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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큐놀이의 가치 : 투구수를 늘리는 타자가 충분히 가치있는가?
- 2013년 7월17일
많은 팬들은 투수가 공을 많이 던지게 하는 타자가 가치있다고 생각합니다.
출루하지 못하고 물러나더라도 여러개의 파울타구를 만들어내고나면 충분히 밥값을 했다며 칭찬을 합니다. 반대로 초구나 2구에 타격을 해서 범타로 물러나면 화를 내고 욕설을 퍼부울 때도 있습니다. 상대투수에게 눌러있는 경기상황에서 더욱 심하고, 만약 그 타자가 신인급이거나 아니면 최근에 부진에 빠진 주축타자인 경우 그 선수들은 아주 험한 비난에 직면하게 될겁니다.
한창 때의 이용규는 그래서 모든 팬들이 가장 가치있다고 여기는 타자였습니다. 그의 커트신공은 박병호나 이승엽의 장타력보다, 김현수나 이병규, 손아섭의 정확도보다 높이 평가될 때도 있습니다.
이런 생각의 바탕에는 대표적으로 아래 두가지 이유가 있을겁니다.
1) 타격을 해서 안타를 치는 것은 잘해도 3할을 넘는 것이 어렵지만 공을 오래 보고 상대 투수가 많은 공을 던지게 하는 것은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2) 공을 많이 던지게 하면 투수가 빨리 지치고 중후반에 좋은 기회를 만들기 쉬우며 상대팀의 투수력을 소모시켜 연전에서는 특히 다음 경기에도 유리한 상황을 만들 수 있게 해준다.
이 두가지 근거에 대한 절대적 믿음으로 인해, 빠른 볼카운트에서 타격하는 선수들을 이기적이고 불성실하며 팀플레이를 모르고 생각없이 야구를 하는 것으로 단정짓습니다.
타석당 투구수에 대해 언제부터 그리고 왜 이런 관념이 생겨났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2000년대 초반부터 대두된 오클랜드의 머니볼 또는 빌리빈이즘이 관계되어 있을거라 여깁니다.
세이버메트릭스라는 새로운 야구분석도구에 근거해서, 그는 출루율이 전통적으로 아주 저평가된 가치라는 결론을 붙잡습니다. 야구의 목표는 팀의 승리이며, 그때 팀의 승리를 만들어주는 가장 결정적인 팩터는 당연히 많은 득점과 적은 실점입니다.
그리고 득점을 만들어내는데 있어서, 출루와 진루가 근간이 되며 따라서 볼넷은 싱글히트에 비해서 크게 떨어지지 않는 유용한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볼넷은 타자의 능력이 아니라 투수의 실수로 치부되어 왔던 경향이 강합니다.
빌리빈과 그의 지지자들은 그런 맥락 안에서, 타율이 비해 휠씬 저평가되어 있던 볼넷을 골라내는 능력에 주목하고, 이런 유형의 타자들은 비교적 낮게 평가된 시장가치를 이용해서 가격대비 성능이 높은 타선을 만들기 위해 애씁니다.
아시다시피 결과는 오클랜드라는 저예산, 스몰마켓팀의 주목할 만한 성공으로 나타났습니다.
빌리빈이 개혁한 오클랜드에서 팜의 타자들은 볼넷의 가치에 대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교육받으며 많은 공을 보고 투수에게 많은 공을 던지에 하는 습관을 들이기위해 벌금 따위의 무식한 방법까지 동원해서 훈련받습니다. 이걸 못하는 타자들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ㄴ다.
그렇다면, 많은 투구수 유도와 볼넷 추구는 과연 정말로 충분히 가치있는 일일까요?
그리고 이용규처럼 많은 공을 던지게 하고 불넷을 골라나가는 빈도가 높은 타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가치있는 타자일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상대적인 것인데 빌리빈과 그의 지지자들이 빠른 승부에 대해 가졌던 입장이 그들의 전통과 문화적 배경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야구의 전통에서, 볼넷은 별로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공을 오래 보며 승부를 질질 끄는 것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남자답지 못한 일이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화끈하게 휘둘러 아웃이되든 홈런을 치든 붕붕 돌려대는게 멋지고 남자다운 일이라 느끼니까요. 그게 그네들의 정서입니다.
최희섭을 시작으로 투수 뿐 아니라 타자들의 메이저리그 진출이 시작되며 전해진 이야기들 중에, 미국야구에서은 루킹삼짐을 금기시한다는 것이 있었습니다. 특히 메이저리그에 막 올라온 신인타자들이 2스트라이크 이후에 존에 들어온 공을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아웃당하는 것은 적극성이 없고 나태하며 용기없는 행동으로 치부되어 비난받았습니다.
뭔가 비슷하지 않나요? 초구 공략으로 아웃되는 타자들에 대해 한국 팬들이 퍼붓는 비난과?
