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egobaseball
이슈InPlay

AlphaGo의 데미스 하사비스는 '중독성' 게임개발자 출신입니다.

by 토아일당 2016. 3. 17.


알파고를 만든 (물론 혼자 만든 것은 아니지만) 데미스 하사비스에 대해 많이 알려진 이력은 그가 뇌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것 그리고 어린시절 체스천재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한가지가 빠져있는데 그가 게임개발자 출신이라는 것이죠.


1994년에 발매된 비디오게임 [테마파크]


고등학교를 2년 일찍 마친 그는 16살 때 불프로그(Bullfrog)에 들어갑니다.  흔히 세계 3대 게임디자이너로 불리는 피터 몰리뉴의 스튜디오였습니다. 레벨디자인부터 시작한 그의 게임업계 경력은 이듬해 빅히트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테마파크]의 공동기획과 리드프로그래밍을 맡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그의 홈페이지 Short Bio 의 첫줄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I was previously a well-known UK videogames designer and AI programmer. I started my professional games career at the age of 16 working at the legendary Bullfrog Productions


게임을 더 잘 만들고 싶어서 캠브리지대 컴퓨터 공학과에 진학했고 (그전까진 고졸이었다는거네요) 졸업 후에는 다시 피터 몰리뉴에게 돌아와 전설적인 God게임 블랙&화이트의 인공지능 부분을 맡습니다.  그가 2009년 영국왕립예술협회 회원이 된 것은 게임업계의 경력 덕분이었다고 합니다.


한 비디오게임 가이드북에 소개된 게임개발자 데미스 하사비스의 이름


인공지능에 본격적인 관심을 두게 된 그는 뇌과학 분야 박사학위를 받았고 2010년 스타트업 DeepMind를 만들게 됩니다.  구글은 이 회사를 인수하는데 4억파운드(6700억원)를 썼고 얼마전 이세돌과의 챌린지 매치로 이어졌습니다.


요컨데 바둑과 인공지능의 역사에 절대로 지워지지 못할 흔적을 남긴 천하의 데미스 하사비스가 게임업계 출신이라는 겁니다. 


의외로 곳에서 발견되는 게임업계의 흔적은 하나가 더 있습니다.  야구통계 또는 세이버메트릭스에서 입니다.


2001년 법률회사 인턴이며 그냥 흔한 대학원생이었던 보로스 맥크라켄이 “배트에 맞아 그라운드로 날아간 타구가 안타가 될지 아웃이 될지는 투수의 능력과 상관없다”는 지독하게 급진적인 주장을 세상에 알립니다.  엄청난 논란 끝이 이 주장은 받아들여집니다.  소소한 수정과 보완이 필요하긴 했지만 그의 발상과 발견은 야구통계의 역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아마도 1982년 빌제임스가 상황중립적인 타자의 득점생산성을 출루수*루타수 라는 아주 간명한 공식으로 계산하는 RunCreated를 만들어낸 것, 그리고 2007년 톰탱고와 그의 동료들이 야구의 모든 상황을 3종류 아웃카운트, 8종류 주자상황으로 환원시켜 기대득점(Run Expectancy) 으로 정리해서 설명해낸 것과 함께 --- 보로스 맥크라켄의 DIPS이론은 가장 혁신적이며 가장 영향력이 큰 세이버메트릭스의 성취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21세기 이후 보로스 맥크라켄의 DIPS(또는 BABIP) 이론(=가정)에 영향을 받지 않은 투수평가지표는 없다고 말해도 좋습니다.   이중 가장 대표적이며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것은 그의 이론에 입각해서 톰탱고가 2007년에 완성한 FIP 수비무관자책점 입니다.


FIP(Fielding Independent Pitching ) = 

(3*(BB+HBP) - 2*SO  + 13*HR) / IP + FIP상수


이 계산식은 인플레이 타구의 결과를 완전히 배제하고 사사구, 삼진, 홈런 갯수만으로 투수를 평가합니다.  그리고 이 방법은 평균자책점ERA를 이용한 것보다 더 많은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톰탱고의 FIP보다 10년 쯤 앞서, 심지어 그 이론적 출발이었던 보로스 맥크라켄의 폭탄 같은 아티클 Pitching and Defense:How Much Control Do Hurlers Have? 가 발표되기도 전에 그와 거의 같은 아이디어와 계산방법을 사용한 이가 있었습니다.  


