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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 피에와 한화이글스 재계약 협상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by 토아일당 2015. 3. 25.

협상의 재구성, 2014.10.15-2014.12.8

펠릭스 피에의 재계약 협상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지난 3월에 썼던 것을 다시 좀 정리해서 수정합니다. - 8월6일


3월25일자 연합뉴스 영문판에 전 한화 외국인 선수였던 펠릭스 피에 에이전트인 예이츠(Yates)의 주장을 담은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피에는 메이저리그 세팀에서 6시즌을 보낸 경력을 가지고 있었고 2014년 한화에서 중견수로 뛰며 타율 0.326 17홈런과 팀내 최고인 92타점을 기록한 바 있었습니다.  (연합뉴스 영문판 KBO's Hanwha Eagles negotiated in 'bad faith' with ex-major leaguer Felix Pie: agent)


그는 팀내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 중 하나였고 팬들 역시 그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재계약에 실패했고 그 후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 피에와 그의 에이전트가 말을 자주 바꾸고 욕심쟁이처럼 굴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습니다.  협상결렬 소식에 실망했고 구단에 불만을 토로하던 팬들의 타겟은 당연히 피에와 그의 에이전트에게로 옮겨갔습니다.  출처는 알 수 없지만 피에는 이 과정을 몰랐으며 에이전트의 농간이었다는 설이 퍼지기도 했습니다.




공개된 이메일과 정황을 통한 "협상의 재구성"


그런데 15시즌 오픈 벽두, 이미 지난 일이 되어버렸던 펠릭스 피에와 한화 프론트 사이의 협상과정에 대한 반대편의 입장이 불거진 셈입니다.  기사를 통해 예이츠는 "KBO club(한화)가 협상에 정직하지 못했다(in bad faith)"라고 말합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피에와 한화의 재계약 협상은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습니다.


제1기 - 2년 계약을 원한 피에에 대해서 한화는 1년계약을 제시함 

10월15일 피에측이 한화구단에 2년계약 오퍼를 달라고 주문함.

11월6일  한화 실무자는 새로운 감독이 피에에 대한 결정을 내리길 기다리고 있다고 알림

11월13일 한화측은 여전히 김성근 감독의 결정을 가디라고 있음을 알림

11월17일 한화측이 1년 계약안 제시.  이유는 신임감독이 외국인선수의 다년계약을 불허하기 때문이라고 밝임.  


피에측은 1년계약안을 받아들이지 않았고(Yates expressed his and Pie's disappointment over the offer) 이에 대해 협상은 제2기로 넘어갑니다.


이 즈음 김성근감독은 마무리 훈련 중이던 오키나와에서 피에와의 재계약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대해 "(짤막하게)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라고 답했다는 기사가 있었고, 11월25일자 기사에는 한화 관계자가 전화인터뷰를 통해 11월초부터 도미니카에 가있는 한용덕 특보가 나서고 있으며 난해한 조건이 아니면 협상은 원할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제2기 한화의 1+1년 수정안 제시  

11월27일 한화 실무자가 "경영진으로부터 선수에게 제시할 납득할만한 숫자(respectful number)를 받아내기 위해 설득하고 있으며 베스트 오퍼를 제시할 수 있도록 시간을 더 달라"고 말함

11월28일 한화가 피에측에 1+1오퍼 제시. 실무자의 의견은 피에가 2015년 옵션의 50%만 맞춰도 되기 때문에 2년 계약만큼 좋은 조건이라고 함.


제3기 연락두절(에이전트 측 주장)과 협상최종결렬

그런데 11월28일의 1+1 오퍼 이후 예이츠는 협상 파트너였던 실무자와 연락이 안되었다고 말하고 있고 12월8일 피에 측이 이메일을 통해 1+1 오퍼에 대한 수락의사를 밝혔으나 그에 대해 한화 측은 김성근 감독이 피에의 불확실한 어깨(iffy shoulder)로 인해 계약을 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는 대답함. 이로써 협상종료.


