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n or Not? 3루코치를 위한 네비게이션 지침
올바른 '풍차돌리기'를 위한 세이버메트릭스 그리고 홈승부의 손익분기점
야구에서 경기운영의 전권을 가진 감독을 제외한다면 선수가 아닌 코치들이 주목을 받거나 비난의 표적이 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예외가 하나 있다면 공격팀 3루코치입니다.
경기상황에서 주자는 등뒤에 날아간 타구나 상대 외야수의 위치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주루방향 앞쪽에 있는 3루코치가 달릴 것인지 멈출 것인지 사인을 주는게 보통입니다. 특히 승부처에서 주자를 2루에 두고 외야 쪽의 짧은 안타가 나올 경우 관중들의 시선은 3루를 돌아 홈을 향해 달리는 주자에게 모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호쾌하게 두팔을 돌려 2루주자가 득점에 성공하면 그만큼 짜릿한 장면도 없지만 만약 주자가 홈에서 죽게 되면 그 이상의 비난이 베이스코치에게 쏟아집니다. 반대로 주자를 3루에서 멈췄는데 다음타자 범타로 득점없이 이닝이 끝나면 이 경우도 3루코치의 소극적 판단이 심판대에 오릅니다. 안타 뿐 아니라 주자를 3루에 둔 희생플라이나 내야땅볼 때도 비슷합니다.
성공가능성이 아니라 손익분기점이 문제
그런데 주루에 대한 판단은 야구의 많은 것이 그렇듯이 확율의 문제입니다. 타이밍 상 어렵다고 해도 상대 수비의 홈송구가 부정확할 수도 있고 또 넉넉한 비거리를 가진 안타라도 주자의 주력이나 그림같은 레이저 송구로 뜻밖의 객사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판단하는데 필요한 것은 단순한 세이프 확율이 아니라, 달리는 것과 멈추는 것 사이의 손익분기점입니다.
1000원을 걸고 이기면 2000원 지면 0원이 되는 도박을 할 경우 손익분기점은 50% 입니다. 승률이 50%가 넘는다고 판단되면 이 도박을 하는게 이익입니다. 그런데 1000원을 걸어서 이기면 4000원을 받는 규칙이라면 승률이 좀 낮아도 도박을 해야 합니다. 이 경우 손익분기점은 25% 입니다. 4번에 1번만 이겨도 본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승률이 낮아도 손익분기점에 따라 도박을 하는게 더 이익일 때가 있습니다.
주루에 대한 판단도 마찬가지입니다. 3루코치가 팔을 돌려서 성공할 경우의 댓가가 충분히 크거나 반대로 실패해도 잃을게 적다면 비교적 낮은 성공확율이라도 주자는 홈으로 달리는게 더 합리적인 선택이 됩니다. 예를들어 1사23루에서 짧은 내야땅볼이 나온 경우 3루주자가 뛰어들어 홈승부가 펼쳐질 경우, 성공하면 1득점+무사 주자13루가 되고 실패하면 0득점+2사13루가 됩니다. 그런데 3루주자가 움직이지 않으면 타자주자가 아웃되며 2사23루가 됩니다. 3루주자가 홈에서 아웃된다 해도 2사23루가 될 상황이 2사13루 상황으로 바뀐 것에 불과합니다. 즉 실패의 댓가는 (2사23루상황의 가치 - 2사13루 상황의 가치) 인데 이것은 그리 큰 손실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3루코치의 “신호등” 역할에 관한 손익분기점을 계산할 수 있습니다.
3가지 아웃카운트와 8가지 베이스상황(없음,1루,2루,3루,12루,13루,23루,123루)의 조합인 24종류 base/out states 각각에 대한 기대득점(Run Expectancy)를 비교해보는 것입니다. 세이버메트릭스가 늘 사용하는 방법이죠.
(참고) 기대득점과 득점가치 - http://baseball-in-play.com/70
"무사2루는 멈추고 2사2루는 돌린다"
아래 차트는 무사2루, 무사12루, 1사2루, 1사12루, 2사2루,2사13루 6가지 조건에서 2루주자의 홈승부 성공의 이익, 실패의 손실 그리고 그 둘을 고려한 손익분기점입니다. 붉은색 영역은 실패(홈에서 아웃)의 손실, 푸른색 영역은 성공(득점성공), 검은색/회색선은 손익분기점(BEP) 수준입니다.
가장 보수적이고 안전한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은 무사2루 상황입니다.
