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인 '타고' 기간 내내 투수들은 수준하락 소리를 들었다. 이제 '타고'가 사라지자 타자들이 거품 소리를 듣는다.
뭐가 뭔지 단박에 알 수는 없지만 --- 둘중 하나만 해야하지 않나. 득점이 많으면 투수를 xx취급하고 반대로 득점이 적으면 타자를 oo취급하고.
경기사용구 변화는 분명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투수들 수준이 단 1년만에 바닥에서 하늘로 치솟았다는 것은 개연성이 떨어지니 그쪽이 더 타당한 가설이다. 헌데 그렇다면 13-14년 사이에 일어난 변화도 지나치게 급격했었다. 그렇다면 그건 뭐였을까. (모든 리그 관계자는 공인구에 손을 댄적 없다고 했었다)
13년-14년 사이의 경기당득점 변화폭이 18년-19년 사이의 변화폭에 비해 결코 작지 않았다. 18-19년은 대놓고 공을 바꾼건데 그렇다면 13년-14년은 뭐였을까.
단 1년만에 극적으로 바뀐 올해의 득점환경은 --- 투수들의 기량향상이나 타자들 실력하락보다는 --- 공인구 변경이라는 외적 요인의 영향에 의한 것으로 보는게 당연히 합리적이다. 그렇다면 역시 단 1년만에 극적으로 득점환경이 바뀐 13-14년의 변화는 뭐였을까.
가장 많이 거론된 몇가지 요인에 대해 미리 짚어두자면 아래와 같다.
1. 외국인선수 슬롯증가는 영향을 준게 거의 확실하다. 다만 그 전부이긴 어렵다. 대략 30% 전후로 보인다. (외국인선수.자리에 팀내 대체선수를 넣고 시뮬레이션하면 대략 이정도로 나온다. 우산효과 같은건 없다고 가정했다)
2. 팀수가 늘어난 것은 이유로 보기 어렵다. 8팀에서 9팀으로 늘어난 것은 타고가 시작된 14년이 아니라 1년 전인 13년이었다. 다시 9팀-10팀이 된 15년은 14-18 5시즌 타고기간 중 그나마 타고가 가장 덜했다. 신생팀 NC는 타고기간 거의 내내 상위권 성적을 냈다. 정황이 전혀, 앞뒤가 안맞는다. 게다가 늘어난 팀수가 투수-타자 어느 일방에게만 영향을 준다는 것도 논리적이지 못하다.
3. 투수 수준하락을 논하는 것은 --- 그야말로 '수준이하'다. 투수수준을 득점으로 평가하면서 득점증가를 투수수준으로 설명하는 것은 --- 왜 더울까 묻는데 기온이 높으니까 라고 대답하고 왜 기온이 높을까 묻는데 날씨가 더우니까 라고 답하는 꼴.
묘한 것은, 공인구 변화가 이 엄청난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는 믿음의 배경에 --- 그와 완전히 배치되는 [공인구검사결과]가 있다는 점이다.
올해들어 2번 실행된 샘플링테스트에 따르면 --- 공인구 반발력은 작년과 같다!!!!!!!!
합격/불합격이란 표현에 가려져 있을 뿐, 수시검사 결과로 보면 --- 작년 공인구반발력수치와 올해 공인구반발력수치는 거의 같다. 안달라졌다. 하지만, 득점은 줄었다.
결론은? 그런거 없다. 대신 교훈은 이렇다. 야구 몰라요에 이은, "야구공 몰라요"
우리는 야구공에 대해 모른다. 의도를 갖고 무언가 하지만, 그게 의도한 결과로 이어질지에 대해 아무런 보장이 없다. 이게 한국만 그런게 아니다. mlb도 비슷한 지경이다. 공이 막 날아가서 홈런수가 급증하고 있는데 --- 아무리 봐도 공에 달라진게 없단다. 그저 비거리만 늘어나고 있을 뿐.
누군가는 이걸 음모로 푼다. 그러면 알기쉽다. 통쾌한 기분을 맛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체로 사실과는 상관없다.
배워야 할 것은 --- 제 손으로 만드는 조그만 야구공의 영향 조차 우리는 알지 못하고 통제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19년의 급격한 득점환경 변화를 보며 뜬금없이 14년부터 시작된 [타고]에 대해 뭔가 깨달은 느낌이다. 난 늘 궁금했다. 외적요인이 작용하지 않고 그렇게 급작스런, 그렇게 급격한 변화가 생기기 어려울텐데. 뭔가 분명히 있었을거라 생각했다.
이젠 생각을 바꿨다. 누구도 무엇도 의도하지 않았을 수 있다. 아무도, 아무일도 안했는데 --- 뭔가 달라졌을 수 있겠다는 거다. 아무일도 안했는데, 무슨일인가가 일어날 수 있다. 14년에.
하긴 그때 공인구 정책은 좀 혼란스러웠다. 여러개의 [공인]된 다양한 공이 사용되었다. 대체로는 [규격]에 합당했다. 하지만 크기, 무게, 반발력이 규격 이내라도 그 공으로부터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알 수 없었던 것이다. 19년의 공이 그렇듯. 아무도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지만 --- 그 공은 기대했던 공이 아닐 수 있다.
일어났던 일의 정체는 [음모]가 아니라 [통제실패]였을 것이다. 아무일도 안하면 아무일도 안생기는게 아니다. 거꾸로다. 아무일도 안하면 --- 무슨일이 생긴다.
세상이란, 문명이란 지독하게 엔트로피가 높은 상태로 유지되기 때문에 --- 꾸준히, 치밀하게 뭔가를 해내지 못하면 --- 무슨일인가가 생긴다. 14년에 일어난던 일이 그런거이지 않을까.
이런 세상에서, 무슨 험한 일이 일어난 경우 --- 범인을 잡아, 악당을 색출해 목매달려는 시도는 때로 무익하다. 그보다는 평범한 루틴이 얼마나 철저하게 유지되고 있는지 점검하는 쪽이 오히려 더 유익할 수도.
페이스북 2019.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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