피에의 에이전트 조쉬 예이츠는 협상 과정 중에 구단과 주고받은 이메일 전부 혹은 상당부분을 연합뉴스 측에 제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있는 것을 숨겼을지 몰라도 없는 것을 공개할 방법은 없으니 기사에 포함된 예이츠의 주장은 왠만큼 믿을만해 보입니다.  실제로 기사는 협상과정의 중요한 대목을 설명할 때마다 주고받은 이메일의 문구를 자주 인용합니다. 



11월25일을 넘기자 협상의 주도권은 구단에게 넘어왔다


이 진실게임에서 누군가는 거짓말쟁이인걸까요?  아니면 이런 일이 생겼을 때 단골로 등장하는 문화적 차이인 걸까요?  그것도 아니면 다른 어떤 것일까요?  물론 한화의 구단관계자는 여전히 그들이 최선을 다해 성의있게 협상에 임했다는 입장입니다.    


저는 당연히 협상 당사자가 아니며 구단관계자도 아니기 때문에 별스러운 내부정보를 갖고 있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KBO의 외국인선수 계약제도를 생각해 볼 때 양측이 주장 중 어떤 것이 더 합리적으로 보이는지 판단해 볼 수는 있습니다.  


고려할 요소 중에는 우선 외국인선수 재계약의 중요한 변수로서 보류선수 등록마감 시한이 있습니다. 


KBO규약 (외국인선수고용규정 표준계약서 10장 독점교섭기간:보류권)에 따르면 구단은 정해진 기한 내에 서면으로 재계약 의사를 통보한 선수에 대해 [보류권]을 가집니다.  외국인 선수의 경우 전년도 12월31일까지 계약에 합의하지 못할 경우 자유계약선수 신분이 되는데 구단이 보류권을 가지고 있는 선수에 경우 향후 2년동안 KBO의 다른 팀과는 계약할 수 없게 됩니다.  보류기간은 이전에 5년이었으나 2014년도 개정된 규약에서 2년으로 축소되었습니다.  


외국인선수에 대한 보류규정이 운영되는 이유는 그들이 이적을 목적으로 터무니없는 계약조건을 요구해서 계약결렬을 유도한 후 더 좋은 조건의 다른 KBO구단과 계약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함이며 대신 구단측은 재계약 오퍼를 할때 반드시 전년도 계약금+연봉 총액의 75% 이상의 금액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런데 2014년의 보류선수등록시한은 11월25일이었습니다.  한화가 1차로 제안한 1년계약(11월17일)을 피에 측이 거절한 시기와 2차로 1+1계약안(11월28일)을 제시한 시기 사이에 피에는 보류선수명단에 포함되었고 따라서 피에는 한화가 아닌 다른 구단과는 계약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양측 협상에서 중요한 입지변화가 생겨난 것입니다. (다만 구단이 KBO에 제출한 보류선수명단 공시는 5일 후인 11월30일입니다.)


새로운 협상안을 제시한 시점이 보류선수등록마감일인 11월25일을 넘긴 것이 협상전략 상 의도적인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이 시점에 피에 측은 선택지가 줄어든 것은 사실입니다.


피에 측은 가급적 1+1이 아니라 2년 계약을 원했다  


행간에서 읽히는 또다른 맥락은 11월28일 1+1수정안 이후 한화 실무자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는 불평에도 불구하고 피에 측이 수락의사를 이메일로 전달한 날짜가 그로부터 10일 후인 12월8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메일에 의한 일방의 의사표시는 당연히 언제라도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그 중간 열흘의 간격은 피에의 에이전트가 조건에 대해 좀더 "네고"를 시도하고 싶었기 때문이라 것이 상식적인 추측입니다.  1+1을 당장, 넙죽 받아들이고 싶어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봐야겠죠.  그리고 시한에 점점 몰린 피에 측은 연락이 된건지 아닌지 몰라도 하여간 수락의사를 통보했던거겠죠.  결과는 한화 측의 거절이었구요.


