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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베이스볼인플레이

LG가 '확률 게임'에서 이긴 이유

by 토아일당 2017. 10. 24.


네이버 2016PS 칼럼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540&aid=0000000008


준플레이오프의 승자가 정해졌다. 엘지 트윈스는 넥센 히어로즈를 3승1패로 누르고 시리즈를 끝냈다. 안타수에서 13개와 6개로 차이가 났지만 일방적 경기라고 보긴 어려웠다. 4-0 리드를 먼저 잡은 것은 넥센이었고 4-4 동점 상태로 이닝이 거듭될수록 초초해지는 것이 엘지였다. 5차전에서 기다릴 밴헤켄의 무시무시한 존재감도 경기의 일부였다. 


넥센의 공세는 2회초에 집중되었다. 선두타자 윤석민의 안타 출루 이후 김민성의 볼넷, 이택근, 박동원, 서건창의 연속안타로 4득점했다. 징크스였던 1회를 3자범퇴로 넘어섰음에도 엘지 선발투수 류제국은 한번에 무너지며 2회를 끝으로 더이상 마운드에 서지 못했다.


경기 내내 더 많은 기회를 만든 것은 엘지 타자들이었다. 하지만 번번히 그것을 무산시키며 8회 이전까지 12개의 잔루만 남겼고 4득점에 그쳤다.  


그런데 막상 이 공방의 결정적 순간에 제대로 맞은 안타는 별로 없었다. 넥센이 4득점 하던 2회, 4개의 안타가 집중되었지만 윤석민의 중견수 앞 안타를 제외하면 마침 타구가 날아간 방향이 좋았을 뿐이었다. 경기초반 행운은 넥센 편이었다. 


엘지의 반격 양상도 비슷했다. 3회말의 1점은 상대 수비 실책에 편승한 것이고 5회의 2점은 몸에맞는 공과 빗맞아서 느리게 굴러간 땅볼 덕분이었다.다음은 이날 승패결정 중요도가 가장 높았던 5개의 타구다. 승패결정 중요도는 그 플레이가 팀 승리확율에 얼마나 기여했는가(WPA)를 기준으로 한다.


5회 무사1·2루에서 무사만루를 만든 오지환의 타구를 제외하면 강한 타구는 없었다. 3개가 110kmh를 조금 넘었을 뿐이고 138.0kmh였던 박동원의 안타도 -41도의 낮은 타구각으로 크게 바운드되며 속도가 죽은 땅볼이었다. 하지만 공교롭게 이 타구들은 모두 수비하기 까다로운 방향으로 날아갔고 득점과 연결되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좋은 타자는 강한 타구를 많이 만든다. 하지만 그것이 꼭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느슨한 타구들이 승패를 결정하는 경우도 많다. 야구란 본래 그렇다. 이날 경기는 특히 그랬다.


더 빠른 타구를 쳐내는 것, 라인드라이브에 해당하는 타구각을 만드는 것은 분명히 타자의 능력에 속한다. 그러나 타구의 방향은 그렇지 않다. 둥근 배트와 둥근 공이 부딪혀 만드는 우연의 결과다. 적어도 타자나 투수의 능력이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없는 영역이다. 만약 타자가 의도적으로 수비 없는 방향에 공을 보낼 수 있었다면 수비시프트와 같은 현대야구의 전략은 성립할 수 없었을 것이다. 


투수도 마찬가지다. 좋은 투수는 강한 타구를 억제하고 약한 타구를 유도한다. 그렇다고 타구의 방향까지 통제하지는 못한다.


이날 경기에 더 빠르고 강한 타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땅볼아웃이나 뜬공아웃에 그쳤다. 경기의 흐름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은 없다. 


물론 많은 경우가 쌓이면 결과는 평균에 수렴한다. 일반적으로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타구각도인 -5도~+40도 범위에서 타구속도에 따른 평균OPS를 기준으로 이날 경기 결정적 타구 5개와 좋은 타구 5개를 표시하면 다음과 같은 차트가 된다.


결과적으로 이날 경기를 지배한 것은 선수의 능력이 만들어낸 타구의 질이 아니라 우연이 지배하는 타구의 방향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것이 야구의 본질이다. 그래서 야구를 '확률의 게임'이라 한다. (앞의 2타석에서 범타에 그친 3할타자가 3번째 타석에서 안타를 치기 때문이 아니다) 


게다가 어떤 타구는 여기에 표시 조차 되지 못했다. 150kmh 이상의 속도였고 비거리가 극대화될 수 있는 30-40도의 타구각을 가졌던 2개의 타구가 있었다. 하지만 왼쪽 폴을 살짝 벗어나는 파울홈런에 그쳤다.  


이날 경기에서 확률은 심술을 부렸다. 좋은 타구에게 좋은 결과를 허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쁜 타구에게 좋은 결과를 허락했다. 실력이 아닌 우연이 승부를 지배하도록 놓아두었다. 그렇다면 이런 날의 경기는 그저 운에 맡기고 그 처분을 기다려야 할까. 그렇지 않다. 선수들 스스로 확률의 불확실성에 맞서는 방법은 있다.  


확률의 지배를 받지 않는 영역에서 우위를 찾는 것이다. 또는 확률의 불확실성에 도전할 더 많은 기회를 얻는 것이다. 확률이 같다면 더 많이 긁어본 쪽이 ‘승리’를 뽑을 가능성도 크다. 


우선은 삼진을 피해야 한다. 삼진을 당하면 타구를 그라운드로 보낼 기회도 없다. 확률의 불확실성에 도전할 기회조차 없어진다. 빗맞은 타구라도 페어 그라운드로 보내야 행운을 기대할 수 있다. 반대편에 볼넷이 있다. 상대에게 확률의 불확실성에 맞설 필요도 없는 공짜 출루를 허용한다. 마지막으로 수비실책이다. 이것은 이긴 확률을 스스로 실패와 바꾸는 플레이다. 


엘지타자가 당한 삼진은 3개 뿐이다. 넥센타자는 6개의 삼진은 당했다. 적어도 3번 더 긁어볼 기회를 엘지 타자들이 가졌다. 엘지 투수는 2개의 볼넷만 허용했다. 넥센 투수는 4개였다. 엘지는 2번 더 확률의 불확실성과 싸우지 않고 득점을 노릴 기회를 얻었다. 


넥센은 그에 더해서 수비실책 2번을 저질렀다. 그들의 편이 되려 찾아온 행운을 도리어 상대에게 양보했다. 확률이 허락한 성공을 스스로 걷어찼다. 행운이 둘에게 공평했다 해도 엘지가 7번 더 많은 기회를 가져갔다. 그게 그들이 승자가 된 이유다.


최종적으로 승부를 가른 것은 8회말 2사에 나온 오지환의 적시타다. 배트가 부러지며 뻗지못한 타구가 수비의 사각으로 들어갔다. 행운의 안타였다. 하지만 그에 앞서 2번의 볼넷 출루가 없었다면 오지환의 안타는 결승타가 될 수 없었다. 그 2번의 출루는 엘지가 확률의 불확실성과 싸워 빼앗은 것이 아니다. 넥센 투수가 공짜로 제공한 기회였다. 


마무리 임정우는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삼진으로 잡아냈다. 확률이란 녀석이 혹시 최후의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해도 소용없었을 것이다. 인플레이타구 자체를 만들지 않는 '삼진'은 확률의 개입을 봉쇄한다. 경기는 끝났고 스코어보드의 승패는 이제 누구도 바꾸지 못한다. 다음 시리즈에 가는 것은 엘지 트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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