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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버메트릭스 도서관

도루 손익분기점이 "객관적으로" 계산될 수 있을까

by 토아일당 2016. 1. 22.



세이버메트릭스가 마이너리티였던 시절


세이버메트릭스가 올드스쿨을 무찌르며 야구 패러다임 지배권을 손에 넣는 과정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첨병들이 몇 있는데 도루와 희생번트의 손익분기점에 관한 것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빌제임스가 일찍이 그의 [십계명] 4번째에서 “70% 이상의 성공율이 아니면 도루하자 마라”며 갈파했고 톰 탱고와 그의 동료가 쓴 theBook은 그에 대한 거의 완벽한 이론적 분석을 덧붙였습니다.


한국에서도 비슷했는데, 희생번트는 결코 공격팀에 이로운 작전이 아니며 도루 역시 상당히 높은 성공율이 아닌 한 그렇다는 주장이 세이버메트릭스 도입 초기에 이 새로운 아이디어의 파격적 가치를 드러내는데 앞장을 섰습니다. 


세월이 흘렀고 MLB에서 세이버메트릭스는 혁신자가 아니라 주류의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물론 한국에서는 좀 상황이 다르지만 하드코어 야구팬들 사이에서라면 FIP나 BABIP 같은 세이버메트릭스 지표를 모르고 더이상 행세하는게 불가능한 정도의 변화는 이미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아이디어와 이론이 처음 제기되고 기성의 가치를 공격하는 시점에는 그 혁신성을 참작하며 방법론적 정교함에서 보이는 소소한 헛점에 대해 다소 관대할 필요도 있지만 만약 그들의 주류가 되어 ‘지적 권력’을 쥐게 된 후라면 좀 달라지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세이버메트릭스도 마찬가지겠죠.


톰탱고가 theBook에서 했던 분석을 기준으로 한다면 도루의 손익분기점은 73% 근처입니다.  그런데 이 수치는 리그 득점환경에 따라 달라집니다.  2005년부터 2013년 사이에 몇차례 있었던 평균득점 4.3점 이하의 투고 시즌에 “기대득점 기준”의 도루 손익분기점은 대략 65% 근처였습니다.   반대로 투수지옥이었던 지난 2시즌 동안의 “기대득점 기준” 손익분기점은 75% 전후 쯤 될겁니다. 


영향을 주는 것은 우선 리그 평균득점을 기준으로 ‘타고’냐 ‘투고’냐 인데 더 세밀하게 분석해본다면 출루율과 장타율의 밸런스가 미치는 영향도 큽니다. 


즉, 경기당 평균득점이 높을 경우 대체로 [도루 손익분기점]이 높아지지만 만약 출루율에 비해 상대적으로 장타율이 낮을 경우 반대로 [도루 손익분기점]은 낮아질 수도 있습니다.  90년대나 2000년대 KBO리그의 경우 MLB와 비슷한 수준의 평균득점을 기록한 시즌이라도 [도루 손익분기점]은 좀더 낮습니다.  장타율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입니다.  


도루의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도루의 본질이 [진루]이기 때문인데, 성공한 도루는 [추가진루]이고 실패한 도루는 [출루의 손실]이 됩니다.  [가치]는 결국 희소성의 문제라서 출루율이 높은 환경에서는 1루 주자의 가치가 낮기 때문에 도루실패에 의해서 1루주자를 잃어도 손해가 적습니다.  또 장타율이 높은 환경이라면 1루 주자가 굳이 2루로 가지 않아도 득점 가능성에 차이가 적기 때문에 추가진루이 가치가 낮아집니다.


만약 장타는 없고 모든 안타가 1루타라면 도루의 가치는 굉장히 높을 것이고, 모든 안타가 3루타 이상이라면 도루의 가치는 거의 0에 가까워질 것입니다.  최근 2시즌 동안의 타고 성향은 출루율 상승보다 장타율 상승에 의해 주도된 면에 강하기 때문에 도루의 가치는 KBO리그의 어느 시기보다 낮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도루의 손익분기점]이란 것이 과연 어떻게 계산된 것이냐가 문제입니다.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것은 도루 상황 전후의 [기대득점]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무사1루 에서 도루가 성공을 하면 무사2루가 되고 실패하면 1사 주자없음이 됩니다.  이때 성공 조건의 기대득점 증가와 실패 조건의 기대득점 감소가 일치하는 선을 구하면 그게 보통 [도루의 손익분기점]이라 불리는 기준이 됩니다.


