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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경기가 그렇듯 엘지-넥센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도 여러 상황이 있었다. 도루 수비를 위해 2루 커버를 들어가다 역동작에 걸린  2루수 손주인은 뜬공 처리에 실패했고 그 틈을 파고든 고종욱의 질주가 선취점을 만들었다.  넥센의 포스트시즌 첫득점이었다. 엘지 타자들의 잘 맞은 타구 몇 개는 수비정면을 향했거나 호수비에 걸렸다. 승부처에 투입된 구원투수 윤지웅은 제 몫을 하지 못했고 반면 넥센의 타자들은 기회마다 집중력을 보였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조금 달리 흘러갔다 해도 승부가 달라졌을 것 같진 않다. 밴헤켄의 피칭은 그 모든 것을 압도하고 남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는 3피안타 1볼넷 1실점으로 상대의 공격을 억제하며 102개의 공으로 7.2이닝을 소화했다. 60%가 패스트볼이었고 30%가 스플리터 나머지는 간간히 섞어 던진 커브와 체인지업이다. 


그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

그는 2014년 20승 투수다. 올해 또 한명의 20승 투수가 나오긴 했지만 그때는 시즌 128경기였다. 일본에서의 실패가 있었지만 돌아온 밴헤켄은 여전히 위력적이었다. 12경기 선발로 나와 72이닝 ERA 3.38 을 기록했고 9이닝당 10.1개의 삼진, 볼넷 허용은 2.4개 뿐이다. 


준플 2차전의 모습도 그와 같았다. 2년 만에 다시 만난 엘지트윈스에게 밴헤켄은 악몽이었다. 그나마 쳐낸 3개의 안타 중 2개는 힘이 떨어지기 시작한 7회 이후에 나왔다.


궁금한 것은 그의 위력이 어디서 나오느냐라는 점이다. 그는 물론 절벽같은 스플리터를 갖고 있다. 하지만 보통 스플리터가 힘을 발휘하는 것은 그와 대비되는 다른 구종이 있는 경우다. 패스트볼 구속을 가지지 못한 투수가 스플리터로 재미를 보긴 쉽지 않다. 하지만 이날 밴헤켄의 패스트볼 평균구속은 138kmh에 불과했다.


물론 구속이 투수가 쓸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아니다. 무브먼트에 강점을 가진 경우도 있다. 밴헤켄이 던지는 패스트볼의 수직무브먼트(induced vertical movement 기준)는 45.5cm다. 공이 얼마나 떠오르는 움직임을 가졌는지 말해주는 이 지표에서 그는 KBO리그 평균인 42.7cm 보다 좀더 크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더 높이 더 멀리 

고려할 만한 또다른 요인은 릴리즈포인트다. 그는 큰 키를 활용한 높은 타점을 가졌다. 패스트볼 기준으로 203cm 높이에서 던진다. KBO리그의 왼손투수 평균 179cm와 비교하면 24cm 더 높다. 좌우각도도 더 크다. 마운드 중심선을 기준으로 77cm 옆에서 공이 나온다. KBO리그 왼손투수 평균은 56cm이다. 더 높은 곳에서 더 큰 각을 만들며 날아오는 공은 타자들에게 어려움을 주게 된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디셉션이다. 디셉션은 흔히 투수가 공을 숨겨서 나오는 변칙적 동작을 가리키곤 하지만 그에 앞서 투구의 타이밍이나 구종을 타자들이 쉽게 알아채지 못하게 하는 모든 기술을 포함한다.


그는 놀라울 정도로 일정한 릴리즈 포인트를 갖고 있다. 본래 수준급 투수들은 릴리즈포인트의 높이와 가로가 대체로 일정하다. 하지만 공을 홈플레이트 쪽으로 끌고 나와서 놓은 위치 ‘익스텐션extension’은 그렇게 되기 어렵다.  서로 다른 구종을 던질 때 투구 메카니즘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패스트볼의 익스텐션이 가장 길다. 즉 홈플레이트 쪽에 더 가까운 위치에서 공을 놓는다.  커브가 가장 뒤쪽이다. 투수마다 다르지만 보통은 패스트볼과 20-30cm 정도 차이가 생긴다. 스플리터와 패스트볼의 익스텐션 차이는 그 중간 정도다.  


