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사무국이 새로운 포스팅시스템에 대해 800만$ 상한선을 말한 것에 대해, 반응은 중 이런 것이 많다. 하나는 지들이 뭔가 감히 한국선수 가치를 800만달러$ 한계로 정하느냐는 분개이고, 다른 하나는 하지만 그렇게 되면 MLB구단이 포스팅비를 덜 쓰는대신 선수에게 돌아갈 몫이 커질 수도 있겠다 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둘 다 틀렸다.
포스팅fee 상한선이 낮아지는 것과 선수에게 돌아갈 몫이 늘어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박병호가 적은 연봉을 받은 것은 구단이 이미 포스팅에 돈을 많이 썼기 때문은 아니다.
1.
핵심은 독점협상권 여부다.
박병호 케이스에서 포스팅비가 높아진 것은 복수의 구단이 협상권을 따내기 위해 경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봉이 적어진 가장 큰 이유는 그렇게 독점협상권을 얻는 미네소타는 다른 구단과 경쟁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KBO리그에서도 다른 구단과 경쟁해야 하는 FA자격 선수의 연봉은 높고, 독점협상권을 갖는 Non-FA선수의 연봉은 낮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박병호는 주는대로 받든가 MLB진출을 포기하든가 양자택일을 해야 했다.
그리고 아는 바와 같이, 적은 연봉을 받더라도 "도전" 하겠다고 이미 맘먹은 박병호는 그냥 주는대로 받았다. 미네소타는 박병호가 그런 마음이란 것을 당연히 알고 있었고, 주는대로 받을 걸 뻔히 아는데 돈을 많이 줄 이유가 없었다.
2.
물론 낮은 상한선이 선수가 받을 돈에 영향을 미치게는 될 것이다. 상한선이 낮으면 더 많은 구단이 협상권을 갖게 되고 복수 구단의 경쟁을 통해 선수가 더 많은 돈을 받을 가능성이 생겨나는 경로를 통해서다.
다만 이 경우라도 선수의 몫이 커지는 것은 "경쟁" 때문이 주된 것이고 구단의 "예산" 은 그 다음 문제다. 포스팅비 상한선이 높다고 해도, 여튼 지금의 1구단 독점교섭권이 아니라 자격을 가진 복수 구단의 경쟁교섭이라면 선수 몫은 커지게 될 것이다.
3.
그런데, 비지니스를 하는데 [자존심]을 먼저 논하는 것은 영리한 일이 아니다. 장사를 하는데 상대에게 받아내야 하는 것은 [배려와 존중]이 아니라 [이익]이다.
4.
포스팅에 관한 규칙은 어차피 MLB와 KBO가 쌍방합의해야 하는 문제다. 합의 안되면 그냥 하던대로 하던가 아니면 포스팅이라는 제도가 정지되는 것 뿐이다. 물론 아주 극단적인 귀결이 없진 않다. MLB 쪽에서 한국시장에 대한 KBO의 기득권을 인정 못하겠다고 버티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KBO선수는 구단과의 계약을 파기하고 자유롭게 MLB구단과 계약할 수 있게 된다. 물론 KBO는 그 선수의 영구자격박탈 등으로 맞설 것인데, 현실적으로 이렇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여튼, 상대가 일방적으로 우리 값을 헐하게 매겼다는 비분강개는 불필요할 뿐 아니라 이익이 되지도 않는다. 쿨하게 "싫은데?" 라고 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된다면 아마 현재의 제도가 그대로 유지될 개연성이 클 것 같다. (기존 협약의 만료 및 갱신관련 조항에 따라 다르겠지만)
5.
호도되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본질은, 새로운 포스팅 시스템에 대한 협상이 --- MLB의 이익과 KBO의 이익이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KBO선수와 KBO구단의 이익이 충돌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애당초 포스팅시스템이란, 미국과 한국 양쪽에서 프로야구에 대한 독점권을 가진 두 조직이 합의(또는 담합)에 의해 자기 나라에서 확보된 선수보유권.을 상대 나라에서도 인정하자고 규칙을 정한 것이고 그 결과로 선수 이동에 대해서 [이적료]라는 권리를 확보한 것이다.
이 합의(또는 담합)이 없다면 한국 드래프트로 부터 생겨나는 선수에 대한 배타적 보유권은, 다른 나라에서는 인정되지 않을테니 FA자격 이전에 KBO구단과 계약을 거부한 어떤 선수가 그 힘이 미치지 않는 다른나라 리그에 갈 때 제약이란게 있을 이유가 없다.
--- 여기서 쓴 "담합"이란 표현은 그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기 때문이지 부정적인 뉘앙스를 주기 위한 것은 절대로 아니다. 경제학적으로 포스팅시스템은 독점적 지위를 가진 시장 플레이어의 카르텔이다.
6.
가장 단순하게 생각해서, KBO가 MLB의 제안이 맘에 안들면 보유권을 가진 선수를 안팔면 그만이다. 상품을 팔 사람 입장에서, 사겠다는 사람이 부른 값이 맘에 안들면 안팔면 그만이다. 그걸두고 자존심을 논하며 화낼 이유는 없다. 대신 반대급부가 있다. 그 선수가 FA자격을 얻는 순간 구단은 모든 권리를 잃는다.
해서, 이번 포스팅 제도 변경 논의는, FA자격 연한과 포스팅신청 자격 연한이 기껏 2년밖에 차이 안난다는 것으로 연결되어야 가장 합당하다.
