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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gobaseball
세이버메트릭스 도서관

기묘했던 1999년. 그리고 FIP의 탄생

by 토아일당 2019. 9. 21.

보로스 맥크라켄이 How Much Control Do Hurlers Have? 라는 글을 발표한 것은 2001년이다.  그는 흔하디 흔한 대학원생 중 하나였지만 이 글을 통해 야구분석의 패러다임을 통째로 바꾸어놓는다.  그는 타자 배트에 맞아 페어그라운드로 날아간 공이 안타가 될지 아웃이 될지는 --- 투수의 능력이나 책임이 아니라, (거의) 전적으로 운이거나 또는 수비의 몫이라고 주장했다.  

 

세이버메트릭스가 막 대중적 관심을 받던 시절이다.  주류 야구계에 대한 영향력은 지금보다 휠씬 약했을지언정 --- 매니아들의 열정과 결기는 오히려 더 뜨거웠다.  사람들을 그의 주장을 '미쳤다'고 일축했다.  안타를 억제하는 것이 투수의 가장 중요한 책임이고 역할인데 --- 리그 최고의 투수나 평균이하의 투수나 안타억제능력이 별 차이 없다는 것은 비상식적인 발상이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결국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BABIP, DIPS, FIP 같은 메트릭이 자리잡았고 이젠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DIPS 아이디어는 대략 탄생-반발-수용-수정 에 해당하는 국면을 거친다.

 

1. 탄생과 반발

보로스맥크라켄의 폭탄같은 주장이 나타났고 세이버메트릭스 소사이어티가 불바다가 된 상황

 

2. 수용

보로스맥크라켄은 아티클 발표 후 이틀동안 1700통의 이메일을 받았다고 한다.  대체로 욕설!!!

이때 세이버메트릭스 사회의 거물인 크레이그라이트와 빌제임스는 일종의 원로회의를 소집한다.  여기에는 맥크라켄의 글을 발표한 BP편집장 네이어도 함께 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의견을 발표한다.

 

1) Like most things, McCracken’s argument can be taken too literally. A pitcher does have some input into the hits/innings ratio behind him, other than that which is reflected in the home run and strikeout column.
2) With that qualification, I am quite certain that McCracken is correct. 
3) This knowledge is significant, very useful. 
4) I feel stupid for not having realized it 30 years ago   

1) 많는 논쟁이 그런것처럼, 맥크라켄에 대한 것도 좀 과장되고 예민하게 받아들여진 면이 있긴 하다.  투수 뒤로 날아간 공에 대한 안타비율에 대해 투수가 어느정도 관여하는건 사실이니까. 
2) 그런 것들만 좀 정리된다면, 나는 그가 옳다고 확신한다. 
3) 이 새로운 아이디어는 정말 중요하고 유용하다. 
4) 이걸 지난 30년동안 깨닫지 못했던 것에 대해 내가 참 멍청했다는 생각이 든다. 

 

3. 수정

DIPS 아이디어는 처음에 필요이상으로 배척되었는데 또 후에는 지나치게 단순하게만 받아들여졌다.  예를들어 babip에서 운이 44% 투수가 28%라는 의견 같은.  이 오해에는 톰탱고의 섣부른 결론 탓이 상당하다.

BP 러셀칼튼은 2013년 좀더 진보한 세이버메트릭스의 데이터pool과 분석도구를 이용해서 투수의 몫도 꽤 크다는 점을 밝혀낸다.

 

한국에서 수용되는 과정을 본다면 --- 이런저런 아쉬움이 많다.  대체로 톰탱고 버전까지만 업데이트되고 그 다음의 연구구까지는 패치가 지연된 것으로 보인다.  해서 babip은 운이고 babip에 따른 투수성적은 기계적으로 [회귀]될거라는 믿음 같은게 퍼져나가기도 했다.

 

이젠 statcast 기반의 휠씬 더 진보된 분석도구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많은 것이 또 변해갈 것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틱한 일련의 과정에 묘한 우연이 자리한다.  역사란게 원래 그런건지도.

 

보로스맥크라켄이 2001년에 발표한 글은 대체로 1999년의 데이터를 사용한다.  그 안에 가장 극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파괴력있던 근거는 --- 외계인 페드로마르티네즈, 아티스트 그렉매덕스 조차 babip에서 다른 투수랑 별 차이가 없다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게 또 그런게 아니었다.

 

다음은 외계인과 아티스트의 커리어babip(팀 조정) 추이다. (출처는 Tom Tippet의 2003년 분석) 

 

보이는 것처럼 '하필' 1999년에만 babip이 튀었다.  요즘이야 워낙 데이터 접근이 쉬워졌지만 2000년만 해도 그게 그런 것이 아니었다.  BR도 없었고 FG도 없었고 스탯캐스트야 당연히 없었다.  그러니 당대의 기념비적 연구들 조차 2-3년 데이터를 기반한 사례가 많다.  보로스맥크라켄의 연구도 비슷.

 

페드로마르티네즈는 커리어 동안 대체로 리그평균 보다 낮은 babip을 유지해왔다.  그렉매덕스도 마찬가지.  

 

혹시, 페드로마르티네즈나 그렉매덕스가 1999년의 우연한 babip 상승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DIPS 아이디어의 운명은 어찌 되었을까?  뭐 결국에 이쪽으로 오긴 오겠지만 --- 좀더 시간이 걸렸거나 혹은 맥크라켄은 일단 묻힌 후 그 다음 또다른 혁명가를 기다려야 하는 운명이 되진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