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의 매력 중 상당부분이 “전략게임”에 있는 바, 내 맘대로 감독 노릇하며 즐기는 라인업 놀이야 말로 “팬질” 중의 “팬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거기에 방대한 야구통계에 기반한 각종 데이터를 첨가하면 금상첨화라 할 수 있겠네요.
세이버메트릭스 또는 최근의 야구통계를 고려했을 때, 1번부터 9번까지의 최적 라인업에 대한 통계적 기준에 대해서입니다.
리드오프 - 닥치고 출루
“1번타자는 단지 1회에 처음 등장하는 타자일 뿐이다.” 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1번타자는 다른 타순의 타자들에 비해 통계적으로 휠씬 더 많이 이닝 선두타자로 나오고 휠씬 더 자주 주자없음 타석에 섭니다. 전체 이닝 중 1번타자가 선두타자로 나오는 비율은 21% 정도이고 다른 타자들은 평균 10% 미만입니다.
[무사 주자없음] 조건에서 타석에 서는 빈도가 평균보다 80% 이상 많고 2번타자와 비교하면 2.4배 많습니다. [모든 주자없음] 타석에 서는 빈도 역시 평균보다 40% 정도 많습니다. .
그래서 1번타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출루]입니다. 그런데 다른 타순이라도 [출루]가 중요하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1번타자의 출루율이 특히 더 중요한 통계적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이닝 선두타자로 나오는 빈도가 높기 때문입니다. 팀에게 똑같은 횟수의 출루기회가 생겨도 이왕이면 이닝 선두타자가 출루하는 쪽이 더 많이 득점하는 방법입니다. 14시즌에 선두타자가 출루한 이닝의 득점은 그렇지 못한 이닝보다 3.3배 많았고 득점확율도 2.8배 높았습니다. 따라서 같은 출루율이라도 이닝 선두타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1번타자의 출루율이 더 가치가 높습니다.
반면 타율과 장타율은 반대입니다. 주자가 없는 타석에 설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득점가치(RunValue) 기준으로 1루타는 볼넷보다 1.3배 가치가 높지만 주자가 없을 때는 차이가 없습니다. 선행주자 진루효과가 없고 [주자1루]라는 결과가 똑같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타율과 장타율이 높은 1번타자를 마다할 이유는 없지만, 그런 타자가 있다면 다른 타순에 두는게 더 효율적입니다.
전통적인 시각에서는, 도루가 많고 타율이 높은 컨택터를 1번타자에 두라고 하지만 이것은 낭비입니다. 도루의 가치도, 단타의 가치도 제일 깍아먹기 쉬운 전략입니다. 뒤에 나오는 타자들이 대체로 장타력을 가졌다고 보면 도루의 가치가 반감되는데다가 무엇보다 고타율의 효율성이 가장 떨어지는 자리입니다.
물론, 뒤에 나오는 타자들의 장타력이 변변치 않다면 도루능력은 아주 가치있는 옵션이 될 수는 있습니다.
2번타자 - 종합적인 능력이 다 중요. 팀내 득점생산력 2-3위 선수 중 하나
“작전수행능력”을 중시하는 2번타자 모델은 고교야구처럼 장타율이 아주 낮은 환경에서 비롯된 유산입니다.
2번타자에게 번트나 치고달리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웃카운트 하나를 주고 선행주자를 진루시키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타고성향이 강하고 장타율이 높은 야구에서는 아웃카운트의 가치는 높아지고 진루의 가치는 낮아집니다. 이런 득점환경에서는 아웃카운트 하나를 주고 주자를 한베이스 진루시키는 플레이는 하면 할 수록 팀에 손해가 됩니다.
장타가 없는 야구, 즉 안타 3개가 있어야 1득점을 하는 환경에서는, "아웃카운트"와 "진루"를 바꿔서 안타 2개로 1득점을 만드는게 고급야구였지만 이제 아닙니다.
