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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선의 메트릭스] 1번타자 

배영섭과 이종욱, 누가 더 좋은 1번타자일까?


이 글은 2014년 초에 bizball project라는 팀과 함께 작업하며 썼던 글입니다.  그리고 베이스볼긱에 게재된 칼럼이기도 합니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중단되었는데 틈틈히 다시 시작해보려 합니다.  타순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과 통계적인 "사실"을 비교합니다.  어떤 것은 실제로 그랬을 것이고 어떤 것은 아닐 겁니다. 


사용된 데이터는 KBO07_11 5시즌 동안의 것이며 약 20만타석의 결과입니다.  다만 이 데이터를 기초로 확인되는 [통계적 사실]은 모든 통계적인 분석이 그렇듯이 설명가능한 제한 안에서만 이해되어야 합니다.   

07_11시즌 기간 동안 각 타순에서 만들어진 데이터는 그 기간 중 KBO의 8개팀 벤치가 선택한 특정한 조합의 결과입니다.  1번타자가 또는 4번타자가 어쨌다고 해도 그게 항상 그렇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 시기 벤치가 가졌던 패러다임으로 만든 타선에 그랬던 것입니다.  만약 앞으로도 비슷한 패러다임으로 타순을 짠다면 확인한 통계적 사실은 비슷하게 반복될 가능성이 높고 그렇지 않다면 달라질겁니다.  



야구에서 1번타자의 공격의 시작을 이끈다.   선구안이 좋고 출루율이 높으며 빠르고 주루플레이에 능한선수가 적합하다는 것이 오랜 믿음이다.  1번타자는 단순히 9명중에 한 명 이상의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고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시즌을 준비하며 많은 팀의 감독 인터뷰에는 “톱타자 고민"으로 시작되는 타이틀이 붙는다.  리드오프 역할을 맡게 되는 타자들의 인터뷰에서도 “부담"이라는 키워드는 빠지지 않는다.  


반면 다른 시각도 있다.  1번타자는 그저 1회에 첫번째로 들어서는 타자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실제로 1회를 제외한 다른 이닝에서 1번타자가 반드시 선두타자로 타석에 선다는 보장은 없다.  따라서 1번타자에게 부여되는 상징적 의미는 그저 과학적이지 않은 관념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07-11 5시즌동안 KBO의 1번타자는 타율 0.285 출루율 0.360 장타율 0.384 를 기록했다.  타율은 9명의 타순 전체 평균에 비해서 +0.017 출루율은 +0.013 장타율은 -0.011 에 해당한다.

통계적 사실을 통해 1번타자에 대해 무엇을 더 알 수 있을까?



1번타자는 가장 많이 타석에 선다


타순에 따라 배터박스에 서는 야구경기에서 1번 타자가 9명의 타순 중 가장 많이 타석에 서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9번타자가 경기의 마지막 타석에 선다면 결과적으로 9명의 타자는 모두 같은 횟수만큼 타석에 설 수도 있다.   

07-11 5시즌 동안 각 타순의 타자들은 평균 22503번 타석에 섰다.  이중 1번타자의 타석은 24739번이다.  평균에 비해 10% 정도 많다.  9번타자에 비하면 22.5% 많은 숫자다.   


리그의 A급 1번타자들은 한시즌 500타석에 섰을 때, 팀에  65점에서 70점 정도의 득점기여를 한다. (2013시즌 XR기준)   9번 타순에 배치되는 타자의 동일 조건 득점기여도를 35-40점 정도라고 가정할 경우, 이두 타자의 타순을 바꾸면,  팀은 한 시즌 동안 0.7승 정도의 손해를 보게 되고 승차로는 1.5경기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뜻이다.   단지 두 선수의 위치를 바꾸는 것만으로 생겨나는 차이라면 작다고 보기 어렵다.  배팅오더에 쓰여진 9명 중 가장 많은 타석에 선다는 것이 이만큼의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현대야구이론에서는 출루율이나 도루능력 같은 전통적인 기준이 아니라 득점생산능력이 가장 높은, 예를들면  OPS가 가장 높은 타자를 1번에 배치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1번타자는 주자없는 상황에 등장한다


