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공을 높게 던져라 - [베이스볼인플레이] 일간스포츠 2016년 6월 9일
야구 중계에서 흔하게 듣는 말 중 하나는 “낮게 던져라”다.
중요한 상황일수록 더욱 강조된다. 대체로 높은 공은 자칫 큰 타구를 맞을 수 있다는 게 이유다. 투수가 불의의 한방을 맞은 뒤에도 늘 따라 붙는 말이 “제구가 높았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높은 공은 정말 나쁜 것일까. 삼성 코칭스태프는 지난해 투수들에게 높은 직구 승부를 자주 주문했다. 염경엽 넥센 감독은 지난해 마무리 손승락에 대해 "높은 코스 활용이 아쉽다"는 말을 하곤 했다.
2015년 시즌 KBO리그 우타자들의 로케이션별 타격 결과를 히트맵(Heatmap)으로 표시해봤다<그림1>. 각 존 안에 표시된 숫자는 타율, 장타율, 그리고 홈런율이다.
[ 그림 1 = 2015년 KBO리그 우타자 히트맵. 숫자는 타율/장타율/홈런율. 이하 투수의 시각 ]
가운데 9등분한 구역이 통상적인 스트라이크존이다. 아웃코스에서는 확실히 높은 쪽의 타격 결과가 좋다. 장타율 0.553, 홈런율 3.8%로 낮은 쪽의 0.344, 1.8%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인코스는 반대다. 낮은 쪽이 장타율 0.623 홈런율 5.9%로 높은 쪽의 0.392, 2.6% 보다 휠씬 높다. 몸쪽 높은 코스는 9등분한 스트라이크존 전체에서 가장 타격결과가 나쁘다. 타자의 약점이라 부를 만한 로케이션이다.
전체적으로는 아웃코스 높은 쪽(out-high)에서 인코스 낮은 쪽(in-low)으로 대각선을 이루는 구역이 타자의 '핫존(Hot Zone)'이다. 배트를 자연스럽게 스윙해 보자. 배트 중심은 자연스럽게 이 방향으로 움직인다. 반대로 아웃코스 낮은 쪽(out-low)에서 인코스 높은 쪽(in-high)을 잇는 구역은 '콜드존(Cold Zone)'이 된다.
왼손 타자도 마찬가지다<그림 2>. 아웃로와 인하이가 역시 약점이고,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향하는 대각선 구역이 타자의 핫존이 된다.
[ 그림2 = 2015년 KBO 리그 좌타자 히트맵 ]
즉, 높은 공은 투수에게 무조건 나쁜 게 아니다. 바깥쪽 높은 공은 좋지 않지만, 몸쪽 높은 공은 오히려 유리하다. 다만 홈런는 몸쪽 낮은 코스를 제외한다면 대체로 높은 코스에서 자주 나왔다. 해설자들의 말대로 장타를 주의해야 할 때는 낮은 로케이션을 강조하는 게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구종에 따라 나눠 보면 뭔가가 더 있다.
우타자를 기준으로 패스트볼과 변화구 타격 결과를 히트맵으로 표현했다<그림 3>. 패스트볼의 경우 몸쪽과 가운데 뿐 아니라 바깥쪽 코스에서도 높은 공보다는 낮은 공 장타율이 높다.
홈런 역시 타자의 절대적 약점이랄 수 있는 아웃로(out-low)를 제외하면 가운데 코스에서도 낮은 공에 비율이 더 높다. 바깥쪽 높은 구역과 몸쪽 낮은 구역을 대각선으로 이으면, 대각선 아래쪽이 전체적으로 빨갛다. 즉, '핫존'이다.
변화구는 다르다. 여기에서 변화구는 커터나 싱커 등 패스트볼 계열을 제외한 커브, 슬라이더, 스플리터, 체인지업 등이다. 패스트볼 타격결과와 비교하면, 대각선 위쪽이 전체적으로 '핫존'이다. 패스트볼과는 대각선을 가운데 두고 대칭 형태다.
낮은 패스트볼은 투수에게 오히려 불리하고, 변화구는 높은 코스가 위험하다. 패스트볼은 몸쪽으로 붙을수록 타자가 약점을 보이고, 변화구는 몸에서 멀어질수록 약점이 나타난다. 타율, 장타율, 홈런율이 대체로 비슷하다.
따라서 역전 주자를 등 뒤에 둔 투수에게 "낮게 던져라"는 효과적인 피칭전략이 아닐 수 있다. 제구에 문제가 없다면 빠른공은 '낮게'가 아니라 '높게' 던져야 한다.
하이 패스트볼의 장점은 하나 더 있다.
타율과 장타율을 억제할 뿐만 아니라, 헛스윙 유도에도 훨씬 유리하다<그림 4>.
[ 그림4 = 패스트볼에 대한 로케이션별 헛스윙% (헛스윙/투구수, 괄호 안은 헛스윙/스윙시도횟수) ]
특히 바깥쪽 높은 패스트볼은 전체 투구 중 11.8%, 스윙시도(헛스윙+파울+타격) 중 17%를 헛스윙으로 이끌어냈다. 인코스 중간 높이 로케이션과 비교하면 세 배 가량 높은 수치다.
반대로 변화구<그림 5>는 역시 낮게 던질수록 헛스윙이 자주 나온다.
야구는 상대성의 경기다. 한국 야구에서 '낮은 공을 던져라'는 말은 오랫동안 금과옥조였다. 낮은 공을 많이 보면 잘 치게 된다. KBO리그 최다승 투수 송진우는 지난해 삼성 류 감독에게 "다른 구단에선 높은 공을 잘 활용하지 않는 것 같다"는 아쉬움을 전하기도 했다. 그리고 야구는 늘 변한다.
지난해 KBO리그 데이터로는 타자의 약점은 높은 패스트볼과 낮은 변화구였다. 그런데 지난해 미국 프로야구 트리플A 데이터를 보면 좀 다르다<그림6>.
[ 그림6= 2015년 트리플 A 우타자 히트맵 ]
낮은 패스트볼에 KBO리그 타자들은 강점을 보였지만, 트리플A 타자들은 이 코스에 약했다. 특히 바깥쪽 낮은 직구는 명백한 아킬레스건이었다. 통상 KBO리그 수준은 트리플A와 비견된다. 그렇다면 낮은 패스트볼 타격 결과 차이는 수준이 아닌 환경의 차이로 해석할 수 있다.
선수 신체조건이 다르고, 평균적인 패스트볼 구속과 무브먼트도 다르다. 투수와 타자가 서로를 상대하는 전략과 성향도 다르다. 그리고 트리플A 심판은 KBO리그보다 높은 스트라이크를 더 잘 잡아준다.
타자가 높은 공에 적극적이어야 할 환경이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하다보니 특정 구종과 로케이션에 대한 핫존과 콜드존이 달라졌을 것이다.
한국 프로야구는 올해로 35년째를 맞는다. 투수도 타자도 서로를 이기기 위해 끊임없이 진화해왔다. 데이터가 없는 예전이지만 20년이나 30년 전에 비해 지금의 핫존과 콜드존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왼손 투수에 강한 왼손 타자'가 늘어난 것도 과거와는 야구가 달라졌다는 증거다.
삼성 뿐 아니라 최근엔 승부처에서 패스트볼을 높게 던지는 투수가 많다. 상대를 이겨야 살아남는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은 본능적으로 변화를 알아챈 것인지 모른다.
야구가 변했다면, 야구를 바라보는 시각 역시 변하는 게 맞을 것이다. "낮게 던져라"는 말은 좀 더 신중하게 나올 필요가 있다.
http://news.joins.com/article/20145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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