(아마도) 피에는 KBO에 미련을 갖고 있다


이런 "일종의 폭로"가 왜 협상결렬시점이 아니라 그로부터 한참이나 지난 지금(15년 3월25일)인지도 약간 의아한 부분이긴 합니다. 이미 욕심쟁이 배신자로 찍혀버린 그가 못마땅한 세간의 추측처럼 MLB나 NPB 등의 다른 리그 이적을 시도하다 실패했기 때문에 이제라도 한화가 묶은 보류권 해제를 압박하기 위한 언론플레이인걸까요?  


실제로 기사는 피에 측이 한화 구단에 보류권 해제를 원했으며 구단은 타구단 계약 시 보류권을 가진 원소속 구단의 권리 중 20만달러의 현금보상과 1명의 선수 보상 중 무조건 선수보상을 요구할 것이라 답했다는 것을 전합니다.  구단 측이 쉽게 풀어주지 않겠다는 의사라고 보는게 맞을거 같습니다.  (약간 이상한 부분은 보류권에 묶인 외국인선수에게 이런 종류의 보상규정이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KBO 2014년도 규약 상에는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이런 규정이 다른 곳에 있을 수도 있고 피에의 에이전트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진실게임의 정체는 무엇일까?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협상 과정의 정황은 12월8일 하루 동안의 사건들입니다.  그날 새벽 피에의 인스타그램에는 "I'm on my way I'm back #pienation" 이라는 메시지가 올라왔습니다.  이때까지 한화측의 대외적 입장은 "피에와 협상을 이어가고 있지만 온도차가 있다. 아직 결정된 바 없다"였습니다.  상식적으로 "피에가 구단 제안에 불만이 있긴 하지만 구단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재계약이 될 것이다"라고 해석하는게 보통입니다. 


팬들은 피에와의 재계약을 간절히 원하던 시점이었고 그래서 12월8일 아침 "I'm on my way I'm back"라는 인스타그램 메시지는 재계약 조건 수락의 신호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당연하며, 팬들은 환호했습니다. (이게 나중에, 재계약 결렬은 피에 본인도 몰랐고 에이전트의 농간이었다는 추측의 정황이 되죠)




그런데 바로 그날 오후 한화측은 재계약의 최종결렬을 발표합니다.  음?  그리고 이제 새로 밝혀진 사실은, 바로 그날이 피에의 에이전트는 한화가 제안했던 1+1 계약을 받아들이겠다고 수락한 바로 시점이었다는 겁니다.


협상의 재구성 - 피에 편


피에의 에이전트 측이 언론에 제공한 이메일은 상당히 확실한 증거이며 따라서 선수 측의 협상태도는 비교적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선하거나 아니거나 협상에 임하는 매우 상식적인 범위 안에서 움직이고 있기도 합니다.    


1. 피에는 2년계약을 강력히 희망했으며 버티기를 통해 그것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2. 11월25일 보류선수등록시한을 넘기며 구단의 보류권 주장이 가시화되자 피에 측은 어쩔 수 없이 물러난다. 마지막으로 1+1수정안에서 좀더 얻어내기 위한 협상을 시도하지만 구단측이 (의도적이든 아니든) 생까는 태도로 일관하자 결국 12월8일 구단측 안에 대해 수락의사를 밝힌다.

3. 그런데 구단이 그마저도 이젠 거절하고 재계약결렬을 선언하자 빡쳤다. 