구단은, 상대가 부른 값이 맘에 안들면 안팔면 그만이지만, 잠재적 구매자(MLB구단)나 잠재적 수혜자(선수)나 2년만 기다리면 이적료 없이 계약할 권리가 생긴다. 구단이 받는 이적료(포스팅비)는 바로 이 "2년"에 대한 값이다. 그런데 2년이란 기간은 좀 짧다. NPB와 비교해도 그렇다.
6-1.
단, 적절한 수준보다 낮은 포스팅피 상한선은 시장결정왜곡을 초래할 가능성을 만들 것이다. 류현진이나 박병호 같은 최고수준 선수의 이적료로 800만$는 확실히 낮다. 구단이 시장-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면, 최고수준의 선수의 포스팅은 거절하고 그 아래급 즉 800만$ 이하의 이적료 가치가 있는 선수의 포스팅만 허용하는게 된다.
최고가격제가 자원의 합리적 배분을 저해하는 전형적인 시장개입 실패 유형이다. 단, 한국 구단이 과연 시장-합리적인 선택을 할 것이냐 또는 할 수 있을 것이냐가 남을 것이다. 이 간격 사이에 선수의 앞길을 막니 마니, 국위선양을 하니 마니 하는 좀 재미없는 분란이 놓여진다. 해서 이 부분에 한해서라면, KBO구단의 이해관계와 한국팬의 이해관계는 일치할 수 있다. (선수의 이해관계는 또 다르겠지만)
7.
시장에서 공정함(?)이란 착한 대의가 아니라 힘의 균형과 시장 플레이어의 (소위) 합리적 선택의 균형 속에서 만들어진다.
구단이 가진 카드는, "그 값에는 안판다" 이고 선수(및 그 선수를 사려는 MLB구단)가 가진 것은 "그러면 2년 있다가 이적료 없이 갈거야" 라는 카드다. 선수에 대해 7년 근처의 기간 동안 배타적 보유권을 갖는데 공정한지를 제외하면, 어쨌든 합리적인 균형이다.
이 두 카드의 균형점에서 포스팅제도의 규칙이 정해질 것이다.
시장과 경쟁이 더 나은 생산성에서 이롭다고 믿는 것은 무식함일 뿐이다. 공정한 경쟁의 규칙이 강제되지 않는 한에, 시장은 절대로 효율성을 낳지 않는다. 대기업이 자신이 가진 탁월한 자본과 인재를 앞세워 빵장사를 시작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빵값이 싸졌나? 빵이 더 맛있어졌나? 더 매력적인 새로운 빵 레시피가 만들어졌나? 어떤 힘과 사회적 합의에 의해 제대로 통제되지 않는 시장은 그저 멍청한 비효율을 양산할 뿐이다. 그것이야 말로 시장의 본질이다.
하지만 끔찍한 갑질 난무 속에서라면, 이런 시장 조차 더 나은 결과를 만는다.
과정이 어찌되었든 FA제도란 것이 이미 있고, 상대적으로 선수-구단의 역관계가 동등한 MLB시장과 이미 연결된 이상 --- 분명히 변화가 생길 것이다.
8.
여튼, 이건을 한국프로야구의 자존심 같은 식으로 여기는 오해를 하지 말자. 그리고 미국프로야구와 한국프로야구의 갈등이라 여기지도 말자. 이건 미국구단과 한국구단의 이익이 충돌하면서 그들끼리 지켜왔던 카르텔에 생긴 균열이다.
그리고 균열을 일으킨 것은 명백히 KBO선수들의 기량향상 덕분이다. 따라서 선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 이 균열을 어떻게 이용하면 선수가 더 큰 이익을 취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그들은 무임승차를 욕심내는 것이 아니다. 이 기회는 그들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헌데 애매한 점이 있다. NPB의 경우, 포스팅제도수정을 선수협이 주도했다.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한국 선수협은 여기에 대해 별 관심도 없는 것 같다. 문제라면 리그 자존심이 아니라 이런게 문제다. 정작 이 논의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할 [선수]라는 주체가 없다는 것. 그들이 협상권을 가질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정확히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음.
9.
다만 팬의 입장에서는 영 불편하다. 나는 최고의 선수들이 한국리그에서 뛰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 해외의 뛰어난 선수들이 한국리그에서 뛰게되길 바란다.
박병호가 미국리그에서 100홈런 기록을 세운다 한들 그건 국위선양인 시대가 아니다. 한국인의 우수성을 본토에서 떨쳤다며 좋아할 의사가 1도 없다. 그건 끔찍하고 우울한 국부유출일 뿐이다. 그런 박병호를 내 집 앞 야구장에서 볼 수 없는 비참한 슬픔일 뿐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국내시장확대이다. 한국프로야구의 발전이란 최고의 선수가 천문학적 돈을 받고 미국에서 잘나가는게 아니다. 세계 최고의 재능을 우리가 우주적인 돈을 주고 데려다가 우리 앞에서 그 위대한 플레이를 펼치도록 하는 것이다.
두번째 박병호가 없기를 바란다. 포스팅시스템 때문에 자기 몫을 제대로 못받는 일을 말하는게 아니다. 그정도의 재능이 내 발 닿는 야구장에서 사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최고의 선수들이 하는 경기를 보고 싶다.
하지만 포스팅시스템 변경 건이 어떻게 풀리든 국내시장확배에는 별 도움이 안될 것이다. 난 그저 그게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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