인내심, 희생정신, 신중함이 숭상되는 아시아권 정서와, 도전정신, 남자다움, 용기, 과감함이 사랑받는 미국사람들의 정서가 이런 차이를 만들었다 생각합니다.
안타든 볼넷이든 출루가 팀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명백히 사실입니다.
상대방 투수로하여금 더 많은 공을 던지게 하면 유리해진 다는 것도 아마도 틀리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래서 이용규 같은 유형의 타자들이 엄청나게 가치있다는 생각은 좀 다릅니다.
하나의 장점을 가진 것은 맞지만, 한국야구에서는 지나치게 그것이 과대평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두가지 이유가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하나는 투구수에 대해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하나는 앞서도 잠깐 말했듯이, 아시아적 정서가 신중함, 인내심을 숭배하는 전통을 가졌기 때문에.
아래는 2011년 시즌에 타석당 투구수가 가장 많았던 타자들의 순위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용규가 제일 위에 있네요. 더구나 저 시즌은 그의 커리어하이에 속합니다.
장성호는 사실 가려져있지만, 리그에서 가장 많은 공을 던지게 하는 타자입니다. 2012년 시즌의 경우 장성호가 타석당 4.3개 정도로 1위를 자키했고, 이용규는 4.0개 정도였을겁니다.
그렇다면 팀에 이용규 수준의 타석당 투구수를 유도해내는 선수가 한명 더 있을때 , 팀은 얼만큼의 이익을 얻을 수 있을까요?
다음 표는 2011시즌 각 팀의 타석당 투구수와 출루율 4사구 숫자입니다.
리그 전체로 봤을때, 평균적인 타석당 투구수는 3.9개 정도입니다. 즉 이용규는 리그의 평균적인 타자보다 타석당 0.35개 정도의 공을 더 던지게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이용규가 한명 더 있을 경우, 한 경기당 4번 타석이 들어설 경우, 1.4개의 투구수가 늘어난다는 겁니다.
이상하지 않은가요? 이게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요? 용큐놀이가 리그 극강의 타격능력이라 칭송될 만큼?
9명 모든 타자가 이용규 모드를 시전한다고 해봐야, 한 경기를 40타석으로 가정할 경우, 14개의 투구수가 늘어날 뿐입니다.
혹시, 초구공략과 이용규의 12구 파울신공을 비교하면 11개가 차이나는게 아니냐고 반문하실 분이 있다면 평균의 개념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시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즉 우리가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12구 승부들의 뚜렷한 임팩트에도 불구하고,,, 한 시즌 전체로 보면 결국 이용규라는 타자가 타석에서 보는 공의 갯수는 4.3개가 안됩니다. 그리고 귀신같이 초구를 쳐서 아웃되는 것 같은 다른 보통의 타자들도 결국 시즌 정체 평균을 보면 3.3개 또는 3.5개 정도의 공을 본다는 겁니다.
9명의 타자 모두를 이용규 타잎으로 바꾼다고 해봐야, 리그 평균에 비해 기껏 한경기 전체로 14개의 공을 더 던지게 할 뿐인데, 그렇다면 용큐놀이의 가치가 명백히 과대평가되어 있다고 해야 합니다. 그 14개의 공을 더 던지는 것으로 상대투수가 무너진다고 보는것은 지나친 주장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용규의 가치는 단순히 공을 많이 던지게 하는 것 뿐 아니라 추룰해서 상대 수비를 흔드는 기동력에 있다고 반론하실 분이 있다면 그 역시 맥락을 벗어난 이야기입니다. 이용규가 그런 이유로 좋은 타자인 것은 옳지만, 그것은 그의 빠른 발과 주루능력에서 비롯된 가치이지 공을 많이 보는 능력과는 무관합니다. 빠른 승부를 하면서 동일한 출루율과 주루능력을 가진 타자와 다를게 없다는 뜻입니다.
순위 | 구단 | 경기 | 승 | 패 | 무 | 승률 | 게임차 | 포스트시즌 |
1위 | 삼성 라이온즈 | 133 | 79 | 50 | 4 | 0.612 | - | 한국시리즈 직행, 우승 |
2위 | 롯데 자이언츠 | 133 | 71 | 59 | 3 | 0.547 | 8.5 | 준 플레이오프 직행, 한국시리즈 패배(3→2) |
3위 | SK 와이번스 | 133 | 72 | 56 | 5 | 0.563 | 6.5 | 플레이오프 직행, 플레이오프 패배(2→3) |
4위 | KIA 타이거즈 | 133 | 70 | 63 | 0 | 0.526 | 11.5 | 준 플레이오프 직행 |
5위 | 두산 베어스 | 133 | 61 | 70 | 2 | 0.466 | 19 | 진출실패 |
6위 | LG 트윈스 | 133 | 59 | 72 | 2 | 0.450 | 21 | |
한화 이글스 | ||||||||
8위 | 넥센 히어로즈 | 133 | 51 | 80 | 2 | 0.389 | 29 |
팀별 평균타석당투구수 순위에서 눈여겨 볼 또다른 [사실]은, 많은 타석당 투구수가 높은 순위나 심지어 높은 출루율과 상관관계가 없을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일단 팀 순위에서, 1위팀 삼성이 팀성적도 1위를 차지하긴 했지만, 공을 가장 적게 본 7위 8위팀 SK와 롯데가 팀 순위에서는 삼성 다음인 2위와 3위를 차지했습니다.
