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인플레이] 매우 특이한 타자 이용규, 그리고 선구안 - 일간스포츠 2016년 6월17일
이용규는 삼진을 잘 당하지 않는 타자다.
6월 12일 현재 239타석에 12삼진으로 타석당 5%로 리그 1위다. 그 반대편에는 최준석이 있다. 타석당 삼진비율이 27.1%다. 리그 평균은(17.3%)을 크게 웃돈다. 헛방망이질을 하며 삼진으로 돌아서는 타자를 보며 선구안이 나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용규는 선구안이 좋은, 눈이 좋은 타자일까.
삼진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올해 타석당 삼진비율에서 이용규 다음으로 낮은 선수가 김성현으로 6.2%다. 그런데 김성현은 전체 225타석 중 2스트라이크(S) 전에 타격한 타석이 65%이고, 타석당 투구수가 3.3개로 규정타석 타자 중 가장 적다. 2S가 되기 전에 타격을 끝내면 삼진을 당할 일이 없다. 이게 첫 번째 방법이다. 그런데 이용규는 이런 타입이 아니다. 많은 공을 보며 투수를 괴롭힌다. 올해도 타석당 4개의 공을 본다. 리그 평균보다 높다.
두 번째 방법은 2S 이후 스트라이크를 그냥 흘려 보내지 않는 것이다. 이에 관해 이용규는 완벽했다. 239번 타석 중 104번이 2S 이후로 이어졌는데, 단 한 번도 스트라이크를 그냥 지켜본 적이 없다. 12번 삼진이 있었지만, 루킹 삼진은 0개다. 이용규는 늘 그래왔다.
2010~2015년 6시즌 동안 누적 1000타석 이상 타자를 대상으로 할 때, 타석당 루킹삼진비율이 2.0%로 전체 3위다.
그런데 루킹삼진비율이 낮다고 삼진비율이 무조건 낮아지는 것도 아니다. 루킹삼진비율이 가장 낮은 타자는 1.8%인 LG 이병규다. 공을 많이 보는 7번 이병규가 아니라 리그를 대표하는 '배드볼히터'인 9번 이병규다. 그는 타석당 투구수 3.39개로 공을 두 번째로 적게 본 타자이고, 삼진비율은 11.1%로 이용규보다 휠씬 높다. 어지간한 공에는 배트를 내는 공격적 성향으로 인해 루킹삼진비율은 낮지만, 대신 헛스윙삼진까지 줄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루킹삼진비율이 낮은 타자들은 대체로 공격적 성향이 강하고 그래서 헛스윙삼진은 상대적으로 높다.
이용규는 여기서 다시 차이를 만든다. 루킹삼진을 안 당하지만 헛스윙삼진도 안 당한다. 올 시즌 헛스윙삼진비율은 5.0%로 규정타석 타자 중 2번째로 낮다. 2S 이후 배트를 내면 커트라도 하면서 공을 맞추는 게 삼진을 피하는 세 번째 방법이다. 이용규는 여기에도 탁월했다.
‘볼은 골라내고 스트라이크를 노려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선구안'이라는 단어에서 보듯, 사람들을 볼넷과 삼진을 흔히 '눈의 능력'과 연관시킨다. 하지만 눈과 볼넷, 눈과 삼진의 상관관계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우선 볼넷은 단순히 '좋은 눈' 만으로 얻지 못한다. 실제로 볼넷이 많은 타자들은 대체로 거포형이다. 눈 좋기로 이름난 리드오프 타자들은 오히려 그 다음 줄이다. 볼넷은 눈으로 골라낸 결과라기보다, 투수를 압박해서 코너웍을 강요한 결과가 더 많다. 지난해 KBO리그에서 박병호는 누구보다도 헛스윙이 많은 타자였다. 그러나 무시무시한 위압감으로 많은 볼넷을 얻어냈다. 그의 헛스윙 비율은 메이저리그에서도 비슷하지만, 볼넷이 줄어들었다는 게 지난해 넥센 시절과 차이다.
또 ‘공을 많이 보는 것‘과 ‘적은 삼진’은 의외로 양립하기 어렵다. 1000타석 이상을 기록한 현역 타자 중 누구도 타석당 3.7개 이상의 공을 보면서 10% 이하 삼진비율을 기록하지 못했다. 딱 한 명을 제외하고는. 공을 많이 보면 볼넷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2S 카운트도 많아져 삼진 위험이 함께 늘어나기 때문이다. 오직 이용규만이 많은 투구수와 적은 삼진을 양립시켰다.
이용규는 극단적으로 적은 삼진과 리그평균 이상의 볼넷으로 탁월한 볼넷/삼진비율을 유지한다. 대신 좋은 공을 골라 때려서 좋은 타구를 만드는 능력은 없다.
좋은 공을 골라 타격할 수 있는 카운트는 2S 이전이다. 그리고 타격생산성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지표는 인플레이 장타율(SLGBIP) 이다. 그런데 이용규는 2010년 이후 이 조건에서 장타율이 리그평균보다 높았던 적이 한 번도 없다. 오히려 특이한 점은, 보통 2S 이전보다 이후에 확연하게 하락하는 SLGBIP가 거의 차이없이 비슷하게 유지된다는 데 있다. 2011년, 2014년, 2016년의 경우는 오히려 2S 이후 장타율이 더 높다.
여기에 볼데드 상황 즉, 볼넷과 삼진 상황을 포함시킨 전체 장타율을 보면 이용규라는 타자가 가진 특이점이 더 분명해진다.
2S 이전 조건에서 이용규는 리그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타자다. 그의 진가는 모든 타자에게 가장 괴로운 2S 이후 상황에서 발휘된다. 2S를 잡기까지 투수는 최소 두 개의 투구 수를 지불해야 한다. 대신 타자를 불리한 처지에 몰아넣고 요리할 수 있는 전략적 잇점을 손에 넣는다. 더 많은 공을 보며 더 선택적인 타격을 하기 위해 타자가 지불할 댓가다. 타자가 투수의 투구수를 늘리는 건 그래서 양날의 검인 이유다.
하지만 이용규는 다르다. 2S 이후에도 도무지 약하지지 않는다.
그는 모든 타자의 태생적 약점인 삼진위험성을 자신에게서 제거해버렸다.
그는 삼진을 당하지 않는 타자다. 그가 타석에 서 있는 동안 야구의 룰은 좀 달라진다. 투수는 그를 타석에서 쫒아내는 데 삼진이라는 수단을 사용할 수 없다.
무엇이 이용규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선구안'이나 이른바 '눈 야구'라는 표현은 너무 쉽다. 이용규는 그렇게 쉽지 않다.
이용규도 최준석도 공을 많이 본다. 하지만 이용규는 삼진이 없고 최준석을 삼진이 많다. 최준석을 공을 많이 보면서 볼넷, 또는 생산성 높은 강한 타구를 노린다. 이용규는 삼진을 최대한 줄이면서 더 많은 인플레이 타구를 만들어낸다.
두 선수 모두 눈이 좋다면 좋다. 하지만 둘의 타석은 전혀 다르다. 하나는 삼진을 각오한 대신 다른 댓가를 얻으려 하고, 다른 하나는 삼진 자체를 줄여서 댓가를 얻는다.
http://news.joins.com/article/20182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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