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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pic   엘지트윈스 삼성 한국시리즈 2002 이상훈 김성근 프랜차이즈 스타 암흑기 김재현 고관절 FA계약 



2002년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기억할게 많은 시즌입니다.     

늘 강팀의 면모를 갖추었으면서도 프로출범 이래 단 한번의 시리즈 우승기록도 남기지 못했던 삼성이, 지역라이벌 출신 김응룡감독을 벤치에 앉히는 무리수를 감내하며 기어이 최초의 우승을 이룬 해입니다.  그리고 2000년대 초반, 왕조라 불릴만한 그들의 신화가 시작되던 해입니다.    

반면 트윈스는 약체라는 세간의 평판이 무색하게 지독한 투혼을 발휘 가을야구 막차를 탄 후, 현대와 기아를 연파하여 최종 시리즈에 올랐고 명실상부 최강팀 삼성마저 몰아붙여 6차전 9대6으로 리드하며 마지막 이닝을 남깁니다.  그대로 경기가 끝난다면 3승3패의 동률.  그러나 트윈스의 선수들의 기력은 이미 바닥나 있었던가 봅니다.  일본에서 돌아와 성치 않은 몸으로 팀의 마운드를 이끌며 최종 시리즈 진출의 공신 노릇을 해준 이상훈의 그 처연했던 피탄.  그리고 뒤이어 마운드에 오른 최원호가 허용한 끝내기 홈런.  


스무살 즈음 선배들에게 들었던 허세로운 격언에 이런게 있었습니다.  햇빛에 비치면 신화, 달빛에 비치면 전설.  

유독 그해 여러 영웅이 그라운드에서 빛났지만 명암은 있었습니다.  백투백의 주인공 이승엽과 마해영이 햇빛 아래 신화를 쓴 영웅이었다면 대타로 나와 좌중간 펜스까지 날아가는 적시타를 친후 절뚝거리며 1루에 겨우 도착했던 김재현은 달빛 아래 눈물비친 슬픈 영웅 정도의 자리 밖에 허락받질 못했지요. 위대한 패배자 김성근 감독이 야신이라는 다소 역설적인 찬사를 부여받은 것도 바로 그 해였습니다.  


그렇게 그해의 야구는 끝이 났습니다.  신바람을 일으키며 야구판을 뒤흔들었던 90년 이래 아니면 94년 이래의 팀 트윈스의 영화도 아마 함께 끝났을 겁니다.  그리고, 지독하게 길고 고통스럽게 엄혹했던 암흑기가 시작됩니다.


엘지트윈스가 가을야구의 무대에 서기까지 그후로 11년이 더 걸렸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우리의 마지막 가을야구 시즌인 2002년에 데뷰했고 정규시즌 112경기 출전 타율 0.288 9홈런 20도루를 기록하는 주목할만한 성적을 남겼고 기아와의 플레이오프에서는 MVP까지 따낸 신인 외야수 박용택이 오랜시간동안 팀에 한없이 헌신하고 팬들에게 끝없이 사랑받는 그런 프랜차이즈스타가 되었음을 우리가 깨닫고 인식하는데 역시 그만큼 오랜 세월을 필요로 했습니다.

비온 뒤에 땅 굳는다는 진부한 속담이 이만큼 잘 어울릴 수가 있을까요?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말이 이만큼 잘 어울릴 수가 있을까요?

박용택 말입니다.  이제사 분명해진 것이, 2002년은 김재현이나 이상훈 뿐 아니라 박용택이라는 트윈스의 의미있는 이름을 기억해야만 하는 그런 시즌이었나봅니다.

요 몇해 프로야구 팬들에게 겨울시즌은 아픔이 많습니다.  노쇠한 프랜차이즈 스타들이 하나 둘 팀을 쫒겨나듯 떠나는 장면은 반복된다 해도 부뎌지지 않는 아쉬움이고 서운함입니다.  그 가운데 지난 시즌 마흔을 목전에 둔 적토마 이병규의 타격왕 타이틀 획득과 11년만의 가을야구, 그리고 남부럽지 않은 FA계약.  올시즌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그리고 박용택의 유쾌한 FA잔류소식.  


