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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LYSIS

김태균은 좋은 4번타자인가?

by 토아일당 2015. 11. 26.


한화 김태균은 리그 최고 타자 중 하나다.  복귀 첫해인 12년에는 타율1위(0.365) 13년에는 5위(0.319) 14년에는MVP 서건창 다음으로 2위(0.365)였다.  장타율도 모자랄게 없었다.   12년 리그 4위(0.536)를 시작으로 3년동안 탑10을 벗어난 적이 없다.  출루율이야말로 김태균의 독보적인 분야다.  3시즌 연속 출루율 1위였고 15년에도 테임즈의 괴물모드만 아니었다면 4연속 1위를 차지했을 것이다.    출루율과 장타율을 종합한 OPS 역시 당연히 최상위권인데 1위-4위-5위-5위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종종 논란에 시달린다.   홈런과 타점이 적다는 이유다.  부동의 4번타자 임에도 화끈한 한방이 아니라 꾸준한 안타와 출루가 두드러지는 그의 성향은 좀 갑갑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게다가 최하위를 전전한 팀 성적이 더해진 탓도 있다. 


야구통계에서 타자의 득점생산성에 대한 가장 객관적 지표는  wOBA이다.  불넷, 안타, 홈런 등의 타격기록에 득점가치에 해당하는 가중치를 곱해서 구하는데 김태균은 (스탯티즈 기준) wOBA는 0.446로 2012_2015 시즌을 소화한 선수 중 전체 2위이다.    결국 어떤 지표로 따진다 해도 최근 4년 동안 꾸준히 그보다 나은 성적을 냈다고 말할 수 있는 타자는 오직 박병호 뿐이다.


그렇다면 4번타자 김태균에 대한 영양가 논란은 단지 오해와 편견으로 비롯된 것일까?  많은 안타를 치고 많은 볼넷으로 출루했으니 그것으로 충분한 것일까?  하지만 타점을 부정확하고 무의미한 지표로 여기는 세이버메트릭스의 기준에서도 타순에 따른 역할과 효율성은 중요할 수 있다.


같은 안타라도 타순에 따라 가치가 다르다.


평균적으로 1루타 한 개의 득점가치는 0.496점이다.  그런데 어느 타순에서 나온 안타인지를 구분해서 보면 그 값이 서로 달라진다.  KBO 2010_2015 6시즌의 모든 타석결과를 통계적으로 분석해보면, 2번타자의 단타가 0.599점으로 가장 가치가 높고 7번타자가 0.396점으로 가장 낮다.  


2번타자 앞에는 출루와 주루능력이 좋은 1번타자가 있고 뒤에는 팀에서 가장 잘치는 3명의 타자가 있다.  따라서 같은 1루타라도 더 많은 점수로 연결된다.   반면 7번타자는 앞에 둔 주자도 적고 출루했다 해도 다음 타석의 동료들이 홈으로 불러줄 가능성이 낮다. 



홈런은 타순에 따라 큰 차이가 없지만 볼넷과 1루타는  그렇지 않다.  볼넷은 평균적으로 0.35점의 득점가치를 갖는다.  그런데 6번타자의 볼넷은 0.24점의 가치 밖에 없다.  반면 2번타자의 볼넷 득점가치는 0.48점이다.  4번타자 볼넷의 가치는 평균보다 약간 낮은 0.34점이다.  


안타와 달리 볼넷은 베이스가 채워진 경우를 빼면 주자를 진루시키지 못한다.  그래서 볼넷의 득점효과는 뒤에 나오는 타자의 능력에 달려있다.  하위타선이 시작되는 6번타자의 볼넷 가치가 가장 낮은 이유이다.   격차는 꽤 크다.  6번타자의 볼넷은 2번타자에 비해 득점효과에서 절반 밖에 안된다.  볼넷출루는 매우 중요한 공격옵션이지만 타순에 따라 효과가 크게 달랐다.   


대체로 출루능력은 다음에 나올 타자들의 장타율에 비례해서 효과가 커지고, 장타능력은 앞 타순 타자들의 출루율이 높을수록 그리고 타석 상황 아웃카운트가 많을수록 상대적 효과가 커진다.   


4번타자가 치는 홈런은 더 가치있을까?


김태균이 적은 홈런과 타점으로 인해 비난받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우선 타점은 타자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앞서 출루한 동료의 영향이 크고 홈런의 효과가 4번 타순에서 특별히 더 높지 않았다. 볼넷출루의 효과도 평균보다는 약간 낮지만 큰 차이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들이 느끼는 갑갑함이 그저 기분 탓은 아니었다.   리그전체가 아니라 지난 4년 동안의 한화 타선을 떼어놓고 보면 그럴만한 이유가 드러난다. 


한화 4번 타순에서 볼넷 1개의 득점효과는 0.25점이고 1루타 한개의 득점효과는 0.39점이다.  같은 기간 삼성과 비교하면 4번타자 위치에서 볼넷이 0.54점, 1루타가 0.62점이었다.  홈런이나 2루타에서는 큰 차이가 없지만 볼넷과 1루타는 차이가 크다. 



김태균은 4시즌 동안 한화의 4번타자로서  373개의 1루타와 322개의 볼넷을 기록했다.  그걸 통해서 한화 팀득점에 기여한 효과는 결과적으로 223점이 된다.   그런데 그가 삼성의 4번타자로서 똑같은 성적을 냈다면 팀득점 기여효과는 408점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팀 타선의 구성 때문에 생긴 격차다.   무려 185점 차이이고 시즌 당 46점 꼴이다.  