출루를 잘하는 선수가 리드오프에 있고 장타력이 좋은 선수가 345번에 있다면 아웃당하지 않는 능력 즉 출루율과 멀리치는 능력 즉 장타율이 둘 다 중요합니다. 그리고 2번타자는 4번타자 만큼 좋은 득점기회에 타석에 섭니다.
해서 그냥 “잘치는 타자”가 2번을 맡아야 합니다. 팀에서 적어도 2번째나 3번째 타자가 맡는게 좋습니다. MLB의 최근 성향도 이와 비슷합니다. 평균적으로 3번>4번>2번 순서로 강한 타자들이 배치됩니다. 전체 평균으로 보면 OPS 는 4번타자가 더 높고 wOBA는 2번타자 살짝 더 높습니다. 비슷한 생산력을 가졌지만 2번은 출루에서 4번은 장타에서 장점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KBO의 경우도 예전과는 좀 달라졌지만 여전히 2번타자는 약합니다. 05_11 기간에는 9명 중 7번째 타자가 2번을 맡았는데, 14시즌 통계로는 그나마 6번째 타자가 맡고 있었습니다. (대신 5번째 타자와 비슷한 정도의 득점생산력 수준이긴 합니다.)
3번타자 - 팀내 No1타자. 2루타가 많은 중장거리형도 좋음
타순에 대한 통계는 좀 상대적입니다. 빌제임스 이후 세이버메트릭스의 한 시대를 일통했던 톰 탱고가 그의 책 the Book에서 타순에 대해 말했는데 그때는 3번타자 앞에는 의외로 찬스가 안걸리기 때문에 전통적인 시각처럼 팀내 베스트 애버리지 히터를 두는 것이 낭비라는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통계는 번트나 대는 2번타자를 앞에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팀내 탑3 타자들을 2번에 두게 되면서부터 3번타자의 밥상은 많이 풍성해졌고 그럭저럭 좋은 득점기회에 타석에 서게 됩니다. KBO 기준에서도 05_11 기간에는 3번타자 앞의 득점기회가 평균이하였지만 14시즌에는 그래도 평균 이상이었습니다. 주자있는 타석의 비율로는 36%로 가장 높았습니다. (4번타자가 그 다음인데 35%이고 가장 낮은 1번타자는 24%입니다)
잘치는 타자가 한번이라도 더 타석에 서는게 유리하다는 것도 No.1 타자를 4번이 아닌 3번에 두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입니다. 다만 실제 타석수가 그리 많이 차이나지는 않습니다. KBO14 기준으로 3번타자의 타석수는 4번타자보다 2.2% 많았습니다. 대신 감독이 의도한 최선의 타순으로 임할 수 있는 1회 공격의 잇점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맞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1회는 이닝 당 득점이 가장 많습니다.
2루타를 많이 치는 타자라면 3번에 두는게 좋습니다. 야구에서 2루타의 비중은 홈런보다 큽니다. 경기의 득점 중 홈런으로 만들어지는 점수가 전체의 12%인데, 2루타가 만드는 점수는 16%를 차지합니다.(KBO05-14, 타격이벤트별 득점가치 기준) 홈런 1개의 가치는 물론 2루타보다 휠씬 크지만 대신 2루타는 좀더 자주 나오기 때문인데, 3번 타순은 2루타의 효율성이 가장 높아지는 위치입니다.