구단에도 선수에도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구나 유지현, 김동수, 김재현, 이상훈과 같은 프랜차이즈스타들과의 우울한 작별을 감당해야 했던 그 암흑기의 기억이 아직 스러지지 않은 트윈스 팬들에게 그 반가움은 더욱 유난할 밖에요.  



트윈스를 이끌었던 가장 위대한 선수라면 아마 김용수 일겁니다.  그는 팀의 유일한 영결 멤버이기도 합니다.  

가장 위대했다 하긴 어렵지만, 가장 설레고 가슴뛰게 했던 선수가 있다면 그건 이상훈일겁니다.  끝내 줄무늬를 입고 은퇴하지 못했던, 열혈야구만화 주인공 같던 이 왼팔 에이스는 지금도 그 이름을 되뇌일때마다 심장이 덜컹거립니다. 


투수에 김용수가 있었다면 야수 중 KBO 레벨에서도 발군의 기록을 쌓았던 선수가 있다면 세기의 재능, 적토마 이병규일겁니다.  우리는 여전히 그가 양준혁의 역대 최다안타 기록을 깨는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박용택이란 이름은 어디쯤에 두어야 할까요?  저는 그의 영구결번을 논하는 이야기를 들을때마다 좀 마뜩찮음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는 오랜 팀의 간판이며 뛰어난 선수이긴 하지만 영구결번이라는 상징적 존재가 되기에는, 리그에 남긴 실적이 충분치 않으며 팀에 안긴 우승반지도 여전히 없기 때문입니다.  저조차 서운한 일이지만 그에게 영구결번은 아직 이르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또 다른 마음이 듭니다.  그에게 자꾸 향하는 이 끝간데 없는 각별한 정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말입니다.  

지나고 나니 우리가 암흑기에 얻은것도 있다는걸 새삼 배웁니다.  무엇보다 암흑기는 팬을 키우더군요.


기억하실지 몰라도, 성적은 바닥을 기고, 그도 모자라 이상한 말이 생겨나 온통 비아냥거리가 되어 조롱당하던 그 시절.  그나마 추억의 선수들은 하나같이 팀을 떠나 마음 둘데도 찾기 어렵던 그 시절.  그래도 우리에게 자부심이 있었다면 트윈스가 아니라 트윈스의 팬.   그라운드의 승부가 아니라 관중석의 열정이었지요. 

낙담하여 하나둘 떠나고 숨어드는 동료팬들의 뒷모습은 아쉬워도 남은 사람들에겐 오히려 독기가 피어났습니다.  승부는 져도 팬으로서의 자부심, 충성심을 질 수 없다는 이상한 오기 같은걸로 버티던 기억이 여전합니다.  사실 그래서 그때 알고 만나던 팬들은 서로 더 정겨웠고 믿음직했습니다.  여러울때 친구가 진짜 친구라고 암흑기의 팬이 진짜 팬이라 여기면서. 


그리고 그 암흑기가 박용택이라는 아주 귀하고 유니크한 프랜차이즈 스타 역시 키웠다는걸 이제 알겠습니다.

우리는 그에게 참도 각별합니다.  왜 일까요?  적어도 저는 그렇습니다. 어두웠던 그시절, 그게 아니란걸 알면서도 어찌 풀데없는 갑갑함과 억울함을 선수들에게 퍼부어댈수밖에 없었어요.  아니려고 했고 아니었다고도 우기고 싶지만 역시 전혀 아닐 수는 없었습니다.


사실 용택씨도 잘못한거 많아요.  뭐하러 타격왕 타이틀에 그리 집착해서, 팬이 무슨죄라고 어쩔 수 없이 여기저기 쉴드질 하느라 손가락이 다 부르텄구요.  늘은 아니었지만 진짜로 용택씨 타석 담엔 이상하게 늘 광고가 나왔다니까요. 무엇보다, 청문회라 불리는 그 흑역사의 날, "(팬들의 응원이) 솔직히 부담스럽다"는 주장으로서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언사를 하기도 했다니까요.  유광점퍼 가지고 사기친건 또 어떻구요.


