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 2005년 이후 정규시즌 경기는 총 6736회다. 같은 기간 선수들과 팬들이 경험한 승리와 패배의 횟수도 같다. 승리는 늘 값지고 패배는 늘 아프지만 어느 한 승부도 같지않고 그 무게 역시 다 다르다.
9회말은 특별하다. 마지막 이닝이다. 야구 밖의 세상에서도 이 말을 ‘승부의 마지막 순간’이란 은유로 쓴다. 그런데 모든 경기에 9회말이 있지는 않다. 홈팀이 뒤지고 있을 때만 존재한다. 야구는 공격과 수비를 번갈아 하는 경기이기 때문에 9회말에 양 팀에게는 정해진 역할이 있다. 홈팀은 역전을 노리고 원정팀은 그대로 경기가 끝내려 한다.
플레이오프 1차전 9회말은 2-0 LG트윈스가 앞선 상태로 시작되었다. 6736번의 경기 중 9회말이 존재했던 경우는 3734번이다. 그중 원정팀이 2점차 앞선 경우는 534번이다. 이중 별다른 반전 없이 앞선 팀의 승리로 맺음된 경기는 486번이다. 동점 허용 후 무승부로 끝난 경우가 6번, 홈팀 역전승을 이뤄낸 경우가 42번이다. 통계적으로 역전 확률은 7.9%였던 셈이다. 하지만 어제 그런 일이 일어났다. 이런 승부의 무게는 특별하다. 게다가 가을이다.
‘9회말 2점차 역전’에 대한 통계를 분석하듯, 특정한 이닝, 아웃카운트, 주자위치일 때 그 경기의 최종승패를 분석하면 ‘그런 상황’에 해당하는 승리확률을 구할 수 있다. 이때 각각의 플레이가 이 승리 확률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하는 수치가 WPA(승리확률기여Win Probability Added)다. 이를 이용하면 한 경기의 시작과 끝 사이에서 승부의 추가 어떻게 움직여 왔는지 추적할 수도 있다.
6회가 끝날 때까지 경기는 팽팽했다. 4회말 나성범, 박민우의 연속안타로 무사 1,3루 기회를 잡았을 때 NC 승리확률 69%인 순간도 있었지만 득점없이 이닝이 종료되면서 다시 50:50 승부로 돌아갔다. NC가 좀더 많은 기회를 만들었지만 60% 근처의 승리확률이 최대였다.
7회초 히메네스의 선두타자 홈런으로 균형이 깨졌다. 이때 LG 승리확률이 67%. 이어진 7회말 1사 1,2루 위기를 병살유도로 막아낸 후 72%까지 높아졌다. 위기 다음 기회라는 흔한 말 처럼 8회초 정상호가 다시 선두타자 홈런을 때렸다. 승부가 완전히 기울어지는 치명타 처럼 보였다. LG 승리확률은 84%까지 높아졌다.
경기가 진행될수록 앞선 팀의 승리확률은 저절로 높아진다. 역전의 기회가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9회말이 시작될 때 홈팀 승리확률은 12%에 불과했다. 즉 원정팀 LG의 승리확률은 88%다.
좀더 정밀하게 계산한다면 LG의 유리함은 그 이상이었다. 위의 승리확률변화는 타고시즌이었던 올 시즌 경기당 5.6득점이 기준이다. 다득점 환경에서는 역전승부가 더 많다. 하지만 포스트시즌은 현재 투고성향이 강하다. 게다가 투수는 클로저 임정우다. 그의 시즌 ERA는 3.82점이다. 평균적인 상황보다 득점 가능성이 낮아져있다. 이것을 추가 변수로 반영하면 LG 승리확률은 92.5%로 계산된다.
하지만 NC의 타자들은 남아있던 7.5%를 살려냈다. 박민우가 무사 출루를 하며 +9.5% 이어진 권희동의 안타로 +16.1% 지석훈의 1타점 안타가 다시 +18.5% 승리확률을 높여갔다. 여기까지 스코어는 아직 2-1 로 NC가 뒤져있었지만 1,2루에 주자를 둔 상황의 통계적 예측은 56:44 NC 우세로 넘어온 상태였다.
바뀐 투수 김지용이 조영훈을 삼진으로 잡아내며 38:62 잠깐 LG가 우세를 뒤찾아오긴 했지만 이어진 대타 이호준의 적시타가 치명적이었다. 이날 경기에서 승리확률기여도가 가장 높았던 플레이였다. 그 한방이 팀의 승리확률 +44.6%를 끌어올렸다. 스코어는 이제 2-2 동점이지만 NC의 승리확률은 83.1%였다. 1사 1,3루의 기회가 가진 가능성 때문이다. 고의사구 후 용덕한의 안타로 경기는 끝났다.
승리확률은 1회가 시작될 때 양팀 똑같이 50%다. 승부가 결정되면 승리팀 100% 패배팀 0%가 된다. WPA라는 관점으로 보면 승리란 50%였던 팀의 승리확률을 100%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승리확률기여 +50%란 1승의 가치다.
물론 어느 한 선수 혼자 승리를 만들 수는 없다. 실점을 막으며 승부의 흐름을 붙잡아둔 투수와 수비의 역할이 있고 결정적 기회를 준비한 동료 타자들이 있었다. 다만 WPA +44.6%라는 숫자는 그 하나의 플레이가 얼마나 극적이었는지 표현하기에 충분하다.
NC다이노스 팀 역사상 승리확률기여 +44.6% 이상의 플레이는 지금까지 8번 있다(홈경기). 이들은 아마도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으로 기억되어 있을 것이다. 단, 모두 다 정규시즌에 나왔던 장면이다. 포스트시즌 경기에서 NC의 승리확률기여 최고는 2015년 10월19일 두산전, 1-0으로 뒤지던 8회말의 지석훈 1타점 2루타다. WPA +31.4%였다. 이젠 이호준의 동점적시타 WPA+44.6%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플레이오프 1차전 승리팀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할 확률은 81%(26번 중 21번)이라고 한다. NC다이노스는 결정적 우위에 서게 되었다. 하지만 야구는 알 수 없다. 9회말 2점 앞서던 팀이 역전패할 통계적 확률은 7.9%였다. 92:8의 승부가 뒤집어진 셈이다. 그에 비하면 1차전을 내주고도 이를 뒤집어 다음 라운드로 갈 확률 19%는 그보다 높다. 시리즈는 이제 시작이다.
2016 네이버 PS칼럼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540&aid=000000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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