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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의 저주와 107년을 기다린 시카고 컵스의 팬들, They Believe It's Gonna Happen.

by 토아일당 2015. 6. 10.


야구팬의 흔한 드립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신은 OO에게 최고의 팬을 주었지만 동시에 OO에게는 최악의 팀을 주었다."


엘지트윈스는 90년대 이후 리그에서 가장 열정적이고 충성스러운 팬을 가진 팀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2013년까지 가장 오랬동안 가을야구에 초대받지 못했던 팀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프로스포츠팀의 팬들 중 세상에서 누가 가장 불행한가 대회를 연다면 압도적인 우승후보로  꼽여야할 이들이 있습니다.  MLB 시카고컵스의 팬들입니다.  시카고컵스가 마지막으로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것은 1909년이고 MLB의 어떤 팀도 그렇게 오랬동안 우승 없는 시간을 보낸 적은 없습니다.  야구 뿐 아니라 미국의 4대 프로스포츠 전체로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106년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올해 107년째 우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들에게는 “저주스러운” 수없는 장면들이 있어왔습니다.

1908년과 1909년 월드시리즈를 2연패한 이후 컵스는 1945년까지 7번이나 내셔널리그 정상에 올랐지만 월드시리즈에서만은 번번히 고배를 들어야 했습니다.  


누가 컵스의 팬들만큼 불행할 수 있을까?


1945년 10월 15일 광적인 팬 빌리 사이아니스는 애완염소 머피를 데리고 리글리필드를 찾았다가 악취 때문에 입장을 거부당한 후 “컵스는 이번 시리즈에서 질 것이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는 악담을 퍼부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보스턴 레드삭스 버전 “밤비노의 저주”와 함께 MLB 양대 괴담인 “염소의 저주” 기원이 됩니다.


오랜 침체를 겪은 후 1969년 후반기 한때 컵스는 2위를 17.5경기차로 앞서며 월드시리즈 진출이 기정사실처럼 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9월10일 메츠와의 원정경기 도중 검은 고양이가 그라운드를 가로질러가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고 그 경기부터 믿을 수 없는 슬럼프에 빠진 컵스는 시리즈 티겟을 메츠에게 넘겨주었고 메츠는 그 시리즈에서 볼티모어를 4승1패로 꺽고 창단 첫 월드시리즈 우승을 거둡니다.


2003년에는 월드시리즈 문턱에서 또다른 좌절을 겪습니다.  플로리다와 맞선 NL챔피언쉽시리즈에서 컵스는 3승2패로 앞서며 6차전을 맞았고 8회초 1사, 아웃카운트를 5개 남긴 상태에서 3-0으로 리드하고 있었습니다.  정규리그 18승을 거둔 극강의 에이스 마크 프라이어가 절호의 피칭을 하고 있던 터라 팬들이 승리를 확신하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그런데 파울지역의 펜스 근처의 뜬공을 좌익수가 잡기 직전에 어떤 몰지각한 팬이 공을 건드리며 파울처리되었고 그 때문인지 아직 빅리그 2년차에 불과했던 프라이어는 갑자기 난조에 빠집니다.  그것도 모자라 병살기회의 어이없는 실책이 뒤를 이었고 순식간에 경기는 3-8로 기울어져 결국 패배합니다.  


마지막 7차전 역시 5-3으로 이기던 경기를 6-9로 역전당하며 월드시리즈 진출이 좌절되었고 컵스팬의 염장이라도 지르듯, 그들 대신 월드시리즈에 올라간 플로리아 말린즈는 양키즈를 상대로 4승2패 우승을 차지합니다.   



그래도 꽤 오랬동안 컵스의 팬들은 그나마 덜 외로울 수 있었습니다.  누가 더 불행한지를 두고 경쟁하는게 참 모양빠지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들 곁에는 비슷하게 오랜시간 동안 월드리시리즈 우승을 기다려야 했던 보스턴 레드삭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004년 레드삭스가 86년만의 우승을 거두며 밤비노의 저주를 끊어내자 오직 컵스팬들만 영원처럼 오랜 암흑기 속에 혼자 남겨지게 되었습니다.


슬플 수도 있는 그러나 아름다운 이야기


[We Believe -Chicago and its Cubs] 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만들어진 것은 2008년이었습니다.  컵스가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지 딱 100년째가 되는 해였습니다.  한 시즌 내내 팀과 함께 움직이며 만들어진 이 영화에는 컵스 팬인 많은 셀러브리티들도 등장합니다.  그중에는 스매싱 펌킨스의 리더 빌리 코건, 미드 [크리미널 마인드]의 조 맨테나, 배우 데니스 프란쯔, 보니 헌트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플레이보이 그룹의 회장 휴 헤프너도 깜짝 등장합니다.  (이들 중 몇몇은 아래 붙이는 트레일러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팀의 레전드들 역시 대거 출연합니다.  MLB 역대 최고의 유격수로 꼽히는 미스터Cubs 어니 뱅크스를 포함해서 론 산토, 빌리 윌리엄스, 이안 샌드버그 같은 이들입니다.   라이언 뎀스터, 마크 데로사, 후쿠도메 코스케 같은 (당시) 현역 플레이어 역시 참여했습니다.



