 의사결정방법은 좀 묘합니다.  물론 선수측과 구단측은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제시하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위원회는 그 둘의 주장을 검토하고 스스로 가진 탁월한 식견과 중립적 가치를 가지고 적정하고 합당한 금액을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조건 선수 측과 구단 측 둘 중 하나를 양자택일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앞서 제 어린시절 아버지의 방법이 떠올랐던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제3의 객관적 중립적 조정자에 대한 환상 같은 걸 좀 가지고 있습니다.  불공정함에 지쳐있는 우리는 공정한 제3의 판관이 있기를 희망하고 기대합니다.  그들은 옳은 결정을 할 수 있을만큼 전문적인 식견과 기술을 가지고 있으며 공평한 결정을 할 수 있을만큼 중립적이며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흔히 시스템 혹은 제도 라 불리는 것에 대한 우리의 이미지입니다.  사과를 공평하게 나누어줄 아빠 같은 존재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게 있기는 있을까요?   있다고 해도 비용대비 효율성이 있을까요?


MLB에서 그들은 제3의 중재자에게 선수의 성적과 기여도에 합당한 금액이 얼마인지 정확히 계산해낼 수 있는 능력 같은 걸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선수 제시액과 구단 제시액 중 어느쪽이 상대적으로 더 적정한지 양자택일할 뿐입니다.   이런 방식의 효율성은 의외로 매우 큽니다.  


만약 중재위원회가 금액을 산정하도록 되어 있다면 선수측이나 구단측이나 자신의 입장을 좀더 과장하고 부풀릴 소지가 큽니다.  쌍방의 주장은 점점 더 큰 격차를 두고 벌어지게 될겁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값을 깍을거라 예상하고 미리 높여부르는 장사의 기술 같이 말입니다.   그리고 중재위원회는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그 근거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걸러내야 합니다.  그렇게 도출된 최종적인 결론은 그러나 양쪽 다의 비난을 듣게 되겠지요.  



하지만 양자택일의 방식은, 중재위원회가 아니라 선수측, 구단측 쌍방이 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판단을 하도록 압박합니다.  쌍방은 이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적정 수준의 금액을 [중립적인 입장]에서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하여 연봉조정신청을 한 경우 대부분은 위원회가 열리기도 전에 이미 비슷해져버린 서로의 제시안을 확인하고 대략 도장을 찍습니다.  

그들은 중재위원회에게 초월적인 심판자의 능력을 기대하지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대신 당사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좀더 객관적이도록 강제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둘째, 연봉조정위원회의 구성원의 성향입니다.


KBO에서 가장 잘 알려진 연봉조정신청 사례는 2011년 이대호 케이스입니다.  FA를 한해앞둔 그는 6억3천만원과 7억원의 간격을 두고 합의점을 찾지못하고 조정신청에 이르게 됩니다. 

결국 구단 제시액으로 결정이 나면서 2002년 유지현을 제외하고 단한번의 승리도 없던 선수측 필패 전통이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전무후무한 타격7관왕 이대호마저 조정신청을 이기지 못하면서 공정성 논란이 생긴 것은 당연합니다.   


이때 조정위원회의 구성은 이상일(KBO사무총장) 최원현 (KBO고문변호사) 김소식(전 대한야구협회 부회장) 박노준 (우석대교수) 김종(야구발전연구원 원장) 이상 5명이었습니다.    

우선 KBO 측의 위원이 실질적으로 구단의 입장을 대변하는 성향을 가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리고 나머지 야구관계자들 역시 이렇게 저렇게 구단측과 엮이기 쉬운 입장이다보니, 선수측의 입장을 대변할 위원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습니다.  틀린 생각은 아닐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 어쩌면 더 중요한 논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위원들이 하나같이 모두 야구계의 인사들이라는 것입니다.


일견 당연해보이는 이런 인선은, 조정위원회가 탁월한 능력 즉 소위 전문성을 바탕으로 [기술적으로 옳은 판단]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MLB의 경우 조정위원을 맡는 것은 야구에 대한 전문가들이 아니고 모두 야구와 별 관계없는 변호사들입니다.  그들은 어떤 근거로 얼만큼의 금액이 기술적으로 적정하다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 그저 선수측의 근거와 구단측의 근거 중 어느것이 더 [논리적으로] 타당한가를 판단합니다.  


판사가 사건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아니라 법과 논리에 대한 전문성으로 판결을 하는 것처럼, 법률가들이 저 자리에 서는 이유는 그들이 [야구]에 대한 전문가라서가 아니라 [판단]에 대한 전문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들이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두는 절차는 배심재판에서 고소인측과 피고소인측이 배심원 후보 중 부적격자를 배제해나가는 것과 비슷하게,  조정위원 후보 리스트에서 부적격자를 한명씩 제외시킨 후 조정위원을 최종 결정하는 것입니다.   탁월한 능력과 공정성을 가진 최선의 초월자를 위촉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후보자들 가운데 부적격자를 제외시키는 것을 통해 조정위원을 결정합니다.  


