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두타자 출루의 가치와 책임
- 삼성이 선두타자 출루에 실패하고도 리그 득점2위가 된 이유
야구에서 선두타자 출루는 공격팀에게 당연히 유리합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유리할까요?
분석대상은 KBO 14시즌 576경기이며 9회 이전 이닝의 결과로 합니다. 9회 이전의 이닝만을 분석대상으로 한 것은 다음 몇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1) 홈팀과 원정팀의 공격횟수가 다르기 때문에 공격팀의 득점력 차이로 인한 왜곡 가능성
2) 끝내기 승리로 인해 이닝이 완료되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3) 경기 후반 극단적인 스몰볼 전략으로 평균적인 경우와 득점환경이 달라지기 때문에
득점은 3.3배 득점확율은 2.8배 증가
전체 9194 이닝 중 선두타자가 출루한 경우는 3422회 입니다. 전체 이닝당 평균득점은 0.64점이고 선두타자가 출루했던 이닝의 평균득점은 1.14점입니다. 선두타자가 출루하지 못한 이닝의 평균득점은 0.35점입니다.
선두타자가 출루할 경우 평균보다 77% 더 많은 득점을 했고 출루하지 못한 경우와 비교하면 3.3배 더 많은 득점을 합니다.
1점 이상 득점한 경우 즉 득점확율로 보면, 시즌 전체의 이닝당 득점확율은 32.5% 입니다. 반면 선두타자가 출루할 경우 득점확율은 54.8%로 올라갑니다. 출루하지 못한 경우의 득점확율은 19.3% 이고 따라서 선두타자 출루는 평균보다 1.68배, 출루하지 못한 경우보다 2.84배 득점확율이 높습니다.
선두타자가 2루 이상의 스코어링 포지션으로 진루했을 경우는 더 높아집니다. 이닝당 득점은 1.39점으로 출루하지 못한 경우보다 4배 높아지고 득점확율은 76.2% 로 3.9배 높아집니다.
요컨데, 선두타자 출루는 그 자체로 다득점이나 득점확율이나 모두 공격팀에게 아주 많이 유리합니다. 14시즌의 경우 리그평균 선두타자 출루비율은 37.2% 입니다. 대략 3번 중 한번은 선두타자가 출루하는 셈입니다.
팀별로 선두타자 출루비율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표 오른쪽에 참고로 붙인 칼럼은, 14시즌 9개팀의 이닝당 평균득점입니다.
** 이닝당 평균득점의 팀 순위는 경기당 득점의 순위와는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팀마다 공격이닝의 횟수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들어 경기당 득점으로는 엘지트윈스가 기아보다 순위가 높지만 이닝당 득점에서는 반대입니다. 기아는 공격이닝이 좀 적었고 트윈스는 연장승부 등으로 인해 공격이닝의 수가 많았습니다.
평균득점2위 삼성은 선두타자 출루비율에서 8위
시즌 전체로 가장 득점력이 높았던 넥센은 선두타자 출루비율에서도 1위입니다. 하지만 이닝당 득점에서 2위 3위인 삼성과 NC는 선두타자 출루비율이 가장 낮은 2팀에 속합니다. 기아는 선두타자 출루비율이 38.0%로 전체 3위이지만 결과적으로 이닝당 득점순위는 7위에 머물고 있습니다. 득점 최하위인 한화도 선두타자 출루비율은 37.2%로 9개팀 중 중위권 정도는 됩니다.
요컨데, 선두타자 출루비율과 팀의 득점력은 별로 상관관계가 없었습니다. 피어슨상관계수로 확인해봐도 선두타자 출루비율과 이닝당 득점 사이의 관계는 0.21로 매우 낮습니다.
그런데, 공격팀 입장이 아니라 수비팀 입장에서 보면 약간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다음은 14시즌 선두타자 출루허용에 관한 팀 순위입니다.
선두타자출루를 가장 적게 허용한 팀은 34.9%로 엘지트윈스입니다. 그리고 이닝당 실점은 0.56점으로 리그3위입니다. 공격팀 입장에서 선두타자 출루를 볼 경우, 팀득점력과 별로 상관관계를 찾아볼 수 없었는데 수비팀 입장에서 볼 경우, 선두타자의 출루허용은 실점억제력과 대체로 일치합니다.
선두타자 출루는 공격팀의 능력이 아니라 수비팀의 실수?
실점이 적었던 팀인 엘지트윈스, NC, 삼성 등은 대체로 선두타자 출루허용이 적었고 반대로 팀실점이 많았던 기아, SK, 한화는 선두타자 출루허용에서도 최하위에 있습니다. 피어슨 상관계수를 구하면 0.871로 매우 높습니다. (피어슨 상관계수는 -1에서 1 사이의 값으로 0.7 이상이면 높은 상관관계, 1.0 이면 100% 상관관계를 뜻함)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선두타자 출루는 공격팀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수비팀이 허용하는 것 같습니다. 공격력이 강한 팀이라고 해서 더 자주 선두타자 출루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투수/수비력이 약한 팀은 더 자주 선두타자 출루를 허용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더 많은 실점을 합니다.
결국 선두타자 출루가 공격팀에 유리한 조건이긴 하지만 그것은 공격팀의 능력이라기 보다는 수비팀의 실수로 보는게 타당할 거 같습니다.