그런데 5점이나 6점 쯤 앞선 경기의 1점과 9회 동점 상황의 1점은 당연히 가치가 다릅니다.  만약 도루가 “더 많은 득점”이 아니라 절실하게 필요한 “딱 1점”을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기대득점]을 기준으로 하는 손익분기점 계산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득점확율이 더 중요합니다.   기대득점 대신 득점확율을 기준으로 손익분기점을 계산할 경우 수치는 휠씬 낮아집니다.  KBO 05_11 통계에서 득점확율 기준의 손익분기점은 1루주자의 2루 도루일 경우 56.1% 입니다. 


KBO에서 도루의 가치와 손익분기점 - http://baseball-in-play.com/56 

예전 글이라 KBO2005_2011 기간의 통계를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  최근 시즌에는 좀 다르겠죠. 


기대득점도 아니고 득점확율도 아니고 [승리확율변화WPA]를 기준으로 한다면 값은 다시 달라질 것입니다.  



The Book Says :


희생번트와 (73% 이하의 성공율을 가진) 도루시도는 할수록 손해라는 것을 통계적으로 증명했다고 알려진 (그러나 큰 맥락은 맞지만 정확히 그렇다고 하긴 어려운) 톰 탱고의 theBook에는 단타, 볼넷, 홈런, 도루, 희생번트 각각의 서로 다른 플레이가 만들어내는 1득점의 가치에 대한 분석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홈런으로 만든 득점은 도루로 만든 득점보다 가치가 낮습니다.  홈런으로 만든 득점은 11.3점으로 1승이 만들어지고 도루로 만든 득점은 9.5점으로 1승이 만들어집니다.  홈런과 비교했을 때 도루가 나온 시점이 더 타이트한 경기상항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참고로 고의사구는 17.8승 당 1점, 보크는 9.3점 당 1승입니다)  즉 같은 1점이라도 도루가 만드는 1점은 승리하는데 더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9.5점과 11.3점 사이에 20% 가까운 차이가 있습니다. 


따라서, 공격 플레이의 목적이 득점이 아니라 결국 승리인 한에, 1득점의 승리가치를 가중치로 적용할 경우 도루의 가치는 휠씬 높아질 것입니다.


게다가 기대득점이든, 득점확율이든 [도루의 손익분기점]을 계산하는 방식에는 또다른 헛점이 있습니다.  각 팀의 공격력 또는 공격성향의 차이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15시즌은 역대급 타고시즌이었지만 어떤 팀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기아타이거스나 엘지트윈스 같은 팀은 리그의 추세와 무관하게 자체적인 타저 시즌을 보냈습니다.  득점이 적었고 장타율은 특히 낮았습니다. 


이런 팀 입장에서라면 도루의 손익분기점은, 그 해의 리그평균을 기준으로 한 수치가 아니라 팀의 타격스탯을 기준으로 한 수치여야 합니다.  박병호와 테임즈가 엄청 많은 홈런을 치며 투수들의 악몽이 되었다고 한들 그런 것은 3할 후반의 장타율을 기록한 팀의 도루가치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합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성립합니다.  리그가 낮은 득점환경이었고 장타의 실종을 겪었다 해도 그 팀 클린업트리오가 홈런을 30개씩 쳐냈다면 리드오프들의 도루 가치는 아주 낮았을 것입니다. 