1번타자는 단지 1회에만 첫번째 타자일까?  그렇지 않다.  1번타자가 무사 주자없는 상황에서 타석에 서는빈도는 평균보다 83% 더 많고, 2번 타자에 비해서는 무려 2.4배 더 많다.  무사 뿐 아니라 전체 아웃카운트상황에서도 1번타자는 평균보다 31% 더 자주 주자없음 상황에서 등장하며 이는 4번타자나 8번타자에 비해 1.5배 많은 빈도이다.


1번타자는 출루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4번타자도 출루는 중요하다.   그리고 주자가 있거나 없거나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주자없음 조건의 타석에 대한, 가장 중요한 전략적 의미는 출루 자체가 아니라“출루의 방법”이다.  

평균적인 상황에서, 1루타는 볼넷에 비해 1.5배 정도의 가치를 가진다.  볼넷은 출루를 만들지만 진루를 만들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자2루에서 볼넷은 선행주자를 진루시키지 못하지만 1루타는 당장 득점을만들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주자없는 상황에 한정해서 본다면 볼넷과 1루타의 가치는 같다.  선행주자가없을 경우 1루타도 볼넷과 마찬가지로 출루만 만들 뿐 진루를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야구경기의 목적은 승리이며, 이를 위해 공격팀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득점이다.   그리고 더 많은 득점을 만들어 주는 것이 출루와 진루이다.  그래서 현대야구이론에서 좋은 타자란 더 자주 출루하고 더 멀리치는 선수라고 정의한다.   출루율과 장타율을 더한 OPS라는 지표가 타자의 가치를 설명해주는 가장 유용한 지표로 평가받게 된 배경도 같다.

팀이 많은 득점을 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더 자주 출루하고 더 멀리 진루시키는 타자들로 배팅오더를 채우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팀에도 더 잘치는 타자가 있지만 그렇지 못한 타자도 있다.  그랬을 때 각각의 선수가 가진 상대적 능력에 맞게 최적의 조합을 해내는 것이 팀의 전략이며 타순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50개의 볼넷과 100개의 1루타를 치는 타자와 100개의 볼넷과 50개의 1루타를 치는 타자가 있을 때 둘 중에서 더 많은 득점을 만들어내는 쪽은 후자이다.  통계적으로 20% 정도 더 많은 득점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주자없는 상황에서 타석에 선다면 두 타자가 만들어낼 수 있는 기대득점은 같아진다.  


만약 출루능력은 상대적으로 뛰어나지만 장타능력이 떨어지는 타자가 있다면 이 선수는 1번타순에 배치하는게 팀에 도움이 된다.   선수의 강점을 살리고 약점을 희석시킬 수 있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주루능력은 얼마나 중요한가?


전통적인 시각에 따르면 빠른 발은 1번타자의 중요한 덕목이다.  그렇게 생각할 만한 그럴듯한 몇가지 이유도 있다.  

첫째, 주자가 없는 상황은 내야안타의 가능성을 높여준다.  둘째, 주자 없는 상황의 출루는 도루가능 상황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셋째, 출루를 하게 되면 다음 타자의 타석은 병살타 위험 상황이 될 가능성이높다.  실제로, 1번 타자 다음에 이어지는 2번과 3번의 타석은  9개의 타순 중 병살타 상황 빈도가  다른 타순에 비해 40% 정도 더 높다.


하지만 이런 이유 전부가 합리적이지는 않다.  

