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를 보다보면 이번 이닝은 타순이 좋다 또는 타순이 나쁘다고 하는 이야기를 합니다. 타선의 9명이 모두 똑같이 잘칠 수는 없으니 보통 앞에 출루를 잘 하는 선수를 두고 3-4-5번에 팀에서 제일 잘치는 타자를 배치해서 득점을 노리는 게 보통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타자가 이닝의 선두타자로 나왔을 때 가장 많은 득점을 할 수 있을까요? 즉 가장 좋은 타순이란 어떤 것일까요? 지난 14시즌을 기준으로 보면 2번타자부터 시작되는 타순입니다. 1번타자보다 오히려 2번타자가 이닝의 첫타석에 섰을 때 평균적으로 더 많은 득점을 올립니다.
분석대상은 KBO2014 576경기 9회 이전 이닝입니다. 9회 이후 이닝의 경우 홈팀과 어웨이팀 공격횟수가 다르고 끝내기 승리로 완료되지 않는 이닝이 있기 때문에 제외합니다.
1번타자가 이닝의 첫타자로 나왔을 때 이닝 평균득점은 0.696점, 2번타자가 첫타자로 나왔을 경우 0.737점입니다. 선두타자가 1번타자일 때의 이닝당 득점은 2번타자 뿐 아니라 9번타자 3번타자 다음인 4번째입니다.
2번타자가 선두타자일 때 득점이 가장 많다
2번타자로 이닝이 시작될 때 득점이 많은 이유를 추측해본다면 아마 그 다음으로 팀에서 가장 잘치는 3번과 4번타자가 나오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1번부터 3번타자까지 팀에서 상대적으로 출루율이 높은 선수들이 배치된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3자범퇴로 물러나며 4번까지 공격이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결과는 약간 의아한 부분이 있습니다.
흔히 타순에 대해 이야기할 때 “1번타자는 그저 1회에만 첫번째로 등장하는 타자일 뿐”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맞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솔직히 평한다면 그건 그냥 말장난입니다.
타선 9명의 타자 중 1번타자가 이닝의 선두타자로 등장하는 비율은 전체 이닝 중 21.6% 인데 9명 중 한 명인 것 치고는 꽤 높습니다. 1번타자는 평균보다 2배 이상 자주 그리고 2번타자보다는 2.6배 더 자주 이닝의 선두타자로 나옵니다. 반면 2번타자는 선두타자로 나오는 비율이 8.2%로 모든 타자 중 가장 낮습니다.
그렇다면 뭔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타선의 구성이란 득점의 가능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입니다. 2번타자가 이닝 첫타자로 나왔을 때 득점이 많았다는 것은 2번부터 3-4번으로 연결되는 흐름이 득점에 좀더 효과적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야구의 타선은 9명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결국 한이닝 한이닝을 끊어서 공격을 하는 방식입니다. 따라서 9이닝 경기를 한다면 9개의 서로 다른 라인업으로 각각의 이닝에서 공격을 합니다. 1번부터 시작되는 라인업은 0.696점을 만들 수 있고, 2번부터 시작되는 라인업은 0.737점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경기에서는 1번부터 시작되는 라인업을 21.6%의 이닝에서 사용했고 2번부터 시작하는 라인업을 8.2%의 이닝에서 사용한 셈입니다.
그렇다면 2번부터 5번까지의 타순을 그냥 한칸씩 당기는게 더 낫지 않을까요? 그렇게 했다면, 2번부터 시작되는 그 라인업이 21.6%의 비중으로 사용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잃어버린 6.2점
(중국식 계산으로) 만약 1번타자와 2번타자가 각각 선두타자로 나오는 이닝의 빈도가 바뀐다고 가정할 경우, 14시즌 기준 평균적으로 각 팀은 시즌 전체로 6.2점을 더 득점하게 됩니다. 단순히 타순의 변경 만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입니다.
9번타자가 첫타석에 서는 이닝의 평균득점 조차 1번타자의 경우보다 휠씬 높습니다. 9번타자는 2번타자와 3번타자에 이어 9명 중 3번째로 적은 빈도로 이닝 첫타석에 섭니다. 14시즌의 경우 통계적인 결과로 보면 가장 많은 득점을 낼 수 있는 공격 라인업을 가장 적게 사용한 셈입니다.
