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8.22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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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에 소개된 어떤 글을 보니 어느 팀이든 우승년도에 8살이었던 팬들의 비중이 가장 컸다고 한다. 8살... 다만 야구가 national pastime이라는 미국 이야기이고 한국에는 오차범위가 좀 있다고 치자.
내 기억의 첫번째 본격 야구는 10살 즈음이다. 여름방학 때 해마다 그랬던 것처럼 시골 할아버지댁에 갔고 아버지는 늘 그랬던 것처럼 시골방을 하루종일 구르며 낮잠과 TV보기를 번갈아 하셨다.
그때 봉황기 고교야구대회를 봤다. "저게 뭐지?"는 물론 아니었다. 동네꼬마들이 함께 얼려놀던 이래 야구는 스포츠이기 앞서 "모두의 공놀이"였었다. 내 집에 글러브도 배트도 있었고.
오래전이라 헷갈리는건, 같이 야구보던 아버지가 "재들이 바로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다. 게임이 이대로 끝날리가 없다는 뜻이지" 하고 매우 엄근진하게 한마디 하셨는데, 그 군산상고가 역전 후 다시 재역전 당해 끝내기 패배를 당했다. 아버지는 말없이 티비를 끄고 자리를 뜨셨다. 그게 그때인가 싶어 검색해보면 그해 4강에도 못들었다. 8강 게임이었을까?
다음 장면은 같은해 황금사자기 결승이다. 그땐 그게 가을이었고 선린상고와 광주일고가 붙었다. 승부는 양팀 에이스 박노준과 선동렬의 맞대결에서 갈렸다. 난 고교졸업반 선동렬의 공을 우중간 펜스 너머로 보낸 고교2년생 박노준의 쓰리런을 라이브로 본 1인이다.
그해, 장훈은 일본프로야구 최초의 3000안타를 달성했다.
그맘때 이사를 했는데 집근처에 실업야구팀 포항제철 합숙소가 있었다. 간판은 국가대표 4년타자 김용희였다. 선수들 훈련 마치고 루틴처럼 동네 목욕탕으로들 왔는데 거기서 자주 봤다. 내가 본 휴먼족 중 제일 '키가' 큰 사람이었다.
이듬해 왼손의 일본킬러 이선희 선수가 이적해왔다. 내 인생 첫번째로 야구선수 사인을 받았다. 학교갔다 오는길에 친구 중 한녀석이 그를 알아봤고 엉겁결에 같이 받았는데 하필 가진게 노트에 연필 뿐이었다. 나중에 그걸 좀더 또렷하게 만든다고 검은색 사인펜으로 뒤에 덧칠을 했다. 누나가 보더니 이런 멍청이, 그러면 그게 더이상 사인으로서 가치가 없어지잖아 라며 타박을 했다. 그런건가.
하지만 내게 중요했던 것은 사인 자체가 아니라 그 순간의 설렘이었다. 프로출범 이후 팀이 갈렸음에도 늘 그의 팬이었다. 늘 그를 응원했다.
박노준, 김건우 원투펀치가 3학년이 된 선린상고가 전국을 평정할 줄 알았던 그해, 봉황기 결승전 박노준이 홈슬라이딩하다 발목이 돌아갔다. 준우승만 3번 했다. 그 사이 경북고가 3관왕을 차지했으며 성준은 그때도 느릿한 공을 던졌다. 1학년 유격수 류중일은 그때 이미 팀 에이스였다.
군상상고 1학년에는 조계현이 있었다. 이효봉이라는 대형투수가 대전고에 있다는 야구잡지기사를 봤다. 근데 팀이 약해서인지 전국대회에서는 본적이 없었다.
고려대에 입학한 선동렬은 세계청소년대회에서 미국인지 캐나다인지를 1안타 완봉하며 MVP가 되었다 --- 는 기사를 신문 한구석에서 읽었다 --- 는 기억도 있다. 인터넷도 없었고 TV중계도 없었다. 야구는 그래서 더 환타지였다.
이맘때부터 본격 야구장에 다녔다. 대학야구가 주였다. 어린 눈에 고교야구보다 더 수준이 높아보였다. 고교생들 보다는 대학생 형아들이 더 친절하기도 했다. 내 응원팀은 한양대였다. 외야석에서 야구를 보던 어느날이었는데 옆에 청년들 서넛이 있었다.
"하, 저놈 저거 그렇게 잘하더 놈인데 이만수한테 밀려서 맨날 후보신세네" 여기서 '그놈'은 선린상고 출신 포수 정종현이다. 그밖에도 타자 하나가 나올때마다 투수가 바뀔때마다 이런저런 한마디씩이 붙었고 거기서부터 그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막 펼쳐졌다. 아, 저게 바로 야덕의 경지로구나. 왠지 모르게 어른들의 멋진 세계를 엿본 기분이 들곤 했다.
내 10살 때 단 하나의 우승팀은 없었다. 거긴 그냥 '야구' 그 자체가 있었다.
2018년 지금의 10살 소년들에게 야구는 무엇으로 기억될까.
"야, 너 오지환 알아?"
"그게 누군데?"
"나도 잘 모르겠는데 흉악한 연쇄살인마래."
"아냐 아냐. 나라를 팔아먹었다는데?"
"그래? 정말 나쁜 사람이네."
"그래 우리 다함께 대한민국 야구대표팀의 은메달을 기원하자!"
설마 이렇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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