주루코치의 선택은 2루주자가 3루에 도착한 순간에서 시작합니다. 홈승부를 시도할 경우 성공하면 1득점+무사1루가 되고 실패하면 득점없이 1사1루가 됩니다.
시작 : 무사13루 RE 1.855
성공결과 : (1득점 + 무사1루 RE 0.890) - 1.855 = +0.035점
실패결과 : 1사1루RE 0.560 - 1.855 = -1.295점
손익분기점 97.4%
따라서 손익분기점은 97.4% 입니다. 즉 거의 100% 세이프를 확실할 수 없다면 2루주자는 무조건 3루에서 멈춰야 합니다. 타이밍상 아웃이라도 송구실책 등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좀더 공격적인 주루가 필요하다는 말이 맞다고 해도 이럴 경우는 아닙니다.
"에이스투수를 상대할 때는 좀더 적극적으로 돌린다"
2사2루 상황에서는 반대입니다. 물론 2아웃 이후에는 주자의 스타트가 빠르기 때문에 타이밍상으로도 홈승부가 확율이 높은 경우가 많겠지만, 주자가 아주 느리고 외야수가 리그급 강견이라서 만만치 않은 상황이라 해도, 2루주자가 홈에서 아웃될 경우 경기가 끝나버리는 아슬아슬한 상황이라도, 다음타자가 4할타자라 해도 어지간하면 돌리는게 통계적으로 맞는 선택입니다.
시작 : 2사13루 RE 0.534
성공결과 : (1득점 + 2사1루RE 0.243) - 0.534 = +0.709
실패결과 : 이닝종료 RE 0.000 - 0.534 = -0.534
손익분기점 43.0%
홈승부 시도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클수록, 그리고 홈승부 실패로 감수해야 할 손실이 작을수록 선택에 대한 손익분기점은 낮아집니다. 그런데 손익분기점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경기의 득점환경입니다.
위의 계산은 KBO의 역대평균과 비슷한 수준의 득점환경이었던 KBO07_11 기간을 기준으로 한 것인데, 만약 이보다 득점환경이 나빠지는, 예를들면 상대투수가 아주 강하거나 우리 타자가 아주 약할 경우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낮은 득점환경 기준은 검은선 약간 아래있는 회색선인데(그래프 이펙트 아닙니다), 6가지 모든 상황에서 손익분기점이 더 낮습니다. 상대투구가 강할수록 우리 타자가 약할수록 주루플레이가 더 중요하고 주루에 대한 선택이 좀더 과감하고 공격적이어야 한다는 의미도 됩니다.
*** 경기당팀득점3.2 에 관한 데이터는 theBook에서 톰탱고가 Markov Metrics로 계산한 값을 사용함
1루타로 득점할 수 있다는 이유로 주자2루를 스코어링포지션이라 부르지만 실제로 2아웃이 아닌 경우 단타에 2루주자가 득점에 성공하는 비율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0아웃/1아웃 조건에서는 50%가 약간 넘는 수준입니다. 참고로 KBO14시즌에 0아웃/1아웃 단타에서 득점성공율이 90%가 넘었던 2루주자는 5명인데 정수빈, 손아섭, 오지환, 김주찬, 전준우였습니다.
(참고) "한베이스 더 가는 야구"의 주인공들 http://baseball-in-play.com/154
"1사3루의 외야플라이는 일단 돌리고 보자"
위는 무사/1사 주자3루 상황에서 외야플라이가 나올 경우입니다.
가장 안전한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은 무사3루 입니다. 손익분기점은 84.0%입니다. 가장 공격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은 1사3루 상황인데 이때의 손익분기점은 32.6%에 불과합니다. 즉 홈으로 파고든 3루주자가 세번 중 한번만 세이프되도 팀에 이익입니다.
BEP(3.2/G) 조건에서는 28.5%로 더 낮아집니다. 3루코치가 주자의 발과 외야수의 어깨를 고려해서 28%의 이상의 세이프가능성만 있다고 판단한다면 홈으로 파고드는게 더 합리적입니다. 물론 실패했을 때 이런 통계적 판단이 팬들의 비난을 막아주지는 않겠지만요.
전체적으로 아웃카운트가 많을수록 손익분기점은 낮아지고 주자가 많으면 손익분기점은 높아집니다.
