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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볼인플레이] '기계'는 인간 심판을 대신할 수 있을까?

일간스포츠 2017.05.22 



2003년 6월 2일, 애리조나 투수 커트 실링은 메이저리그 커미셔너 사무국으로부터 벌금 1500달러 처분을 받았다.


5월 24일 샌디에이고전에서 실링은 홈구장에 설치된 카메라 한 대를 부숴 버렸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퀘스텍(QuesTec) 시스템의 일부로 사무국이 심판의 스트라이크 판정을 평가하기 위해 도입한 최신 장비였다. 실링은 그 경기 주심으로부터 "기계의 측정치에 맞춰 스트라이크존을 바꾸고 있다"는 말을 들은 뒤 화를 참지 못했다.


당시 메이저리그에선 존 판정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었다. 높은공엔 지나치게 박하고, 바깥쪽 먼 공은 너무 자주 스트라이크가 됐다. 이에 사무국은 카메라로 공의 궤적을 촬영해 홈 플레이트 통과 위치를 분석하는 장비를 도입했다. 심판 판정의 정확도를 평가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리고 이는 격렬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야구가 순수성을 잃었다'는 개탄이 있었고, 심판 노조의 반발도 거셌다. 일부 투수들은 퀘스텍 시스템 때문에 심판 판정이 너무 박해졌다고 불평했다. 김병현의 동료이자 앞 시즌 23승 투수였던 실링의 '난폭한' 의사 표현도 그 연장선상이었다. 


반대로 '기계가 스트라이크 판정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기술로는 불가능했다. 측정의 정확도 이전에, '실시간 처리'가 불가능했다. 경기가 끝난 뒤에야 데이터를 처리해 통계를 만들 수 있었다.



2008년부터는 스포츠비전사의 '피치FX'가 도입됐다. 공의 위치뿐 아니라 움직임까지 추적할 수 있었고, 실시간 처리도 가능했다. 수집된 데이터는 대중에게 무료로 공개됐고, 야구계에 즉각적인 영향을 줬다. 통계전문가를 포함한 야구팬 다수가 이 데이터를 해석했고, 이른바 '세이버메트릭스'는 한 단계 발전했다. 구단들도 새로운 데이터와 데이터 분석을 스카우팅과 전략 수립에 활용했다. 애매한 공을 스트라이크로 잡아내는 포수의 기술인 '피치 프레이밍'이 부각된 것도 이 덕분이다.


2015년 메이저리그에 도입된 '스탯캐스트'는 한단계 발전한 기술이자 미디어 플랫폼이다. 피치FX는 투구 하나당 대략 12장의 이미지를 촬영해 투구 궤적 등을 유추했다. 반면 스탯캐스트는 초당 2만 개의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다. 공의 홈 플레이트 통과 위치를 포함해 회전수, 회전축, 존 진입 각도 등이 0.15초 안에 분석된다.



이쯤 되면 '스트라이크 판정을 기계에 맡기자'는 2003년의 주장에 다시 힘이 실릴 법도 하다. 불과 10년 만에 기계는 더 정확해졌고, 더 빨라졌다.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승패가 뒤바뀐 경기 뒤라면 이런 주장에는 더 힘이 실릴 것이다. 하지만 가능한 일일까.


우선은 정확도다. 현재 스탯캐스트 시스템은 공의 궤적을 1cm 이하 오차로 측정하는 걸 목표로 한다. 사람의 눈은 공 한두 개 차이도 종종 놓친다. 하지만 기계도 실수를 한다. 정확하게는 오작동이다. 오작동이 없다면 윈도 PC에서 블루스크린을 볼 이유가 없을 것이다. 따져 보면 기계를 프로그래밍한 사람의 실수겠지만 오작동이라는 결과는 같다. 지금 시스템의 정확도는 기준에 따라 95%, 또는 99.87%로 평가된다.


문제는 정확도보다는 '인식 실패'다. 사람은 공 한두 개 범위의 궤적을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기계는 어떤 공에 대해 완전히 엉뚱한 측정값을 뱉어 낸다. 아예 공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중견수의 송구를 투구로 인식하기도 한다.


