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루사이즘과 집단마무리"
[고정마무리]가 좋으냐 아니냐는 재미있는 논제입니다. 선발-구원투수의 분업화는 꽤 오래된 것에 비해 고정마무리 시스템은 88년 오클랜드가 시작이니까 역사가 짧습니다. 토미 라루사 감독의 작품이라 해서 이걸 라루사이즘이라고도 합니다.
라루사이즘의 핵심은
1. "불펜 넘버1 투수"가
2. 기본적으로 "이기는 경기"의 "마지막 한이닝"을 전담한다.
입니다. 대략 요즘 야구의 상식이기도 한데요.
빌제임스가 여기 이의제기를 했습니다. 불펜에이스를 이기는 경기 마지막 이닝에만 쓰는건 비효율적이다. 라고 했죠.
이유는
1. 3점 세이브 상황은 실은 별로 위험하지 않기 때문에 이럴때 불펜에이스를 쓰는건 낭비다.
2. 7회나 8회 1점차에서 뒤집어지면 불펜에이스를 써먹을 기회조차 없다
3. 이기는 상황이 없어서 며칠 놀다 컨디션조절 등판하며 불펜에이스의 이닝을 먹이는 것도 낭비다.
그맘때, 테오 엡스타인이 보스턴 단장이 되고 빌제임스를 고문으로 영입했는데, 여기서 실제로 이걸 적용했다가 망했습니다...라고들 하긴하는데 그게 꼭 그런건 아닙니다.
당시 보스턴은 고정마무리 없이 돌려막기를 했는데, 망했고 급하게 마무리 구해다가 시즌을 마칩니다. 그래서 이게 빌제임스의 흑역사로 남기도 했고 이때 빌제임스와 테오엡스타인이 완전히 틀어졌다고도 하고요.
하지만 이걸 빌제임스 식의 포스트-라루사이즘이 적용된거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1. 우선, 그때 보스턴 불펜이 망한건 집단마무리를 써서 그런게 아니고 불펜투수 수준이 심각하게 떨어져서 그랬다고 봐야 합니다.
2. 또 라루사이즘의 반대말이 [집단마무리]가 아닙니다. 실제로, 망한 불펜에 딱히 누구하나 믿고 맡길 투수가 없어 돌려막기 해놓고 그걸 집단마무리라고 하는경우가 많고요. 굉장히 쿨하고 점잖은 빌제임스조차 이런 면 때문에 그해 보스턴 불펜 케이스를 좀 억울함을 토로한 적도 있지요.
해서 고정마무리 쓰는 팀이 집단마무리 한 팀보다 성적이 좋았다는건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사채 쓰다 망하는 경우 많이 봤다"하면서 사채대신 은행대출 쓰라 해봐야, 그게 앞뒤가 틀렸죠. 사채써서 망한거겠습니까 아니면 망할 상황에 사채라도 쓰다 별수 없었던거겠습니까.
빌제임스가 말한건,
불펜에이스가 1)이기는 경기의 2)마지막 이닝.을 맡는다
대신
1)동점 또는 경우에 따라 1점 지는경우라도 2) 8회라면 또는 가끔은 7회라도 올린다. 를 말한거거든요.
즉 일단 볼펜에이스가 있을 때 이야기죠. 이놈저놈 믿을놈 하나 없는 그런 불펜 말고요.
의도치않게 또는 명시적이지 않게, 이런 식의 불펜운영을 했던 팀이 KBO리그에 있었습니다. 12-13LG와 14-15넥센입니다.
이때 팀의 고정클로저는 봉중근, 손승락 8회를 던진 프라이머리셋업이 이동현, 한현희, 조상우였는데요.
당시의 봉,손이 리그최고 마무리였음에도, 팀내 불펜투수 중 누가 더 쎈 투수냐 하면 사실 이동현, 한현희, 조상우였거든요. 봉은 물론 4아웃이나 5아웃 세이브도 좀 했지만, 그랬음에도, 진짜 터프한 상황은 이동현, 조상우, 한현희가 주로 클리어해놓고 어느정도 정리된 상황에서 봉, 손이 등판했습니다.
해서. "결과적으로" 불펜에이스가 7회나 8회의 터프한 위기를 맡고 실질적으로는 팀내 넘버2 가 9회를 적당히 처리했습니다. 기억하다시피, 그 기간 중 엘지, 넥센의 불펜은 리그 최강이었습니다.
만약, 봉, 손이 78회를 맡고 이,조,한이 9회를 맡았으면, 봉,손이 사고 많이 쳤을거라 예상합니다. (저는)
물론 간단치않은 문제는 많습니다. 데이터는 생기지 않은 일을 설명하기 어려워서 헛점도 있죠.
다만 --- 이,한,조 급이라면 마지막이닝에 대한 심리적 문제가 큰 작용할 할까 싶긴해요. 심리적 부담감이 가장 흔하게 거론되는 논점이긴 하지만요. 뭐 9회에는 악마가 산다고 하든가.
대신, 루틴.이란 면에서는... 음... 전통주의자의 시각이 일리가 있다는 생각도 합니다. 예전 포스팅에 적은적 있는데, 수도승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엄격하고 정교한 마리나노 리베라의 등판전 루틴을 읽으며... 아... 그럴수도 있겠다 느꼈었습니다.
정답은?
저는, 이미 나와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의도한다고 될지 안될지 모르겠는데요.
팀에, 봉, 손 정도의 이름값 빵빵하고 늘 클로저를 해왔으며 실력도 수준급인 베테랑이 마무리를 맡는겁니다.
그리고 조상우, 이동현, 한현희 같은 후배면서 이름값은 좀 못하고 그러나 실력은 위인 투수가 7회나 8회를 맡는겁니다.
그러면, 전통주의 시각의 고정마무리를 하면서, 사실은 빌제임스 식이 포스트-라루사이즘.이 되는거죠.
이게...물론 할려고 되는건 아니겠죠. 봉과 이.를 동시에, 손과 조.한.을 동시에 가진 팀이나 해볼만한 시스템이고요. 또 불펜이 봉이, 손한조 가 있으면 뭐... 그냥 감독이 삽질만 안하면 왠만큼 돌아갈거 같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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