삼성에 이어 두번째로 공을 많이 본 팀 넥센은 그 해의 팀순위 최하위 8위입니다.
물론 팀 순위는 공격 부문 뿐 아닐 투수력 등 투수부문의 영향도 받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올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명백하게 공을 많이 보는 목적이라 여겨지는 출루율과의 상관관계라면 정말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타석당 투구수가 3.78개로 가장 낮은 롯데는 팀 출루율에서는 0.358로 1위입니다. 마찬가지로 공을 적게 본 두산 역시 출루율은 상당히 높습니다. 이런 결과가 나오는 이유는, 출루율은 결정하는 또다른 팩터로서 타율의 차이 때문이겠지요.
만약 공을 오래 보는 태도와 전략이 타율을 하락시킬 가능성이 있다면, 그리고 그 하락의 폭이 볼넷으로 얻을 수 있는 출루율 상승보다 더 크다면, 공을 오래 보는 타자는 팀에 해로운 선수입니다. 아니 적어도 공을 오래 보도록 권하는 전략은 팀에 해로운 영향을 줍니다.
*** 다른 포스팅에서 따로 다루겠지만, 초구공략 시의 볼카운트별 타율이 3구나 4구의 그것보다 높습니다.
기껏 공을 많이 보는 전략이 약간 관련된 것은 볼넷 갯수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것조차 명확하지 않습니다. 공을 2번째로 많이 본 팀 넥센은 8개 팀중 가장 적은 볼넷만 얻어냈습니다. 상대투수에게도, 관중들과 중계방송팀에게도 민폐만 끼치고 팀에 이득은 전혀 없었다는 뜻입니다.
심지어 상대 투수의 투구수를 늘리는데 조차도, 타석당 투구수가 꼭 이로운 것은 아닙니다. 리그 평균에 비해 가장 많은 공을 던지게 하는 타자가 평균수준의 타자보다 기껏 0.35개를 더 던지게 하지만,
초구에 안타를 치고 출루한 타자는 대신 상대 투수에게 1타자 만큼의 공을 더 더 던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이용규가 상대 투구수라는 측면에서 가치있다고 평가할 유일한 근거가 있다면, 출루율이 높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는 초구공략을 밥먹듯이 하더라도 타율이 높아서 출루율이 높은 경우가 있다면 그 선수가 오히려 상대 투수에게 더 많은 공을 던지게 합니다.
타석당 투구수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 더 위험한 것은, 그 결과로 선수에 대한 인격적인 비하, 공격이 이어지 때문입니다. 마치 한때 미국야구에서 볼넷을 얻고자 노력하는 선수를 남자답지 못하고 찌질한 비겁자로 치부했듯이 말이죠.
데이터를 구하기 어려워, 다른 시즌까지 모두 모아 정리하지 못한 것은 한계입니다. 하지만 제가 조각조각 봤던 케이스를 기준으로는 이런 경향은 어느 시즌이나 거의 차이가 없었습니다.
잠정적인 결론은 이렇습니다.
2011년 시즌 데이터를 기준으로 할때
1. 2011년 버전의 이용규 (용큐놀이 전성기) 가 한명 더 있을때, 상대 팀에게 9이닝 당 1.4개의 공을 더 던지게 한다. (4타석 기준)
2. 팀의 9명 모든 타자를 투구수늘리기 분야에서 이용규 레벨로 채울 경우, 팀은 상대방에게 경기 전체를 통해 14개의 공을 더 던지게 한다. (40타석 기준)
3. 공을 많이 보는 것과 팀 성적과 상관관계를 찾을 수 없었다.
4. 공을 많이 보는 것과 팀의 출루율과 상관관계를 찾을 수 없었다.
5. 공을 많이 보는 것과 팀의 볼넷 갯수를 늘려줄거 같긴 한데, 확실치는 않다.
*** 또 다른 샘플이 다른 결론을 알려줄 가능성도 있고, 추론방법에 따라 다른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타석당 투구수와 팀의 성적, 팀 출루율 심지어 팀 사사구가 관계있다는 근거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초구공략을 하다는 이유로, 선수들을 팀이 득점을 만드는데 덜 공헌했다 정도도 아니고,
이기적이며 자기만 생각하고 불성실하며 생각이 없고 팀플레이를 안하는 말종으로 매도하는 것은 뭔가가 아주 많이 잘못된게 아닐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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