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총재는 최근 인터뷰에서 바트 지아마티(A. Bartlett Giamatti, 제8대 mlb커미셔너)를 롤모델로 꼽았다고 한다.
지아마티도 학자였다. 영문학,이탈리아문학, 비교문학을 연구했고 프린스턴과 예일에서 교수를 했다. 나중엔 모교 예일의 총장을 지냈다. 당대의 최고 경제학자였고 서울대 총장을 지낸 신임 정운찬 총재와 확실히 통하는 부분이 있다.
"[Baseball] breaks your heart. It is designed to break your heart. The game begins in the spring, when everything else begins again, and it blossoms in the summer, filling the afternoons and evenings, and then as soon as the chill rains come, it stops and leaves you to face the fall all alone. You count on it, rely on it to buffer the passage of time, to keep the memory of sunshine and high skies alive, and then just when the days are all twilight, when you need it most, it stops"
야구는 심장을 흔들어놓는다. 원래 그렇게 만들어졌다. 만물이 되살아나듯, 봄이 오면 야구도 시작된다. 여름에 활짝 피어나서 저녁나절을 충만하게 채운다. 그리고 찬바람 속에 비가 내릴 때 낙엽이 떨어져내리듯 쓸쓸하게 떠나간다.
우리는 야구를 보며, 흐르는 세월을 잠시 잊기도 하고, 찬란한 햇살의 기억을 잠시 붙잡아둔다. 그러나 저무는 하루가 가장 간절해질 때 쯤 노을이 지듯 야구도 그렇게 멈춘다.
그가 쓴 Take Time For Paradise: Americans And Their Games의 일부다. 그는 정말로 정말로 야구를 사랑한 사람이었던거 같다.
87년부터 NL 커미셔너로 활동하다가 89년 MLB커미셔너가 되었는데 재임기간은 아주 짧았다. 그해 8월 갑작스런 죽음을 맞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리그 역사에서 자주 거론된다. 역대최다안타 피트로즈의 야구도박을 [영구제명]으로 처벌했던 일 때문이다. 그가 취임 직후 커미셔너 대리(a deputy commissioner)로 임명해서 the integrity of the game를 담당하게 했던 페이 빈센트가 그의 사망 후 잔여임기 커미셔너가 된다.
그런데, 98년부터 그 다음을 이은 10대 커미셔너 버드셀릭은 여러가지 면에서 그와 대척점에 있는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버드셀릭은 전형적인 사업가였다. 지아매티가 원칙과 전통을 지켜내는 것을 중시했다면 버드셀릭은 메이저리그의 사업적 성장을 이끌었다. 대신 약물로 리그가 얼룩지는 것을 묵인하고 방조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셀릭-만프레드 시기의 메이저리그는 피트로즈에 대해 관대해지고 있다. 2010년 9월12일 신시네티는 피트로즈의 최다안타 기념행사를 열었고 제명 이후 최초로 그를 공식초대했다. 만프레드가 피트로즈의 공식복권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바트 지아매티의 후임 커미셔너이자 절친이었던 페이 빈센트는 이런 움직임에 대해 격렬한 반대의사를 밝힌 적이 있다. "규칙을 정한 사람들이 규칙을 집행하지 않으면 규칙은 없는 것이 된다"
정운찬총재는 여러가지 비전을 밝혔다. 클린베이스볼. 야구산업화. 메이저리그 역사에 빗댄다면, 바트 지아매티와 버드셀릭은 이 각각을 이끌었고 또 상징한다.
세상일은 참 간단하지 않다. 야구도박으로, 그것도 자기가 감독으로 재직하던 중, 자기 팀 경기의 승부도박을 했던 피트로즈는 영구추방의 처벌을 받았다. 하지만 동료들은 그를 여전히 좋아한다. 2010년 최다안타 기념행사에 초청되었을 때 빅레드머신 시절의 동료들은 그를 환영했다. 팬들도 20여년만에 돌아온 그를 보기 위해 구장을 가득 메웠다. 홈구장에는 그의 동상도 있다. 제명 이후에 암묵적으로 사용하지 않던 그의 14번은 2016년 아예 공식영구결번지정되었다.