지난 20년 또는 30년동안 세이버메트릭스는 야구의 많은 부분을 객관적으로, 통계적으로 해명해왔고 또 그런 종류의 분석과 지식이 실제 구단의 운영에 반영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타선에 대해서는 좀 더디고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1번타자가 이닝의 선두타자로 타석에 서는 비율은 매우 높습니다. 이것은 어느 팀, 어느 시기, 어느 리그라고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1번타자가 이닝의 첫타자 일때 그 이닝의 득점이 극대화될 수 있도록 타선을 구성하는 것이 효율적인 것은 당연합니다.
KBO14시즌의 경우 그런 결과를 보여준 팀은, 즉 1번타자가 이닝 첫타자일 때 팀의 이닝당 득점이 가장 많았던 팀은 엘지트윈스, SK, 한화 이렇게 3팀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게 좀 애매합니다. SK는 그나마 팀득점력이 리그 중위권 정도는 되었지만 트윈스와 한화는 리그 최하위 수준의 공격력을 기록한 팀입니다.
엘지트윈스, SK, 한화... 음?
팀의 득점력을 결정하는 요인은 다양하고 복합적입니다. 타선 구성의 효율성은 타자 한명 한명의 능력에 비하면 그 영향이 휠씬 적을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세이버메트릭스가 다루는 다른 부분과 달리 타선 구성의 효율성이라는 테마는 간명하고 명쾌하게 계산되거나 설명되기 어렵습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알고리즘을 이용한 여러 번의 모의실험 이외에는 딱히 다른 방법이 알려져 있지 못한데, 시뮬레이션이라는 수단은 멋지게 보이는 것에 비하면, 예를들면 기대득점모델 (Run Expectancy) 같은 딱 떨어지는 통계적 분석모델에 비해 정확성이 뛰어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전통적인 타선구성의 관점 중 어떤 것들이 득점효율성을 저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변화는 아주 느리게 느리게 관찰될 뿐입니다.
세이버메트릭스의 영향으로 달라진 타선구성의 관점 중 대표적인 것은 두가지 입니다. “강한 2번타자론” 그리고 “팀 최고의 타자는 4번이 아니라 3번이다”
MLB의 경우 이 두가지의 새로운 기준은 과거의 기준을 완전히 대체했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거의 대등한 수준으로 경쟁하며 채택되고 있습니다. 물론 비교적 최근에야 생겨난 변화입니다. 그에 비하면 KBO는 아직도 전통적인 관점이 휠씬 더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직도 더 강해져야 하는 2번타자와 3번타자
물론 MLB에 비해 KBO의 타선 구성전략의 변화가 느린 것은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과거에는 득점환경이 좀 달랐기 때문입니다. KBO05_11 기간의 통계를 보면 , 그 시기에는 1번타자가 이닝 첫타자 일 때 득점이 가장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게 된 것입니다. 변화가 시작된 것은 아마 2010년대 초반부터 같습니다.
새로운 방식을 선택한 MLB 구단들은 wOBA를 기준으로 할 때 3번 > 4번 > 2번 > 1번 순서로 강한 타자를 배치합니다. 물론 1번타자는 장타율은 상대적으로 낮아도 출루율이 높은 타자인 쪽이 좋기 때문에 wOBA에서는 팀 4번째지만 출루율만으로는 2번째나 3번째가 될 수 있겠죠.
이런 구성은 1번타자가 이닝 첫타석에 설 때의 득점가능성을 높여 줄 것입니다. 그리고 1번타자가 이닝 첫타자로 나서는 비율이 높은 한에 좀더 당연히 더 효율적인 타선이 될 것입니다.
정답이 무엇인지 단언하는 것은 무리라해도, 14시즌의 KBO에서 1번타자부터 시작된 타선의 구성은 명백히 비효율적인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보다는 2번타자와 3번타자가 좀더 강해져야 한다는 객관적 근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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