셋째, 선수노조의 역할입니다.


MLB의 연봉조정신청은 구단이나 MLB사무국이 아니라 선수노조에 신청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조정위원회에서 선수의 입장을 구단에 맞서 주장하는 것도 선수가 아니라 선수노조입니다.  (물론 실무적인 일은 대부분 선수가 선임한 에이전트가 할테지만)   연봉조정신청이란 엄밀하게 선수의 권리가 아니라 선수노조의 권리라는 것입니다.


현재 MLB 운영에 관한 중요한 의사결정주체는 구단주회의나 그들의 대표자 커미셔너 혹은 실무조직 사무국이 아니라 [구단측과 선수노조측의 단체협약]입니다.  새로운 구단의 합류, 시즌 경기수의 결정, 와일드카드의 숫자 같은 포스트시즌의 룰,  최근의 “포수의 홈 충돌 방지규정” 같은 것들까지 구단-선수 협약에 의해 결정됩니다.  


KBO의 최저연봉이 선수들의 읍소를 적당히 고려해서 구단주 회의를 최고결정기구로 가진 KBO에 의해 결정된다면,  MLB에서는 선수노조와 구단측의 협약으로 정합니다.  합의가 되지 않는다면?  예. 그럼 파업이죠.   MLB선수노조는 미국에서도 유명한 강성노조입니다.  


선수노조는 구단 간 트레이드에 대한 승인권한도 가지고 있습니다.  A.로드가 텍사스 시절 스스로 연봉삭감을 감수하며 보스턴으로의 트레이드 이적을 합의했을 때, 그 조건을 승인할 수 없다며 트레이드 자체를 무산시켰던 것도 선수노조였습니다.  선수 본인이 그러고 싶다는데 노조가 가타부타 참견을 하는게 한국적 시각에서는 이상해보일지 몰라도 그것이 전체 선수의 권익을 저해하는 일이라 판단할 경우 노조는 그럴 권리가 있으며 이것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집니다.  


1994년에는 파업으로 시즌을 중단시킬 정도의 강성노조로서, 동시에 최근 20년 동안의 비약적인 수익증대의 파트너였던 선수노조의 존재가, 적어도 MLB에서는 프로야구 비즈니스에 긍정적 존재였다고 볼 때, KBO에서도 마찬가지로 선수의 권익이 향상되어야 비즈니스로서 프로야구가 더 발전할 수 있다고 보면 요즘같은 선수협의 뜬금없은 뻘짓은 참 답답해보이긴 합니다.


에이전트 제도를 도입한 것은 1969년,  연봉조정신청제도가 생긴 것이 1974년입니다.  

애당초 조정신청제도를 얻어낸(빼앗은) 당사자가 마빈 밀러를 중심으로 1966년에 재결성된 MLB선수노조(MLBPA: MLB Players Association - Union은 아니네요)였습니다.  그런데 KBO에서도 선수협의 결성을 통해 FA제도가 도입되긴 했으나 선수협은 절차적, 제도적으로 FA제도 운영에 관련된 어떤 역할 같은걸 갖고있지는 못합니다.  (KBO연봉조정제도는 1984년부터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MLB의 선수노조는 관념적, 정치적으로만 선수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선수권익보호제도 자체의 운영주체이기도 합니다.   막연한 대변자 역할이 아니라, 실질적 제도적 행정적 역할이 오히려 그들을 좀더 균형감각과 실무적 역량을 가진 조직을 키워왔을 겁니다.  다르게 말한다면 그들은 이해관계가 대립될 때 지독하게 단호하고 급진적인 투쟁조직이지만 그외의 상황에서는 아주 행정적인 관료조직으로 운영됩니다.  


팬들은 (당연히) 노조와 파업에 반대했고 귀족노조라는 비난도 받았지만, 지금과 같은 MLB의 성장에는 그들의 역할도 컸습니다. 아이들은 야구를 사랑하며 그들은 파업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성장해서 오래오래 야구를 즐기기 위해 무엇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게 될까요?



메이저리그를 진화시킨 "현명한 이기주의"

연봉조정신청제도 Salary Arbitration (1/3)  http://baseball-in-play.com/225

자유계약선수 보상 - 퀄리파잉 오퍼 (2/3)  http://baseball-in-play.com/226

사치세와 수익분배제도, 그리고 선수노조 (3/3)  http://baseball-in-play.com/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