주자상황에 따라 좀 다르긴 하지만 1아웃 상황에서는 외야플라이 때 3루자의 홈승부 손익분기점은 대체로 50% 미만이기 때문에 2번에 한번만 성공해도 이익입니다. 0아웃 상황은 대체로 75% 근처이고 4번에 3번은 득점에 성공해야 손해를 안볼 수 있습니다. 이보다 낮으면 통계적인 기준으로도 3루코치가 비난받는걸 변명할 도리는 없습니다.
"10%의 가능성만 있어도 3루자는 홈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위는 주자3루 상황에서 내야땅볼 홈승부의 경우입니다. 희생플라이 상황과 마찬가지로 0아웃/1아웃 주자3루+ 이지만 그래프의 패턴이 확연하게 다릅니다. 성공했을 때의 이익 즉 푸른 영역이 휠씬 크고 실패에 따른 손실인 붉은 영역이 휠씬 작습니다. 이유는 타자주자가 무조건 아웃되는 외야플라이와 달리 내야땅볼의 경우 3루주자가 홈으로 뛰어들어 홈승부가 벌어지면 타자주자는 그 사이 1루에 도착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각 상황의 손익분기점은 외야플라이 상황보다 내야땅볼 상황이 휠씬 낮습니다.
고장난 신호등을 위한 통계적 변명
그런 이유로 짧은 내야땅볼에서 3루주자가 런다운에 걸리거나 도대체 승산없는 홈쇄도로 태그아웃당했다 해도 주자를 너무 나무라지 않는게 좋습니다. 오히려 타구를 판단하고 홈승부를 결정하느라 스타트가 늦어지는 것보다는 딱 소리와 함께 무조건 홈에 뛰어들어 조금이라도 세이프확율을 높이려고 시도하는게 더 현명합니다. 물론 팬들이 이걸 알아줄지는 모르겠지만.
내야땅볼 중 병살타는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지기 때문에 제외했는데, 병살타성 타구가 날아갔을 때 홈에 뛰어든 주자가 아웃되고 덕분에 병살을 면할 경우는, 득점하지 못했다고 해도 아주 근소하지만 이득입니다. 하지만 거의 차이가 없기 때문에 만약 대기타석에 타자나 마운드의 투수가 강하고 약한것에 따라 뒤집어질 수 있습니다.
주자가 3루에 있는 내야땅볼 모든 상황의 손익분기점은 40% 미만이고 1사23루일때는 심지어 10% 아래입니다. 이런 결과는 홈승부를 시도하지 않고 타자주자만 1루에서 아웃되었을 때 남겨지는 2아웃 이후의 3루주자 가치가 생각보다 낮기 때문인데, 기대득점을 기준으로 볼 때 2사3루의 가치는 무사1루의 가치보다 낮습니다.
같은 분석방법으로 3루주자의 단독홈스틸의 손익분기점을 계산할 경우 0아웃 조건에서는 93% 정도, 2아웃 조건에서는 34% 정도가 나옵니다. 물론 홈스틸은 그보다 더 성공확율이 낮기 때문에 많이 시도되지 않지만 손익분기점이 꽤 낮기 때문에 2아웃 시에는 괜찮은 공격옵션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2아웃이 아니라면 홈스틸은 머리속에서 지워야 할 선택지입니다.
(참고) 한국프로야구에서 도루의 가치와 손익분기점 http://baseball-in-play.com/56
경기를 보는 입장에서는 주루사만큼 허무하고 답답한 플레이도 잘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 번 중 한번의 실패도 기억에 남고 두고두고 아쉬워집니다. 당연한 팬심이고 인지상정입니다.
하지만 통계적 합리성에서 본다면 어떤 조건에서는 절반 혹은 그 이상의 실패가 눈에 보여도 무조건 달리고 뛰어드는 것이 결과적으로 이익인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야구를 확율의 경기라고 하는 것일테죠.
현장의 경험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전문성입니다. 그러나 세이버메트리션은 약간 다른 방향으로부터 유용한 지식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2루타를 30개 치는 선수 홈런을 10개 치는 선수 중 누가 득점기여도가 더 높은지 가장 정확한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세이버메트리션입니다. 그런데, 선수A와 선수B 중 누가 더 많은 2루타를 치게 될 것인지 판단하는 것은 현장의 경험과 스카우팅기술일 것이니다.
주루플레이도 비슷합니다. 경기의 바로 그 상황에서 홈승부의 성공확율이 얼마인지 가장 잘 판단할 수 있는 것은 현장의 경험과 기술입니다. 그런데, "그만큼의 성공확율"일 때 그것이 과연 손해냐 이익이냐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통계적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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