볼넷이 득점이 되기 위한 조건  


15시즌에는 좀 달라졌다.   볼넷의 효과는 여전히 평균보다 낮은 0.21점이지만 1루타의 효과는 0.68점으로 평균보다 오히려 높아졌다.  만약 그 전의 3년도 이와 같았다면 김태균이 만든 373개 안타,  322개 볼넷의 득점 효과는 223점이 아니라 322점이었을 것이다.


* 김태균이 거의 모든 경기에서 고정 4번타자로 출전한 것과 달리 정근우는 1번과 3번으로 나온 경우가 100타석 정도있다.


볼넷의 득점 효과는 대부분 뒤에 나올 타자에게 달렸고 1루타의 효과는 앞 타순 출루의 영향을 함께 받는다.   이용규와 정근우라는 수준급 테이블 세터가 타선에 가세하자 김태균의 1루타 득점효과가 급상승한 것이다.(0.39>0.68)  다만 뒤에서 받쳐주는 타자가 약하기 때문에 볼넷의 효과는 여전히 낮았다.   


김태균은 이론의 여지 없이 최고의 득점생산성을 가진 타자다.  동시에 한화팬들이 지난 4년 동안 그에게 느낀 갑갑함과 아쉬움도 근거는 있었다.  그의 안타와 볼넷이  결국 득점으로 연결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태균은 올 시즌 드디어 100타점+를 기록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개인성적으로 따지면 오히려 약간 하락한 시즌이다.  달라진 것은 김태균이 아니라 한화 타선이었던 것이다. 


김태균이 4번타자가 아니라면


김태균은 압도적인 거포라기 보다 많은 안타, 잦은 출루를 강점으로 한다.   그의 출루능력은 당내 최고를 넘어 역대 최고수준이다.  전설의 타격천재 장효조 말고 역사상 어떤 타자도 그보다 나은 출루능력을 보인 적이 없다.  그렇다면 위의 분석에서 눈여겨 봐야 할 것이 생긴다.   2번타자의 특성이다.  


지난 6시즌 평균 기준으로  2번타순의 볼넷, 1루타 득점효과는 0.48점 0.60점으로 모든 타순 중 가장 높다.  반면 4번은 0.34점 0.49점 이다.   똑같이 한 시즌 동안 120개의 1루타를 치고 80개의 볼넷을 얻는다고 해도 2번타자로 나왔을 경우 팀득점은 110점이 늘어는데 4번타자로 나오면 86점 밖에 늘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24점 차이인데 승수로 2승+, 승차로 거의 5경기 차이다.  똑같은 선수를 단지 위치만 바꿔서 생기는 효과다.  (그로인해 4번이 약해지기 때문에 효과가 실제로는 약간 반감된다)   


그런데 김태균 정도의 타자를 2번에 배치하는 것은 확실히 낯설다.  누군가는 4번타자의 상징성이나 간판타자의 자존심 같은 것을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난 십여년 사이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변화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LA에인젤스의 마이크 트라웃과 신시네티 레즈의 조이보토는 팀 내 간판타자일 뿐 아니라 리그최고의 타자다.  둘 다 2번타자로 자주 나온다.  조이보토는 김태균과 비슷한 유형이다.  장타력도 가졌지만 전형적인 슬러거 아니라 고타율의 출루머신이다.  게다가 1루수이고 심지어 무겁고 느린 것 조차 닮았다.  하지만 4번타자가 아니라 2번타자로 나오면서 자신의 능력을 가장 효율적으로 득점으로 연결시킨다.


이제 곧 FA시장이 열린다.  이미 믿을만한 4번타자를 가진 팀은 그런 이유로 빠르고 센스있는 테이블세터를 찾고 있을까?  하지만 준수한 타율의 출루형 타자를 찾는게 낫다.   김태균이 당연히 4번타자이기 떄문에 한화는 굳이 4번타자감에 관심을 둘 필요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  장타에 강점이 있는 선수가 뒤를 받쳐주고 김태균이 전진배치될 때 그가 가진 능력이 극대화될 수 있다.  


소위 “머니볼”이란, 숫자의 마법이 아니다.    더 많은 데이터와 새로운 정보를 이용해서 “남들보다 빨리 남들은 모르는” 전략을 사용하는 것이다.  한때는 OPS가 그랬고 다음으로 수비시프트가 그랬고 타순의 재배치 역시 그런 것 중 하나다.   


KBO에서의 타선전략은 MLB에서 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이미 “강한 2번, 최고의 3번”이  일반화된 MLB에 비해 기대할 수 있는 ‘비대칭 이득’이 휠씬 더 크다.  선수층이 얇고 트레이드시장이 경직되어있는 리그특성 상 신규 영입 없이도 차이를 만들 수 있는 전략이기 때문에도 그렇다. 


2015년 선발타순별 OPS 기준으로 2번타자의 평균은 9명 중 7번째였다.  (7번타자보다 낮았다)  종종 강한 2번타자를 말하는 이도 있지만 KBO 리그에서 강한 2번타자가 타석에 선 적은 별로 없다.  진루타 스페셜리스트들이 그 자리에 배치되는 동안 뛰어난 출루능력을 가진 타자들은 다른 타순에서 가진 능력을 낭비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벤치와 프런트는 선수가 없다는 아쉬움을 토로하고 팬들은 패배의 한숨을 쉬고 있었을 것이다.  더 많은 승리를 원한다면 주목해야 하는 것은 4번타자 김태균의 적은 홈런수가 아니다.  오히려 그 자리에서 낭비되고 있는 역대 최강의 출루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