4. 이후 KBO가 아닌 다른 리그 다른 구단과의 사인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새로운 팀을 찾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는 보류권 해제를 한화측에 원했으나 한화가 이를 거부했고 이제 공개적으로 불만을 토로하게 된다. (이 부분은 좀 추측이지만요)


반면 한화 측의 스탠스는 이상해보이는 부분이 좀 있습니다.  1+1수정안 제시의 시점이나 그후 연락두절(피에측 주장)은 친절하고 신사적이라 하긴 어렵다 해도 협상이 협상인 한에 충분히 그럴 수 있는 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기사를 통해 에이전트가 비난했던 것처럼 비슷한 시기 다른 외국인 선수에게는 2년짜리 계약을 제안했다는 점도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선수가 더 가치있다고 구단이 판단했다면 그것 역시 못할 일은 아닐테죠.


협상의 재구성 - 한화편


하지만 한화 측이 피에 에이전트에게 보여준 입장과 태도, 그리고 국내 언론에 밝힌 입장과 태도가 전혀 다른 것은 설명이 잘 되지 않습니다.  협상담장자가 피에 측에게 일관되게 견지한 입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우리는 당신과 재계약을 간절히 원한다. 

2. 다만 2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2년계약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1+1계약은 가능하다.  이렇게 해보자.  둘째, 프런트의 입장과 달리 신임 감독은 당신에 대해 좀 부정적이다.  우리는 그를 설득할 필요가 있다. 

3. 협상결렬 이후 - 최선을 다했지만 신임감독을 설득하지 못했다.  그가 안된다고 하면 방법이 없다. 미안하다. 우리도 안타깝게 생각한다.  정말 당신과 계약하고 싶었다.


그런데, 한화관계자를 통해서 협상결렬 직전까지 전해진 이야기는 "김성근 감독은 피에를 원한다" 였습니다.  피에가 외국인보류선수 명단에 오른 11월25일자 기사에도 재계약 추진은 "김성근 감독의 의중에 따른 것이다"라는 코멘트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협상결렬 직후 구단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지만 협상이 진행될수록 피에의 요구사항이 늘어났다.  한화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요구가 있었다.  한화가 수정안을 제시했지만 피에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 특히 김성근 감독도 한화의 이같은 결정이 힘을 실어줬다. 한화구단 고위관계자는 "김 감독님께 외국인 선수 현황에 대한 보고를 드렸더니 피에에 대해서는 좋은 선수지만 다른 대안도 있으니까 재계약은 구단이 알아서 결정하라고 하셨다 - 디지탈타임스 12월8일


게다가 피에측이 "한화가 제안했던" [1+1계약]을 받아들이던 바로 그날 결렬을 최종발표하고 피에 측의 불성실하고 비겁한 이중플레이를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구단이 피에 측에게 취했던 태도도 일관성이 있고, 국내 언론에 말하던 것도 일관성이 있는데, 그 둘은 서로 완전히 상충됩니다.  무슨 이유일까요?



실무라인은 김성근 감독과 구단 최상층부의 의중을 잘못 파악하고 있었다?


구단은 김성근 감독의 의사를 잘못 안 채 혹은 설득할 수 있다고 여긴 채 재계약을 추진했고 그게 안되자 마지막에 자신들이 제안했던 오퍼를 피에 측이 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절로 선회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요? 

 

또는 거의 막판까지 외국인선수 계약에 대한 권한은 프론트 오피스에 있다고 여기며 주도적으로 진행해왔으나 막상 구단사장 또는 구단주 레벨의 결제단계에서 물을 먹고 뒤집힌 아주 통속적인 결말이었던 걸까요?  


또는 피에의 협상태도에 괘씸죄가 적용되어 계약불가로 입장이 급선회했던 것일까요?  그런데 이것은 약간 어색한 것이 (에이전트 측의 주장에 의하면) 11월28일 1+1계약안의 제시한 순간부터 이미 구단의 협상태도는 매우 소극적으로 변해있었다는 것입니다.  협상과정에서 구단의 입장변화가 생긴 것이라면 그 시점은 적어도 11월28일 이전이라고 봐야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11월28일 이전에 구단은 "감독은 피에를 원한다"고 했었고, 12월8일 협상결렬을 피에의 에이젠트에게 통보하면서는 "감독이 피에를 원하지 않는다"였습니다.  영 맥락이 꼬이는 이유입니다.  따라서 피에 측에 밝힌 것과 달리 애당초 1+1계약안이나 재계약 방침 자체에서 협상실무라인과 구단의 최종결정권자 사이의 괴리가 있던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게 만듭니다.  그게 아니라면 그냥 "거짓말" 또는 좋게 말하면 "바람직하지 못한 협상의 기술"이라고 밖에 다른 해석이 있을까요?