물론 1000개 중 2~3개 미만이긴 하다. 그런데 한두 개 빠진 공을 '인간 심판'이 잘못 판정해도 경기는 계속 진행된다. 이게 인간이 실수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기계 심판'은 인식 실패가 일어나면 판정을 아예 내리지 않고 멈춰 버린다. 투구궤적데이터를 이용한 분석을 제공하는 '브룩스베이스볼'의 운영자 댄 브룩스는 이렇게 표현한다.


“심판도 공을 놓치지 않냐고요? 물론이죠. 하지만 공을 놓쳐도 투수가 공을 던졌다는 사실만큼은 알고 있죠.”


스트라이크존의 세로가 가변적이라는 것도 어려움이다. 야구규칙은 “유니폼의 어깨 윗부분과 바지 윗부분 중간의 수평선을 상한선으로 하고 무릎 아랫부분을 하한선”으로 정의한다. 또 “스트라이크존은 타자의 스탠스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다. 지금의 궤적추적시스템은 타자의 신장 정보를 이용한 알고리즘을 이용해 세로 길이를 측정한다. 하지만 타격 폼이 타자마다 다르다. 결국 사람이 눈으로 보면서 값을 보정해 줘야 한다. 


진짜 어려운 문제는 따로 있다. TV 중계 화면에 표시되는 스트라이크존 그래픽은 평면이다. 하지만 실제 스트라이크존은 입체 공간이다. 존의 앞부분을 걸치고 빠져나가는 공과 옆부분을 걸치고 들어오는 공이 있다. 모두 스트라이크다. 하지만 지금의 시스템은 존의 단면을 기준으로 한다. 존을 걸쳐 들어오는 공과 걸치고 나가는 공을 구분하지 않는 것이다.


평면이 아닌 공간 전체로 공을 추적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존 앞부분 1cm에 걸치면 스트라이크일까. 아니면 10cm 이상 걸쳐야 할까. 해결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구글의 딥마인드가 이세돌을 꺾을 때 사용된 딥러닝 같은 인공지능(AI) 기술이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심판 판정 결과를 입력하고 머신러닝을 적용하면 가변적인 상황에 꽤 잘 대응할 수 있게 기계를 훈련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 마치 사람처럼.



즉, 지금의 기술은 공의 위치를 꽤 잘 인식할 수 있지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스트라이크로 판정할 것인가는 좀 다른 문제다. 지금의 시스템에서 산출된 데이터를 처리해 통계분석을 한다면 전혀 문제가 안 된다. 1000개 중 2~3개 오류값은 그냥 버리면 된다. 하지만 아웃과 볼넷, 승패가 걸린 경기 현장의 '판정'이라면 골치 아픈 일이 된다.


실험은 진행 중이다. 미국 마이너리그 일부 경기에서 궤적추적시스템을 이용한 심판 판정을 시험 운영한 적이 있다. 결과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더 현실적이고 더 나을 것 같은 아이디어는 ‘기계의 도움을 받아 사람이 판정하는 것’이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2015년 이후 KBO 리그 심판들도 합의 판정 상황에서 기계의 도움을 받고 있다. 결과도 긍정적이다.

만약 고글처럼 생긴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착용한다면 심판은 거의 실시간으로 방금 눈앞을 지나간 공의 궤적 정보를 받아 볼 수 있다. 눈으로 본 것과 기계가 알려 준 것을 종합해 판정하면 된다.


기계와 인간 심판이 반드시 일자리를 두고 다투는 경쟁자 관계가 될 필요는 없다. 더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협력자가 될 수 있는 사례는 이미 많다. 메이저리그의 스트라이크존은 전통적으로 좌타자 바깥쪽이 우타자에 비해 너무 넓었다. 또 존의 네 모서리로 제구된 공에 대한 스트라이크 판정도 박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개선됐다. 투구궤적추적시스템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시점과 일치한다.


KBO 리그에서도 투구궤적데이터를 심판 평가에 이미 활용하고 있다. 지금까지 평가에서 애매한 공을 볼로 판정하면 스트라이크 판정보다 더 좋은 고과 점수를 받았다는 관계자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스트라이크존이 좁아져 왔던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결국, 공이 어느 지점을 지났는지 기계가 정확하게 알아냈다고 해도, 그 정보를 질 좋은 판정과 더 수준 높은 경기 환경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아직 사람의 몫이다. 


신동윤(한국야구학회 데이터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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