4번타자 - 장타율, 이왕이면 홈런
장타율이 가장 중요합니다. 출루가 모든 타자에게 중요하듯이, 어느 타순이든 장타력은 다다익선이지만 같은 장타력이라면 4번에 있을 때 효율성이 더 높습니다. 주자가 많이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홈런의 가치가 가장 높은 타순도 4번입니다. (그 다음이 2번타자의 홈런입니다.) 앞에 주자를 많이 두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뒤에 있는 타자들이 점점 약해지기 때문에도 그렇습니다. 해서 비슷한 장타율을 가졌지만 하나는 중장거리형이고 다른 하나가 거포형일 때 이 둘을 3번과 4번에 두면 최고의 퍼포먼스를 냅니다. 만약 "둘다" 있다면…
5번타자 - 의외로 컨택과 타율
강한 2번타자가 강조되면서 존재감이 가장 희미해진 슬롯입니다. 예전에는 팀내 No.3 타자를 두고 1번과 5번이 다퉜다면 요즘은 3번>4번>2번>1번 까지가 거의 고정이고 5번타자는 보통 말 그대로 팀내 No.5 타자가 맡는 경우가 많습니다. (MLB의 경우)
또 전통적인 관점에서는 3번은 컨택, 5번은 장타라는 생각이 강했는데, 톰 탱고 같은 세이버메트리션의 의견은 3번이 장타, 5번이 컨택인 것이 더 효과적이라 말합니다. 그렇다고 장타율이 높은 타자와 컨택형 타자가 있을 때 컨택형 5번타자가 더 좋다는 뜻은 아닙니다. 상대적으로 장타율은 5번보다 3번에서 더 효과적이기 때문에 팀에 장타형과 컨택형이 각각 있다면 컨택형을 5번에 두고 장타형은 3번에 올리는게 더 낫다는 뜻입니다.
5번타자에 대한 태도는 2번타자에 대한 것만큼, 전통적 스타일과 세이버메트릭스 스타일에서 대비되는 부분입니다. 강한 2번타자를 포함해서 최대한 앞부분에 화력을 집중하는 방식에서 5번타자는 덜 중요합니다. 반면 2번 타순에서 오히려 한번 쉬어가고 3번-4번이 주자 모으는 역할을 겸하는 고전적 방식에서는 클린업 역할을 가장 결정적으로 요구받는게 5번타자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KBO14 시즌의 경우, 타석에 섰을 때 가장 많은 주자라 루상에 있던 슬롯이 5번입니다. 0.77명의 주자가 있었는데 4번타자가 그 다음으로 0.75명이었습니다. (역시 가장 적은 것은 1번타자로 주자 0.53명입니다)
따라서 장타보다 컨택을 우선하는 5번타자의 모델은, 1번부터 4번까지를 클래식한 방식이 아니라 세이버메트릭스 방식으로 구성했을 때를 전제로 합니다.
6번타자 - 발빠른 뜬금포? 그런 타자가 있다면
약간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도루능력을 가장 효과적으로 써먹을 수 있는 슬롯이 6번입니다. 도루의 가치는 이어지는 타자들의 장타율이 높을수록 낮아지고 낮을수록 높아집니다. 그런데 1,2번 뒤에는 장타율이 높은 타자가 있고 6번 뒤에는 반대입니다. 따라서 도루로 한베이스 더 가는 플레이의 효율성은 리드오프보다 6번타자에게 더 높습니다.
볼넷을 잘 고르는 타자도 6번 슬롯에서는 영양가가 없습니다. 6번타자의 볼넷은, 1번 2번타자의 볼넷과 비교할 때 득점가치(Run Value)에서 절반도 안됩니다.
출루란, 주자로 나가서 득점을 노리는 것이지만, “아웃당하지 않음”으로 다음타자가 공격을 이어갈 기회를 얻었다는 의미도 그만큼 큽니다. 그런데 “아웃당하지 않음”의 가치는 뒤에 나올 타자의 능력에 따라 달라집니다. 다음 타자가 강하면 “아웃당하지 않음”의 가치는 높아지고 약하면 반대입니다. 그런데 6번 타자 뒤에는 팀에서 제일 약한 타자 3명이 나옵니다.
이런 이유로 진루 없는 출루로서 “볼넷”의 가치는 1번,2번 타순에서 높고 4번 타순에서부터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해서 6번타자에 최저를 찍습니다.