피에의 어깨상태가 그리 좋지 못했다는 것이 나중에 더 분명해졌으니 구단 입장에서는 잘된 일일 수도 있고, (시즌 후반기에 접든 시점에 다시 보면) 반면 피에 대신 계약한 외국인 선수는 아예 경기에 출전을 못하고 있으니 잘못된 일일 수도 있고, 결과론적으로는 그렇습니다.  



한화 측의 아주 흔한(?) 협상마무리 스킬


진실이 무엇이든, 피에 측이 구단과 주고받은 이메일을 공개하며 밝혀지게 된 새로운 정황들을 보면, 피에 측의 요구사항이 계속 늘어나면서 어쩔 수 없었다는 구단의 말이 좀 의심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선하든 악하든 피에 측의 주장은 나름 일관성도 있고 상식적이며 정황에도 맞는데, 구단 측의 주장은 (설사 그게 사실이라 해도) 영 앞뒤가 다르고 정황에도 어울리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양측의 주장에 사실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섞여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공개된 근거들을 미루어 구단이 11월28일 1+1계약안을 제시했다는 것과 그후에는 양측이 활발한 협상을 진행하지는 않았던 점, 그리고 12월8일 피에측이 수락의사를 밝혔음에도 한화측이 결렬을 선언했다는 것은 어쨌든 명백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피에 측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를 했던 것이 사실이라 해도 세간에 흘러나왔던 것처럼 "이미 합의된 것을 뒤집고 더 많은 것을 추가로 요구해왔다"고 보기는 좀 어려워집니다.  


양측이 조건을 맞추는 협상에서 무리한 요구를 했다는 것과, 합의된 이후 새로운 요구가 늘어났다는 것은 아예 의미가 다릅니다. 그리고 구단은 피에 측이 늦게나마 구단제시안에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를 밝히기 전까지는 선수측에 협상결렬을 통보하지 않았습니다.  정황 상 휠씬 이른 시점에 계약불가결정을 한것 같은데 말이죠. 


이 모든 것보다 가장 좋지 않아 보였던 것은 구단이 협상을 마무리하는 방법이었습니다.


협상의 실무자는 결렬의 이유로 현장의 감독을 명확히 겨냥합니다.  그것도 영 아름답지 못한 방식으로. 기사를 통해 공개된 한화 측의 이메일 안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이런 불행한 결과에 대해 누구 잘못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팀 역시 이런 결과에 대해 낙담하고 있다는 사실을 당신이 알아주길 바란다.  감독의 결정에 의해 팀은 최고의 중견수를 잃게 되었다

"I cannot say whose fault (it) is for this unfortunate result. I want you to know that the team gets frustrated about the result as well," the official also wrote. "The team just lost the best (center fielder) in the team because of the manager's decision."


어찌보면 별로 놀랄일도 아닙니다.  프로야구팀이든 일반기업이든 상대가 외국 파트너든 아니든 협상의 최종적인 마무리 직전까지 나는 당신의 편이며 나는 이 딜이 성사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고 몇가지 아주 사소한 문제를 제외한다면 별다른 문제는 없으며 그런 문제들조차 최선을 다해서 해결하겠다는 식의 스탠스를 보이는 것은 한국의 비즈니스맨들에게 아주 흔한 일이라서 입니다.  