클레이 드레스로Clay Dreslough 가 2000년 7월 발표한 글은 “당신이 베이스볼모굴을 플레이했다면 이미 DICE를 경험한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DICE 역시 투수평가지표 쯤 되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DICE(Defense-Independent Component ERA) = 

(3*(BB+HBP) - 2*SO + 13*HR)/IP + 3.00


FIP상수가 들어갔던 자리에 3.00 이라는 값이 들어가 있을 뿐 구조도 파라메터도 완전히 똑같습니다.  FIP상수 값은 시즌마다 좀 달라지는데 보통 3.00 에서 3.20 사이에 있습니다.  


베이스볼모굴은 시뮬레이션 야구게임인데, DICE는 이 게임의 시뮬레이션 알고리즘에 포함된 계산방식의 일부였습니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1998년 버전부터는 이 알고리즘이 탑재되어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겜덕이며 야덕이었던 베이스볼 모굴의 개발자들은, 야구통계 역사에 가장 혁명적인 영향을 끼친 DIPS이론을 이미 그 발표 이전부터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것을 톰탱고라는 당대 최고의 세이버리스트가 정리해서 FIP 계산식으로 만들기 10년 전에 이미 게임에 활용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바둑과 게임, 그리고 야구는 전략적 승부라는 것 외에 discrete한 바탕 위에서 작동한다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 두뇌의 전략적인 취향에 잘 맞지만 또 컴퓨팅이 다루기 쉬운 접점도 됩니다.  (하나를 좋아하면 나머지 둘도 좋아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그것을 마약이나 질병 또는 범죄 같은 걸로 취급하는 한국이 아니라도, 비디오게임은 정통파는 확실히 아닙니다.  이세돌-알파고 대결 이후 데미스 하사비스가 소년 체스천재였다는 이력은 언론 등에서 아주 흥미롭게 그럴듯하게 다루어지고 화제도 되었음에도 16살 소년 하사비스의 상상력을 가장 먼저 사로잡은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가 어디로부터 인공지능에 대한 비전을 발견하게 되었는지 말하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세이버메트릭스의 혁명적 아이디어가 얼마나 드라마틱하게 발전해왔는지 그것이 미치는 영향과 힘이 얼마나 강해졌는지를 많은 이가 말하지만 --- 앞서간 발상에서 또 정교함에 있어서도 탁월한 완성도를 보인 야구게임 알고리즘을 말하는 이가 별로 없는 것도 같습니다.


세이버메트릭스는 여전히 진행중입니다.  그 본질이 불변의 공식 같은 것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비대칭 정보를 누가 먼저 찾아내고 그것을 통해 경쟁의 비교우위를 점하는가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며, 적어도 아직은 우리가 이해하고 해명해야 할 야구의 남은 부분이 아주 많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과 머신러닝의 최신기술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게임” 바둑을 통해서 모든 사람들의 관심과 상상력을 사로 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주역 하사비스는 이 비전을 소년개발자 시절 “게임”으로부터 얻었던 것일테죠. 


세이버메트릭스는 바야흐로 괴짜들의 별난 취미가 아니라 역사와 전통의 야구판을 쥐고 흔드는 주류 중의 주류, 권력 중의 권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야구는 여전히 가장 대중적이고 인기있는 "전략게임"입니다.  오히려 이럴 때 게임과 같은 변방에서 “진짜”가 튀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결론: “덕질”은 위대합니다.  “덕력”이 세상을 바꿀겁니다.  


붙임. 

제가 “게임” 출신이라 이런 글을 쓰는건 아닙니다.  ^^;

한국 정부가 게임을 목졸라 죽이려 이토록 골몰하는 것도 게임업계의 재능이 다른 분야로 퍼져나가 위대한 창조를 해내길 바라는 깊은 뜻이 있어서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