자신의 팀 타격 뿐 아니라 상대팀 투수에 의해서도 달라집니다.  상대 투수가 강하다면 도루의 가치는 높아질 것입니다. (계산은 안해봤는데) 예들들어 ERA 2.5 수준의 투수를 상대할 때라면 도루 손익분기점은 50% 이하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투수 성향도 영향을 줄 수 있는데, 볼넷은 많이 허용하지만 장타는 안맞는 제구 나쁜 파이어볼러일 경우라면 도루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또 도루의 효과는, 전후의 아웃/베이스 상황 변화로 측정되는 것보다 대체로 더 높습니다.  도루 성공 이후 실책으로 인한 추가진루가 있기 때문입니다.   악송구를 동반한 2루 도루는 한 베이스가 아니라 두 베이스의 진루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또 기록 상 도루실패이지만 실제로는 추가진루에 성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손익분기점 개념은 "객관적"인가


요컨데, [도루의 손익분기점]이란 수치가 과연 객관적인가 또 의미있는 것인지 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모든 것과 상관없이 전통적 관점에서 도루의 가치가 과대평가되어 온 것은 사실입니다.  적어도 현대 야구에서 스피드는 파워에 비해 휠씬 적은 득점생산성 밖에 가지지 못합니다.  큰 맥락에서 도루나 희생번트 같은 전략을 비판하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닌 이유입니다.


하지만 지금 세이버메트릭스는 이런저런 실드 속에서 그저 대의가 옳기 때문에 왠만한 흠을 덮고 옹호해줘야 하는 그런 [도전자] [혁신자]의 입장은 아니어졌습니다.  미국과 한국은 물론 다른 상황이지만 구단의 운영 이니셔티브가 아니라 팬 커뮤니티 안에서의 지적 권력의 문제라면 그렇게 큰 차이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도루의 가치에 관해 “객관적으로”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진루 없는 출루(=볼넷)가 많아질수록 [도루실패]의 손실은 상대적으로 낮고, 진루를 일으키는 공격이벤트(=안타. 특히 장타)가 흔해질수록  [도루성공]의 이익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라는 것 뿐입니다.


그밖에 경향적으로 득점이 많은 조건에서는 가치가 낮고 득점이 적은 조건에서는 가치가 높다, 다만 상황에 따라 많이 다르다 정도 입니다. 


1995년이나 2007년이 아닌 2016년이라면, 세이버메트릭스는 좀더 엄격한 기준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해야 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더 많은 힘은 더 큰 책임을 필요로 합니다.  더구나 세이버메트릭스는 "야구에 관한 객관적 지식의 탐구"을 기치로 삼아왔고 그렇지 못한 전통적 관점을 공격하며 성장했습니다.     


어떤 과학논문에서 “OO와 OO가 XX조건에서 유의한 상관관계를 나타냈다” 는 부분을 따서, “과학이 OO가 OO의 원인이라 밝혀냈다”는 식으로 옮기는 것은 흔한 짜리시 미디어에 맡겨둬도 되는게 아닐까요.  


“도루의 손익분기점은 OO%다”라는 주장은 필연적으로 --- 그 아래의 성공율을 기록했던 역대 선수들이 줄줄이 소환되어, 자기 몸을 버리면서 팀도 망친 멍청이 혹은 무지했던 시대의 가련한 광대 쯤으로 매도되는 부관참시극을 부릅니다.  그 주장이 (세이버메트릭스이기 때문에) 믿을만해 보이고 또 그 주장을 하는 이가 권위과 힘을 가졌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주장을 한 이가 그런 상황을 바라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달라지는 건 없을겁니다.


[세이버메트릭스]의 가치를 빌어 그런 주장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만큼은, 한국 야구팬들도 이미 과거의 그릇된 통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는건 아닐까요.  또 설사 그렇지 못하다고 한들, 왜곡된 관념을 왜곡된 정보로 공격하는 것이 옳다 할 수 있을까요?  많이 왜곡된 관념을 공격하기 위한 대의가 있기 때문에 살짝 왜곡된 정보를 사용하는 것은 상관없다 여길 수 있을까요?  그런 것은 진짜 세이버메트릭스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어떤 분이 페이스북 페이지에 질문하신 글에 답을 달았는데, 김에 정리해두는게 좋겠다 싶어 포스팅합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