두산의 보우덴은 KBO리그에서 스플리터를 주무기로 삼는 대표적 투수다. 그의 패스트볼과 스플리터 익스텐션 차이가 10cm 정도다. 그런데 밴헤켄은 놀랍게도 전혀 차이가 없다.  패스트볼 릴리즈 위치와 스플리터 릴리즈 위치가 완전히 일치한다. 더 놀라운 것은 커브와 체인지업의 릴리즈 위치 조차 패스트볼과 완전히 같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타자는 공이 자신이 앞에서 변화를 일으키기 전까지 구종을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구종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의 디셉션을 완성하는 요인은 하나 더 있다. 공이 손을 떠나는 각도다. 릴리즈앵글이라고 표현한다. 서로 다른 구종, 예를들어 패스트볼과 커브는 투수의 손을 떠나 홈플레이트를 통과하기까지 서로 다른 궤적을 그리며 날아온다. 커브는 회전의 힘으로 더 많이 낙하하기 때문에 투수의 손을 떠날 때는 좀더 높은 방향으로 쏘아진다. 지면에 대해 평행하게 그은 가상의 선을 기준하면 플러스 각도다. 반면 패스트볼은 마이너스 각도를 갖는다.  

 

구종에 따라, 투수에 따라 릴리즈앵글은 조금씩 다르다. KBO리그의 패스트볼 평균은 -1.78도다. 커브는 +1.72도다. 둘 사이에 3.5도 차이가 있다.  타자 입장에서 이런 정보를 활용해 좀더 빨리 구종을 판단하는 것이 타격기술이다. 밴헤켄은 그런데 커브의 릴리즈앵글이 +0.51도다. 리그평균보다 좀더 낮은 각도로 커브가 발사된다. 이는 패스트볼과 커브의 릴리즈앵글 차이가 더 작다는 뜻이다. 타자 입장에서 구종의 판단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밴헤켄은 릴리즈위치에서도, 공을 놓는 타이밍(익스텐션)에서도, 공이 손을 떠날 때의 각도에서도 리그의 그 어떤 투수보다 완벽하게 자신의 공을 감춘다. 자신에게 날아오는 공의 구종을 판단할 수 있는 시점이 늦어질 수록 타자는 어려움을 겪는 것이 당연하다. 게다가 그는 제구가 좋은 투수다. 기다리면 볼카운트가 불리해진다. 타자는 서두를 수 밖에 없고 투수는 투구수를 줄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분석에서 남는 의문에는 일본에서는 그럼 왜 실패했을까가 있다. 물론 알려진 바에 의하면 그의 몸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밴헤켄의 상성

키가 크고 타점이 높은 외국인 투수가 한국에서 유리한 이유는 ‘낯섦’ 때문이다. 높은 타점이 무조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보기는 어렵다. 투수의 성적과 릴리즈 높이는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다. 하지만 ‘낯선 릴리즈포인트’는 타자를 혼란시킬 수 있고 그것이 더 좋은 성적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런 점은 일본에서도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구질에서는 달랐을 수도 있다. 그는 패스트볼에서 KBO리그 평균보다보다 좀더 좋은 라이징무브먼트를 가지고 있다. 스플리터에서는 압도적으로 큰 낙차를 갖고 있다. 그런데 NPB의 야구에서는 아니다.


일본 투수들은 구속이 좀 느린 경우라도 라이징무브먼트가 강하다. 깨끗한 백스핀의 포심패스트볼을 전통적으로 선호하며 그런 쪽으로 잘 훈련되어 있다. 게다가 스플리터에 대해서라면 MLB에도 뒤지지 않는 투수가 많다. KBO에서는 특별했던 그의 무기가 NPB에서는 그렇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명암은 수준의 차이보다 ‘낯섦’의 차이에서 온 것이 아닐까.  


한두명의 사례로 다른 리그의 수준을 단정짓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괜찮은 메이저리그 경력을 가졌지만 KBO리그서 실패하는 투수도 있고 트리플A에서조차 평범했지만 KBO리그를 압도하는 선수도 있다. 돌아온 20승투수 밴헤켄을 보며 일본에서 그가 겪은 실패를 그리 중하게 여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리그를 넘나드는 선수들의 사례를 통해 야구에 관한 더 깊이있는 분석과 이해를 쫓는 것이 생산적이다.    


밴헤켄은 시즌 후반 넥센의 3위를 견고하게 지켜냈고 포스트시즌 첫경기를 내준 후 절실했던, 1승1패의 균형을 맞추는 승리를 팀에게 선물했다. 리그의 타자들과 다른 팀 팬들에게는 끔찍한 일이겠지만 어쩌겠는가. 밴헤켄은 돌아왔다.



네이버 2016PS 칼럼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540&aid=000000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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