박용택이 달리는 이유 2010.4.25 - 예전에 썼던 글입니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니까요.  

http://baseball-in-play.tistory.com/1


하지만 이젠 그게 참 정겨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빛나는 시절을 함께 했다면 절대로 가지지 못했을 서로 미안하고 서로 안쓰럽고 서로 힘들었던 그 시간을 겪고 또 이겨내자 그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아지게 됩니다.  FA계약을 전후하여 또 기회있을때마다 그가 팬들에게 보이는 모습으로 보면 그도 그걸 아는거 같습니다.

자랑할 일도 아니고, 다시 바랄 일도 아니지만 11년짜리 지독한 암흑기가 아무때나 오지 않으며 마침 그 시작과 끝을 같이할 선수가 흔히 있을게 아니고 수도없는 문턱을 넘어 한결같이 그걸 견뎌 이기는게 쉬울일도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 가진겁니다.  


선수 개인이야 그게 자신이 일이며 연봉으로 보상받는것이지만, 저는 그가 여전히 리그 최고수준의 외야수로 뛰어주고 있음이 뜬금없이 고맙게 느껴집니다.  팀에 공헌해서 이기도 하지만 그가 만약 노쇠함을 엿보이며 비틀거렸다면 우리는 이번 FA계약에서 얼마나 더 마음 고생을 했어야 할까요.  


우리는 견뎌냈고 그는 이겨냈습니다.  우리도 그도 칭찬받을 자격이 충분하지 않나요?


질곡과 질곡이 겹쳐 쌓였지만 그걸 지내고나니 유별난 뭔가가 생겨났습니다.  박용택 그 이름이 그 결정체 같은 생각이 들어요.

팀의 역사에 아마 그 11년이 영원히 지워질 순 없을겁니다.  우리 맘속에서도 그렇겠죠.  리그 3연패니 4연패니 하는 햇빛 찬란한 신화도 자랑스럽지만 길게 길게 눈물흘리며 버티고 견디고 이겨낸 시절 역시 달빛 아래 므훗하게 귀한게 아닐까요.

해서 그걸 기념하는 취지로 그에게 기꺼이 팀 두번째 영구결번을 선사한들 그게 그리 순리에 어긋나는 일일까요?

뭐 이런 생각이 듭니다.



*** 나중에 쓰는 후기

저는 늘 우승경력이야말로 영결의 중요요건이라 생각했었습니다. 아니면 적어도 리그급 실적이거나.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렇다면 우승은 커녕 11년동안 가을야구 조차 구경못해본 그 시절의 트윈스는 가치가 없는 것일까?  그 팀을 사랑하고 응원하며 보낸 우리 시간은 바보같은 건가요?  

그리 생각하고나니, 우승을 필요요건으로 생각하는 발상자체가,,,  암울햇지만 그럼에도 의미있던 그 11년을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 되는거 같더군요.


박용택이란 이름이 요즘 제게 주는 의미는 이렇습니다.

만약 그가 없었더라면 지나간 11년을 부정하지 않고 그 또한 귀한 기억으로 남길 수 있었을까?  암흑기의 표지이며 또한 중흥의 심장인 그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 11년을 부정하지 않고 여전한 우리 것으로 끌어안고 긍정할 수 있게 된거 아닐까.  이렇게 말입니다.  


각각의 사연은 있었지만, 조인성이나 이대형 처럼, 그마저 떠나고 없었더라면, 마운드에서 여전히 큰형 노릇을 하고 있는 봉중근이 없다면... 지금의 트윈스는 11년의 암흑기를 극복해낸 팀이 아니라, 지난 11년은 묻어버리고 새로 만든 팀처럼 느껴질겁니다.    


또 만약 그런거라면 우리가 견딘 그 시간 또한 그저 부정되어야 할 흑역사에 불과하겠지요.  하지만 그가 지금의 그 모습으로 서있어주어서, 우리는 오히려 어두웠던 시절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해낸 또 다른 자부심으로 남길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가 이겨냈기에 우리가 견딘 세월이 더 가치있게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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