그리고 딜이 최종적으로 결렬된 후, 정말 미안하다 최선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었고 다만 최종적인 권한을 가진 우리 보스는 누구도 못말리는 어쩔 수 없는 사람이라서 그렇다. 나 뿐 아니라 그 보스를 제외하고 다른 모든 멤버들도 나와 같은 생각이다.  그러니 다음에라도 좋은 인연을 이어가자 고 말하는 것도 흔하디 흔한 일입니다.  그것이 진짜로 그랬든 아니든 말입니다.


이런 결말에 대해 한국인 파트너와 외국인 파트너의 반응이 혹시 다르다면 그것은 문화적 차이 때문이 아닐 겁니다.  그럼요 그럼요 그래도 애써주셔도 감사합니다 라고 답하는 것과 속 마음 그대로 불평을 토로하는 것 사이에는, 문화적 차이가 아니라 앞으로도 별 수 없이 목을 매야 하는 "을"의 입장이냐 아니냐에서 갈릴 뿐이니까요. 


게다가 한화측의 실무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한국야구의 신(God)인 감독은 그렇게 결정했고 나와 조쉬는 어쩔 수가 없다"

"However, the manager who is god of KBO industry at this moment made that decision that I and Josh cannot take control of,"


그가 영어가 짧아서 저런 묘한 표현을 한 것이라면 그의 무능력이 문제일테고 그런게 아니라면 의도적인 면피용 비아냥 말고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을까요?


피에와 그의 에인전트가 얼마나 선하고 신사적인 사람인지는 별로 논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쨌든 그들은 자신이 이익을 위해 무언가를 해왔고 해나갈테니까요.  하지만 주고받은 이메일을 통해 명백하게 공개된 것들만으로도 한화의 프론트오피스가 별로 존중받기 어려운 태도를 협상에서 보여준 것은 사실 같아 보입니다. 

 


다시 한번 협상의 재구성 


나름 그럴듯한 소설을 한번 써 볼 수는 있겠습니다.  피에의 인스타그램이 재계약을 암시하는 메시지가 올라오고 몇 시간 후 구단이 재계약결렬을 최종발표한 12월8일에 벌어진 일에 대해서.


더이상 버텨봐야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피에 측은 11월28일 구단으로 받았던 1+1계약안에 대해 수락의사를 이메일로 전달합니다.  그와 거의 같은 시간 피에는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컴백을 암시하며 팬들의 열띤 환호를 받습니다.  


하지만 구단은 그 사이 이미 어깨문제든 괘씸죄든 어떤 이유로인가 재계약불가 쪽으로 입장을 바꾼 상태였으며 묵묵부답으로 피에 측이 1+1협상안을 거절해주길 내심 바라던 참이었습니다.  그러나 난감하게도 선수측으로부터 수정안 수용의사가 전해져온 겁니다.


별수없이 구단은 미뤄두었던 재계약불가 방침을 선수측에 통보하고 언론에도 이 사실을 서둘러 공표합니다.  실무자는 예의 그 "야신" 감독의 결정사항을 들어 정중한(?) 사과를 했습니다.  국내언론과 팬들에 대해서는 계약불발과 보류권 행사에 명분히 필요해졌기 때문에 피에 측이 "(처음에는) 2년계약을 강경하게 고집했다"는 어쨌든 사실이라 할 수 있던 협상과정 일부를 약간 포장해서 언론에 흘리며 사태를 마무리한게 아닐까요?


결과적으로 구단은 협상결렬의 책임을 피하는데 성공했고 또 보류권을 통해 피에의 타구단 계약을 묶을 명분도 얻었을 수 있습니다.  보너스로 얄미운 피에와 그의 에이전트에게 한방 먹이는데 성공했는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렇다고 다소 비겁해보이는 협상마무리 방법이 옳다 할 수 있을지 모르겠고 또 거절의 명분으로 팀의 감독을 그렇게 써먹었다는 것도 좀 씁슬하게 느껴지는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 최초의 글 중 김성근 감독 선임날짜가 11월10일로 설명된 것이 오류라서 이를 정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