촬영 내내, "만약 시카고 컵스가 100년째 되는 2008년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거머쥔다면 흥행은 물론이고 오스카상 수상이 확실하다"는 류의 각종 “시”레발이 난무했었다고 하는데 컵스의 시즌은  헐리우드 식의 해피엔딩은 아니었습니다.  NL 디비젼 시리즈에서 LA다저스에 스윕패를 당하며 그들의 100년째 이야기도 막을 내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감독 존 쉐인필드는  하이랜드파크에서 어린시절을 보냈고  노스웨스턴대를 졸업한 시카고 출신입니다.   그는 그의 고향팀에 대해 뭔가 이야기하고 싶었다고도 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This documentary film is not going be a 100-year history of the Cubs’ triumphs and tragedies. We will explore and reveal the character, spirit and soul of the city and why its people have rooted for this team so passionately and for so long”

 

사실 이 영화는 컵스라는 야구팀의 이야기라기 보다 컵스를 사랑했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컵스의 팬들 이야기입니다.  또 100년 동안의 지독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팀을 믿고 응원하며 열정을 다하고 있는 기이한 사람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꼬마들은 그들이 고추를 달고 태어났기 때문에 당연히 남자아이인 것처럼, 오랜 컵스팬 아빠를 따라 야구장에 가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고 리글리필드에서 만난 아가씨와 사랑이 빠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이를 낳아 컵스팬으로 만들고 환호와 한숨을 나누며 또 늙어갑니다.  그들은 평생 단 한번도 팀의 우승장면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컵스의 팬이고 또 그 아이들의 아이들 역시 새로운 컵스의 팬이 되겠죠.  


컵스의 야구는 인생과 같다 


쉐인필드는 그래서 이 영화를 야구나 야구팀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아니라 2008년 시즌을 배경으로 하는 컵스라는 팀과 컵스의 팬들 사이의 연애담(love affair)라고 말합니다.   


I think we'll have something which is very applicable for everyone who loves the team and the city and for everyone who loves baseball," Smith said. "You don't have to love the team but just what the Cubs represent. This is analogous to life. 

제가 생각하기에 이것은 자신의 팀과 도시, 그리고 야구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됩니다.  이것은 삶에 관한 은유입니다. 


컵스의 팬들은 실제로 그렇게 느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We Believe]에는 많은 컵스 팬들이 등장해서 시카고컵스와 야구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 자신에 대해 말합니다.  


“컵스가 겪는 일은 우리가 살며 겪어가는 것들과 마찬가지입니다. 오르막이 있고 또 내리막이 있고 그런 것이 삶입니다.  그리고 또 어느새 모든 것은 좋아지기도 합니다.”


“컵스를 보며 낙담하고 좌절합니다.  하지만 다음날 생각합니다.  이건 그냥 야구일 뿐이야.(It is just baseball.)  세상에는 우리가 상대해야 할 더 큰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무리를 당연히 이렇습니다.  “Go Cubs Go”


GO CUBS GO!!!!!


올해 2015년은 시카고컵스에게 약간 다른 맥락에서도 의미심장한 시즌입니다.   그것은 80년대의 기념비적인 타임머신 영화 [백투더퓨처2]에서 유래합니다.  1985년에 살고 있던 주인공 맥플라이는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뒤의 세계로 가게 됩니다.  그는 시카고 시내에 도착했는데 건물 위 전광판에 컵스가 마이애미를 꺽고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는 문구가 뜹니다.  미래의 가장 황당하고 놀랄만한 사건으로 등장해야 할 만큼 컵스의 저주는 깊고 아픈 것이었나 봅니다.  왠지 응답하라1994를 다시 보고 싶은 충동이… 


*** 올 시즌 6월10일 현재 시카고 컵스는 30승 26패로 NL중부지구 2위에 올라 있습니다. 


감독 쉐인버그는 ”이 다큐멘터리는 단 한순간이라도 자신의 팀을 사랑했던 경험을 가진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이라 합니다.   불과 3년전까지 11년간의 지독한 암흑기를 겪고 견디며 숫한 패배와 패배보다 더 싫은 조롱을 이겨온 트윈스팬들에게라면 여북할까요. 


그런 이유로 이 글의 마무리 역시 영화와 같습니다.

“Go Twins Go!!!”




[We Believe] 트레일러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