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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택이 달리는 이유 @ 트윈스vs한화 2010년 4월25일

by 토아일당 2015. 1. 27.

 topic   박용택 타격왕 홍성흔 주장 슬럼프 프랜차이즈 스타 엘지트윈스 FA 계약 정성훈 



그 전 시즌, 논란의 타격왕 타이틀을 갖게 된 박용택은 2010년 트윈스이 캡틴으로 시즌을 시작했습니다.    

지독한 슬럼프에 빠져있던 5월25일 일요일 한화전.  

상대선발 카페얀에게 눌려 0:0으로 이어진 경기는 7회 정성훈과 조인성의 연속안타로 무사23루 절호의 기회를 맞이합니다.  타율 0.167의 박용택 차례.  대기타석에서 묵묵이 연습배트를 돌리던 그는 대타로 교체되며 타석에 설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경기는 3:0으로 트윈스가 승리했습니다.  다음날 한 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습니다. 


불이 꺼졌다. 지난 25일 LG는 한화에 3-0으로 이겼다. 경기가 끝난 뒤 약 30분이 지났다. 유니폼을 벗고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었다. 불 꺼진 잠실구장에 그가 나타났다. 어둑어둑한 일요일 밤의 그라운드를 천천히, 그리고 묵묵히 뛰었다. 그의 러닝은 훈련이라기보다는, 참선에 가까웠다. 상의 지퍼를 목 끝까지 올린 채 수도승처럼 박박 깎은 머리만 내놓고 천천히 그라운드를 돌았다.

-- 경향신문 2010년 4월 26일 베이스볼라운지 중에서 



2010년 4월 말, 시즌이 시작되고 한달반이나 지났지만 그는 지독한 부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OO택 시리즈가 아니라 메트로박이고 불리는 게 더 익숙하던 시절, 박용택은 루키시즌의 화려한 임팩트 이후로는 그닥 눈에 띠는 실적이 없다보니 팀의 간판이라면 간판이지만 어색하다면 어색한 프랜차이즈로 몇해를 보냈습니다.  


하긴 그가 메트로박이라 불린걸 보면, 팀의 간판보다는 서울지하철의 간판 이미자가 더 강했던 것일수도 있겠네요. 


페타지니를 뒤에 둔 박용택은 2009년 몬스터 시즌을 보냈고, 그 말많던 논란의 타격왕 타이틀을 따냈으며 박종훈 감독 부임 2년차에 가을야구의 기억도 가물가물한 90년대 최고의 명문팀 트윈스의 캡틴으로 시즌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시작된 지독한 부진.  기사에도 나왔듯이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들중 최악의 타율.  하물며 멘도사가 그보다 더 나은 타자였습니다. 


당시의 가벼운 팬들에게야, 스타일 좋은 도시남자 박용택의 이미자가 강했지만, 나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트윈스의 타자들 중 정확도와  파워를 겸비한 가장 재능있는 타자로 평가받아왔던 그였으니, 드디어 포텐 대폭발이라는 기대감과, OO택 시리즈의 초창기 버전인 조작택 논란에 더해 뜬금활약이라는 째진 시선, 이 두가지 상반된 시선을 마주한 채로 시작된 시즌이 2010년이었습니다.  


(기억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최훈씨가 스프링캠프 취재하며 만화그렸을때, 팀에서 가장 유망한 파워히터가 누구냐고 물었을때, 코칭스탭으로부터 박용택이란 대답을 듣고 의아해했다는... 카툰이 있었지요)


저날 저 기사가 유독 맘에 남아있는 것은, 저 역시 그날 덕아웃 바로 위 자리에서 박용택의 대기타석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경기 막판의 결정적인 고비, 대기타석의 박용택은 관중석의 제 자리에까지 전해질 것 같은 절실함으로 연습배트를 돌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 기사에서 말하듯이 상대팀의 투수교체.  당연히 예상된 왼손 릴리프. 


이상하게도 심장이 쿵쾅거리며 먹먹해지는 느낌이...  교체되면 안되는데 안되는데.  그에게 한번 더 기회를 줘야하는데.  중심타선을 맡은 캡틴이 팀의 고비에 교체당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데. 


그왜 있잖습니까.  내 가족이 일하는 곳을 우연히 들렀는데 실수든 무엇이든 윗사람에게 지독하게 깨지는 모습을 본것 같은 그런 민망함, 난처함, 먹먹함.


상대팀 코칭스탭이 마운드에 올라 공을 건네받고 불펜에서 새로운 투수가 마운드를 향해 뛰어오고 우리팀 덕아웃에서 대타 사인이 날때까지의 그 시간동안, 박용택은 고개를 숙인채 입을 앙다물고 연습스윙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구경꾼인 저도 아는 아마도 예상될 상황, 지켜보는 제 가슴 조차 먹먹해지는 그 시간동안, 그의 속이 어떻게 헤집어졌을지...


팀은 이겼지만 마음이 못내 무거웠고 집에 돌아와서 저 기사를 읽고 한참동안 꿀꿀했던 기억이 납니다.


박용택이 FA계약하기 몇해 전인가 했던 인터뷰 중에서, 팀으로부터 받는 대우와 보상에 대해 서운함은 비춘 적이 있습니다.  대략 팀의 간판이라 하면서 성적이 너무 어중간하지 않느냐라는 비판에 대한 대답이었는데, 기억하기로 당시 연봉이 1억이 좀 못됐든가 좀 넘었든가 했던거 같습니다.  물론 작은 액수는 아니지만 간판노릇해야 한다 닦여야 할 정도도 아닌 수준.   말하자면 비난의 이유가 기대치 때문인데, 막상 프로로서의 실질적인 기대치 즉 연봉은 그닥 높은 것도 아닌, 그러니까 허울뿐인 말로만의 기대치가 있고, 또 그 기대치 때문에 좀 억울한 비판을 받고 있음에 대한 서운함 이었던가 봅니다. (물론 벌써 꽤 오래전의 일이겠습니다.  박용택도 지금보다는 많이 어렸던 시절... )


FA계약에서 보여준 팀에 대한 충성심, 그리고 작년까지 연속 3-4년 동안 보여준 안정된 성적, 그리고 많은 분들이 금과옥조로 신봉하는 득타율 수위. 라는 스펙장착,,, 으로인해 , 이제 박용택은 팬들에게 대충 평생까방권을 획득한 정도에 이른거 같습니다.   (물론 저 역시 그는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선수들을 논하며 "프로니까"라는 말을 참 쉽게 씁니다.  여러 의미를 가졌지만 돈을 받고 야구하는 사람들이니까 성적으로 결과로보여줘야 하며 다소 냉정한 비판과 평가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정도의 뜻일겁니다. 


하지만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보여주는 한순간 한순간의 투혼과 열정은 아주 많은 경우 값을 치르지 않은 그들의 희생정신과 충성심으로부터 비롯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나이를 먹어가며, 세상을 살아가며 야구에서 이전과 다른 걸 보게 되는게 있다면, 선수들의 뒷모습인거 같습니다. 


팬으로서, 팀이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선수들도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그들이 프로인 것은 맞지만 또 그렇다고 스탯만으로 이루어진 비디오게임의 캐릭터인 것은 아닐테니까 말입니다.  


2013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