그의 영구제명결정 당시, 메이저리그에서 피트로즈의 배분은 정말 하늘 만큼 높았다. 역대 최다안타 기록보유자이기도 했지만 그의 허슬플레이와 승부근성은 야구의 로망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는 그야말로 미스터 베이스볼이었다.
지아매티는 "경기도박사실이 밝혀진" 피트로즈의 처벌을 결정한 것이 아니다. 그저 소문이었고 혐의일 뿐이었다. 당사자는 격렬하게 혐의를 부인했고, 전임 커미셔너는 퇴임직전 그에 대한 조사중지를 선언한 상태였다. 하지만 지아매티는 조사를 재개했다. 그리고 집요한 추적 끝에 혐의를 밝혀냈고 피트로즈를 추방했다.
미국에서는 스포츠도박이 합법이다. 한국에서처럼 검찰이 조사를 하고 조사 결과를 봐서 적당한 처분을 내리는게 아니다. 한국으로 치면 이런 비교가 합당할까. 영웅 중의 영웅인 이OO에 대해 약물의혹이 있었다. 그에 대한 집요하고 철저한 조사를 시도할 야구인이 이 나라에 있을까? 그게 밝혀졌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야구에 대한 어떤 비난이 있을지 뻔히 상상이 되는데?
하지만 지아매티는 그렇게 했고, 그걸 통해 야구를 경기도박으로부터 지켜냈다. 블랙삭스 스캔들로 인해 멸망할 뻔한 메이저리그를 당시 커미셔너 랜디스가 지켜냈던 것처럼.
미국이 한국과 그리 많이 다를까? 메이저리그의 사람들은 KBO리그의 사람들과 그리 많이 다를까? 피트로즈는 도박쟁이로 욕먹고 매장된 사람일까? 아니다. 영구제명된 신분임에도 그의 동료들과 팬들은 여전히 그를 사랑한다. 그래서 그를 용서하고 받아들이는게 맞을까?
버드셀릭은 HOF입성했다. 그가 HOF가 갈 수 있다면 본즈나 클레멘츠가 HOF가 못갈 이유가 뭐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MLB헌법에 커미셔너의 역할은 "야구의 이익(best interest)을 지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로부터 야구의 이익을 지켜야 할까.
아이러니하게도, 야구인으로부터 그래야 하고 구단으로부터 그리해야 하고 야구팬으로부터 그래야 한다. 그래야 야구의 가치가 지켜질 수 있고, 그래야 --- 야구로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
버드셀릭은 사업가였고 메이저리그를 성공한 비지니스로 만든 공을 갖고 있다. 하지만 랜디스와 지아매티가 없었다면 그게 가능했을까?
신임총재의 비전은 야심차지만 숙제는 무겁다. 야구의 가치를 지키는 것과 성공한 비즈니스로 만드는 것은 양립하기 쉽지 않는 일일 수도 있다.
물론 한국이기 때문에 오히려 쉬운 부분도 있다. 워낙 척박하다보니, 기본조차 안되있다보니, 최소한의 합리성만 확보해도, 적어도 지금보다 가치 측면에서나 비즈니스 측면에서나 양면 모두에서 나아질 부분이 많을 거다.
다만, 본질은 같다. 리그의 커미셔너는, [야구인]으로부터 [야구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 [야구팬]으로부터 [리그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
구단 각각의 이해 합계와 구단의 집합체인 리그의 이해는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리그는 팬들의 애정 위에서 성립하지만 그렇다고 팬의 바램과 리그의 이해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커미셔너는 [구성원의 이해]를 모아서 [야구의 이해]를 지키는 자리라기보다 구성원의 개별이해에 맞서서, [야구의 이해]를 지키는 자리다. (이렇게보면 그가 경제학자인 것은 좀 다행인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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