장타는 반대인데, 앞에 강한 타자들이 있을 수록 그 타순에서 장타의 가치가 높아집니다. 1루타의 가치가 가장 낮은 타순도 6번입니다. 똑딱거려봐야 뒤에 나올 타자들이 결국 세번째 아웃카운트를 빼앗기고 잔루만 남길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따라서 전체적인 타격능력이 상위타선에 둘 정도는 아니지만, 도루능력이 있고 가끔 뜬금포를 쳐줄 수 있는 준족의 선풍기가 하나 있다면 6번에 박아두십시요.
789번 - 큰 의미 없음. 다만 7번은 장타, 9번은 출루가 좀더 중요.
크게 의미 없습니다. 보통의 경우라면 팀내 최하의 3명이 가진 타격능력이 크게 차이나기 어렵기 때문에도 그렇지만, 상위타순과 달리 이닝에 따라 타석에 설 때의 상황이 통계적으로 일정한 패턴이 생기기 어려운 이유도 큽니다. 특징이 희미하다는 뜻입니다.
그중에서 나눈다면, 출루율이 좀더 나은 타자를 9번에 두고, 그나마 장타력이 좀 나은 타자를 7번에 두면 됩니다. 7번은 혹시 모를 이삭줍기 로또로 쓰고 9번은 가끔이라도 출루했을 때 1번으로 꺽이는 상위타선에 빅이닝 찬스를 주는데 도움이 됩니다.
실제로, 대량득점을 하는 이닝은 하위타선에서부터 친스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9번타자가 강한 팀이 빅이닝을 잘 만듭니다. (물론 괜찮은 타자를 9번에 둘만큼 타선이 풍족했기 때문이겠지만)
MLB 내셔널리그에서는 투수가 타석에 서기 때문에 그를 전통적인 방식처럼 9번에 둘거냐 아니면 8번에 둘거냐로 논쟁이 있었는데 그것은 투수와 나머지 하위타자 사이에 상당한 격차가 있을 때 의미있는 논쟁이고 비슷비슷한 수준의 789번 타자일 경우 큰 차이가 나기 어렵습니다.
타선의 짜임새란?
타선의 짜임새란게 뭔지는 좀 어려운 문제입니다. 다만 그게 꼭 발빠른 리드오프가 앞에서 출루하고 잘치는 클린업이 불러들인다라고만 생각할 일은 아닙니다. 2번은 어떤 타자여야 하고 5번은 어떤 타자여야 한다가 아니라, 거꾸로 팀내에 이런 저런 성향과 특징을 가진 타자들이 있을 때, 그들이 가진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타순 위치가 어디냐를 보는게 “타순의 짜임새”에 관한 더 맞는 발상입니다.
팀에 20홈런+ 거북이만 드글드글하고 발빠튼 리드오프도 노련한 번터도 없다고 탄식하는 상대팀 감독이 있다면, 그가 앞으로도 쭉 “발만 빠른” 1번타자와 “번트만 잘대는” 2번타자를 배팅오더에 써넣는 행운이 계속되길 기쁜 마음으로 빌면 됩니다.
그렇다고 (수비위치 고려했을 때) 팀내 OPS 순서로 9번째 타자까지로 타순을 꾸리는게 맞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들면 장타율은 1번에서 낭비되고 볼넷은 6번에서 낭비됩니다. 거포 앞에서 도루능력은 낭비됩니다. 10번째나 11번째 타자라도 그가 가진 능력이 극대화될 수 있는 타순에 놓여지면 결과적인 득점생산성은 8번째나 9번째 타자보다 높아질 수 있습니다.
기본적인 원칙은
첫째, 출루율은 뒤 타자가 강할 때 더 효과적이다.
둘째, 장타율은 앞 타자가 강할 때 더 효과적이다.
셋째, 타율(단타 중심)은 잘치는 타자들 덩어리의 제일 뒷부분(예를들어 5번타순)에 둘 때 더 효과적이다.
넷째, 도루능력은 뒤 타자의 장타율이 낮을 때 더 효과적이다. 다만 도루능력은 다른 공격능력에 비해 덜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정도가 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장타 없이 볼넷 출루가 많은 4번타자에게 아쉬움을 느끼는 건 나름 통계적인 근거가 있습니다. 물론 그 원망을 받을 대상은 출루한 4번타자가 아니라 뒤에 못치는 다른 타자여야 하겠지만요.