우선 내야안타 가능성은 고려할 만한 요인이 아니다.  왜냐하면 볼넷이든 무엇이든 결과적으로 더 많은 출루를 하는 타자가 있다면 그 선수가 더 많은 득점을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 1번 타자의 내야안타는다른 타순의 타자들에 비해 좀더 가치가 높을 수도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주자없음 상황에서 자주 타석에 서기 때문이다.  내야안타는 출루의 가치는 같지만 선행주자를 진루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낮기 때문에 평균적인 1루타의 가치보다 낮게 평가되지만, 주자없음 상황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1번 타자의 등장상황에 대한 통계는 확실히 그가 더 자주 도루기회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시즌 전체로 봤을 때 의미있는 만큼의 차이를 만들기 어렵다.   리그 최고수준의 주자라고 하더라도 한시즌에 기껏 30개 정도의 도루를 더 기록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주루능력은 평범하지만 한시즌20번쯤 더 많이 출루하는 타자가 있다면 그 선수를 1번에 둘때 팀은 더 많은 득점을 올릴 가능성이 높다.

 

도루는 물론 가치있는 공격옵션이다.  하지만 유독 1번타자에게 특별히 요구할 만한 덕목은 아니다.  1번타자가 도루기회를 좀더 많이 가질 가능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차이가 시즌 전체로 봤을때, 출루능력이 더 좋은 선수를 제치고 1번에 기용되어야 할만큼 크기는 어렵다.


더구나 1번타자의 도루가 다른 타순의 타자들에 비해 특별히 더 가치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반대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도루의 가치는 그때 타석에 서 있는 타자나 그 후속타자들의 특성에 따라 달라진다.  등장하게 될 타자들의 능력 특히 장타율이 높을수록 도루의 가치는 낮아지고 반대의 경우는 높아진다.  만약 팀에서 가장 잘치는 타자들이 2번부터 5번까지 배치되어 있다면 1번 타자의 도루는 평균적인 상황에 비해 약간 낮은 가치를 가지게 된다.


붙임 - 이 글을 쓸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1번타자는 주자 없는 상황에서 타석에 설 확율이 높기 때문에 출루를 하게 되면 2루가 빈 상태로 1루에 있게됩니다.  즉 출루하면 도루가능한 상황일 경우가 많다는 뜻입니다.  뛰어난 도루능력이 있는 타자가 1번이 아닌 다른 타순에 서게 될 경우 그만큼 도루기회를 잃게 되는 면은 있습니다.    


더 좋은 타자와 더 적합한 1번타자


2013시즌 KBO를 기준으로 가장 인상적인 3명의 리드오프는 삼성 배영섭과 두산 이종욱 그리고 NC 김종호이다.   50도루로 타이틀을 따낸 김종호가 전통적인 관점에 잘 어울리는 톱타자라고 본다면, 나머지 둘은 통계에 기반한 1번타자 모델을 설명하기에 적절한 예가 될 수 있다.  


배영섭   476타석.  0.295 / 0.402 / 0.372      23도루(10실패)  XR27 5.59

이종욱   456타석.  0.307 / 0.369 / 0.439      30도루(7실패)  XR27  5.84


XR27은 그 선수가 얼만큼의 득점생산능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타격 및 주루성적을 종합하여 측정하는 지표이다.  이종욱이 배영섭에 비해 다소 높다.  이 기준으로 보면 이종욱은 배영섭보다 더 좋은 타자이다.   하지만 1번 타자에 더 어울리는 것은 배영섭일 수도 있다.  이종욱이 더 많은 득점생산능력을 가지고있는 이유는 장타율이 0.439로 배영섭의 0.372보다 휠씬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선수가 주자없는 상황에서 타석에 설 경우, 그의 장타는 자신의 출루효과를 가지지만 선행주자의 진루효과를 만들어낼 수 없다.   따라서 출루보다 장타에 더 강점을 가진 타자가 발이 빠르다는 이유로 1번타자에 배치된다면 팀 전체로 볼 때 비효율이 될 수 있다.  


장타율이 높은 타자는 가치가 크다.   하지만 1번타순에 배치할 경우 그 가치를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다.   13이종욱은 매우 뛰어난 타자였지만 1번 타순에 배치하기에는 잃어버리는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  반면출루율은 높지만 장타율이 낮은 타자는 1번 타순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팀에 공헌한다.  