(2015년 5월 26일 추가함 - 글을 써놓고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 싶어 몇가지 분석 후 아래와 같이 수정합니다)
이런 통계는, "선두타자 출루를 하는 타자를 딱히 칭찬할 필요는 없지만 선두타자 출루를 허용하는 투수는 좀 까여도 된다"라는 암묵적 근거가 될 수 있을까요?
선두타자 출루는 득점에 확실히 영향을 줍니다. 선두타자가 출루한 이닝은 그렇지 않은 이닝보다 3.3배나 많은 득점이 만들어집니다. 이 부분은 공격측 입장이서나 수비측 입장에서나 같습니다. 그런데, 공격측 입장에서 선두타자가 더 자주 출루한 팀이 더 많은 득점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수비측 입장에서는 선두타자 출루를 더 많이 허용한 팀이 더 많이 실점했습니다.
그렇다면 "선두타자의 출루는 공격측의 능력이라기 보다 수비측의 실수로 봐야 한다"고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더 검토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공격측이든 수비측이든 "출루율/피출루율은 득점/실점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 이미 확실하게 검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더 합당한 논점은, 수비측 기준으로는 평균 출루허용과 선두타자 출루허용이 대체로 일치하는데 (corr.=0.86) 공격측 기준으로 평균출루와 선두타자 출루가 일치하지 않는(corr.=0.12) 이유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환타지와 통계 사이
추측해본다면, 괴리의 정체는 아마 "타순"일 것 같습니다. 이닝 중간의 투수교체를 제외하면 수비측의 경우 이닝의 첫타석이나 이닝의 다른 타석이나 같은 투수와 같은 야수들이 타자를 상대합니다. 반면 공격측의 경우 이닝마다 몇가지 요인으로 결정된 9명 중 한명이 타자가 첫타석에 섭니다.
따라서 수비측은 팀의 평균적인 출루허용과 선두타자의 출루허용이 대체로 일치하지만 공격측의 경우는 불균등한 출루능력을 가진 9명 중의 한명이 타석에 서기 때문에 팀의 출루율과 선두타자의 출루율이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이 휠씬 큽니다.
*** 이를 확인하려면, 분석기간인 14시즌 이닝 첫타석에 등장했던 타자의 시즌 출루율과 그 팀의 선두타자 출루율을 비교해보면 될겁니다. (여기까지는 다음 기회에 해보겠습니다)
그렇다면 (=검증을 미뤄두긴 했지만 마지막의 가설이 맞다면) 선두타자의 출루나, 선두타자의 출루허용이 출루 그 자체가 가진 중요성과 의미 이상의 해석을 필요로 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저 출루를 잘 하는 팀은 이닝 첫타석에서도 그런 것이고, 출루허용이 많으면 이닝의 첫타자를 상대할 때도 비슷한 것일테죠.
우리는 야구라는 경기 안에 있는 이런저런 결정적이고 전략적인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즐깁니다. 누구누구는 득점권에 특별히 더 믿음이 간다거나, 누구누구는 위기의 순간에 더 집중력을 발휘한다거나...
선두타자의 출루는 몇가지 이유로 결정적이고 전략적인 순간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같은 출루라도 이왕이면 이닝 첫타석에서 해낼 때 3.3배의 득점 가능성을 열어주기 때문입니다. 방송해설가들도 늘 이야기합니다. 첫타자 승부가 중요하다고.
그러다보면 마침 그 순간, 더 전략적이고 더 결정적인 그 순간을 잘 넘기지 못하는(것처럼 보이는) 선수들에 대해 플레이에 대해 야구에 관한 무능력 이상의 비난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자꾸 생기곤 합니다.
야구는 멘탈게임이라는 오랜 격언도 이런 성향에 일조합니다. 능력 이상의 혹은 이하의 플레이를 해내는 멘탈리티를 논하는 것이야 말로 야구라는 경기의 매력을 가장 잘 즐기는 태도처럼 생각하게 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그런 면이 없다고 부정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많은 것을 그런 방식으로 해석하고 평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더구나 일부러든 몰라서든 "통계"라는 도구로 지나친 "멘탈주의"를 지지하려고 하는 것은 특별히 더 부적절하거나 위험한 것일 수 있습니다. 클러치히팅에 대한 빌 제임스의 생각은 적당한 조언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클러치 히팅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은 한가지 이유는 스포츠 이벤트를 한낱 인격테스트로 간주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자니 베이스볼이 형편없는 클러치 히터라는 글을 쓴다면, 그 글은 자니 베이스볼이 용기 없는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나는 어떤 선수든 간에 확률데이터의 결과로서 그 사람의 인격을 조롱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리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영웅만들기 같은 저널리즘의 왜곡, 스포츠가 경기의 중요한 순간들마다 성공을 위한 강인함과 용기를 깨달으며 깊은 내면으로부터 진심으로 노력하여 성취하는 선수들의 인격테스트라고 믿게끔 강요하는 왜곡들이 있다.
나는 거기에 동참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데이터와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를 볼 뿐이며 운동선수들의 인격에 관한 어떠한 판단에도 가까워 질 뜻이 없다. 어쩌면 스포츠 토크쇼 진행자들은 그것이 편할지도 모르겠으나, 그건 그들의 직업이지 내 직업이 아니다. 이 논쟁은 오랫동안 혼란스럽게 계속될 것이며, 나의 유일한 목표는 이것을 조금이라도 명확하게 정리하는 것이다.
- 2007년 11월 SI에 소개된 빌 베임스의 글 Mr. Clutch"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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