이밖에도 수없이 많은 디테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같은 타율이라도 땅볼타구가 많으면 주자없는 상황이 많은 타순에 두는게 좋습니다. 추가진루 기회와 병살타 회피에 도움이 됩니다. 센터라인 중심으로 오른쪽 타구를 많이 날리는 타자라면 주자1루 상황이 많은 타순에 둘 경우 타율이 높아집니다. 주자가 1루에 있으면 1-2루간 타구가 안타가 될 확율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주루능력은 중요하지 않은가?
단순히 도루를 많이 하는 문제가 아니라, 추가진루를 만들 수 있는 주루능력이 얼마나 중요하며 어떻게 고려되어야 하느냐는 좀 남은 숙제입니다. 세이버메트릭스 쪽에서도 이에 대해서는 딱히 명확한 결론은 없어보입니다.
다만, 주루능력이 생각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예를들어 주자2루를 스코어링포지션이라고 하지만 2사 상황이 아닌 경우, 단타에 2루주자가 득점하는 비율은 별로 높지 못합니다. 대략 50% 정도 밖에 안됩니다. 그런데 빠른 주자들의 경우 0아웃/1아웃 2루 주자일때 90% 이상의 득점성공률을 기록합니다. 14시즌의 경우 정수빈, 손아섭, 오지환, 김주찬, 전준우 이렇게 5명이 그에 해당되는데(정근우는 86% 성공율) 이렇게 만든 득점이 시즌 전체로 각 선수마다 10점-15점 정도 됩니다.
그들이 홈까지 들어오지 못하고 3루에 머물렀다 해도 다음 타자에 의해 득점했을 수 있지만, 타격이 약하고 잔루를 많이 남기는 팀들이라면 3루에서 멈춰야 했던 주자들이 끝내 들어오지 못하고 이닝을 마감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한 베이스 더 가는” 플레이로 생기는 차이가 작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최상급 주자라면 한 시즌에 0.5승 많으면 1승 정도까지 (도루 제외하고) 발로 만들어 낼지도 모릅니다.
홈런의 득점가치가 1.7점 정도이기 때문에 만약 발로 0.5승을 만들었다면 홈런 3개, 1승을 만들었다면 홈런 6개에 필적하는 가치입니다.
어쨌든 1번타자는 1회 선두타자로 등장하게 되어 있다.
라인업 위치에 따른 특징은, 관행과 느낌이 아니라 실제 통계에 근거했다는 의미에서 객관적이지만, 특정한 시기 감독들이 짜낸 타순에 의해 그 통계가 만들어졌다는 면에서 시대적이고 상대적입니다. 4번타자 앞에 주자가 많았던 것은 1,2,3번에 출루율이 높은 타자를 둔 특정한 전략의 결과이고 그래서 다른 관점이 지배하는 시기의 통계에서는 또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다 변하지는 않을겁니다. 시대가 달라지고 감독이 약을 먹어도 첫이닝 선두타자는 1번타자입니다. 야구가 경쟁인 한에, 약먹은 감독은 일자리를 잃을 것이고 살아남은 감독은 합리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1번타자는 출루율이 높을 것이고 그래서 기회를 잇는 2번타자의 생존능력과 진루능력은 역시 중요합니다. 야구의 규칙이 변하지 않는 한, 첫 이닝 공격에 3번타자는 무조건 타석에 섭니다. 이런 123번 다음에는 4번타자가 나올겁니다.
시기와 리그가 달라도 타순에 대한 기본적 효율성 원칙이 어느정도 보편적이라 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다 좋은데 우리 팀에는 장타율 높은 타자가 없다구요? 흔한 일입니다. 다들 그래요. 복받은 몇 개 팀만 빼고. 현대야구를 지배하는 것은 장타력이지만 그래도 스몰볼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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