전략이란 한정된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방법을 말하며, 야구에서는 타순이 바로 거기에 해당된다.   동일한 득점생산능력을 가진 타자라도 어느 타순에 배치하느냐에 따라 팀 전체에 좀더 많은 승리를 가져다 줄 수 있다.





아래는 타선의 metrics 의 아이디어를 KBO14 시즌 각 팀 분석에 적용해 본 케이스입니다. 타선 위치에 따라 기대득점(Run Expectacy)과 실현득점의 흐름을 비교하는 분석모델의 실험 쯤 됩니다.     



댓글
  • 프로필사진 pinkyskull 1번 타자의 주루 툴이 꼭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익히 알고 계시듯이 1번 타자는 주자 없는 상황에서 가장 많이 타석에 서고 무사에서 가장 많이 타석에 섭니다.

    주자가 없을 때 타석에 서기에 장타툴이 썩기 쉽고 단타나 볼넷을 잘 얻는 타자면 충분한 것이 사실이죠.

    그러나, 반면 주자 1루 상황과 주자 2루 상황의 기대 득점이 가장 큰 차이가 나는 것도 무사입니다. 장타로 주자를 2, 3루에 보내기 아까우면 가장 싸구려 대안이 볼넷이나 단타로 나가서 도루를 시키는 것이겠죠. 이에 더해, 단타(볼넷)+도루가 2루타와 비슷한 가치를 가지는 것도 선행주자가 없을 때 뿐입니다.


    불행히도 팀에 장타자가 부족하거나, 상대 투수가 훌륭할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타고투저 이후로 도루를 포함한 주루의 가치 자체가 낮아지고 장타력이 전반적으로 향상되었기에 주루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지, 실제로 주루가 매우 좋은 선수가 있다면 '주루를 살리기엔' 1번 자리가 가장 좋긴 할 것 같네요.
    2015.07.21 02:51 신고
  • 프로필사진 토아일당 1번타자에게 도루기회가 가장 많은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다른 측면도 있습니다. 도루의 가치는, 이어지는 타자들의 장타율이 높을수록 낮아지고, 낮을수록 높아집니다.

    물론 성공한 도루는 다다익선이지만, 희생번트가 아웃카운트라는 비용을 가지듯이, 도루도 도루실패위험이라는 비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구요.

    1번타자 뒤로, 팀에서 가장 장타율이 높은 타자들이 나온다는 전제에서라면, 그런 이유로,,, 도루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6번이나 7번타자의 도루보다 낮아집니다.

    이왕이면 1번타자가 도루능력도 갖고 있는게 좋습니다. 뭐 금상첨화죠. 하지만 동일조건에서 도루능력이 어느타순에서 가장 유용하냐 한다면, 1번보다는 5번이나 6번 타순일 때 그렇습니다.

    물론, 전제는 뒤에 장타율 높은 타자가 있을 때 이야기겠죠. 그렇지 않으면 당연히 스몰볼이 빅볼보다 더 효율적인 옵션이 되는거니까요.

    --- 근데, 저는 주루툴이 무의미하다 한적은 없는거 같은데요.

    "1번타자의 도루가 다른 타순의 도루보다 특별히 더 가치있다고 보기 어렵다" 고 했습니다만...

    주루툴은 모든 타자에게 아주 가치있는 기술입니다. 유독 1번타자에게 더 중요하지 않을 뿐이고, 1번타자에게 도루기회가 더 많다고 해도, 타석과 대기타석에 장타율 높은 타자가 있는 상태에서라면, 통상의 경우보다 도루의 손익분기점은 더 높아지기 때문에 비효율적인데다가, 도루의 가치 자체도 하위타순일 때보다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거죠.
    2015.07.21 14:12 신고
  • 프로필사진 토아일당 대신, 모든 경우에, 장타가 약한 팀이라면, 진루타, 희생번트, 도루 같은 스몰볼 옵션이 상대적으로 더 가치가 높아진다는 것은 맞을겁니다. 2015.07.21 14:1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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