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출간된 [프로야구 2016 스카우팅리포트]에 이성훈님이 "외국인타자의 패스트볼 대응능력"에 관한 글이 있습니다. KBO리그는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패스트볼 구사비율이 높습니다. 그리고 같은 패스트볼이라도 투심성 패스트볼이나 커터성 패스트볼이 미국 특히 MLB와 비교해서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패스트볼에 강점을 가진 유형의 타자들이 한국에 왔을 때 자신의 미국시절성적보다 좀더 나은 퍼포먼스를 낼 수 있다는 "가설"입니다.
보통 음식이나 선후배관계, 락커룸 분위기 같은 것들을 들어 외국인선수의 "적응"을 논하는 것에 비하면 휠씬 분석적이고 또 흥미로운 발상입니다. 하긴, 어떤 투수가 한국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이유를 그저 굴비를 좋아하는 식성 때문이라 해석하는 것은 좀 이상하죠.
한국이나 미국이나 같은 야구를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서로 다른 야구를 하는 면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특정 구종에 대한 대응능력도 그중 하나일 수 있습니다.
위에 붙은 차트는, 2015년 미국 TripleA 레벨 리그 중 멕시코 리그를 제외하고 IL 과 PCL 경기데이터를 이용해서, 직커슬체 4대 구종에 대한 타자대응을 분석한 결과입니다. 세가지입니다.
헛스윙Whiff% 는 구위를 측정하는 가장 나은 지표입니다. 동시에 그 구종에 대한 타자의 컨택능력도 됩니다. Ball%는 그 구종에 대한 그 리그 투수들의 평균적인 제구능력을 나타내고, 마지막 Runs on 100InPlay는 100개의 인플레이 타구에 대한 런밸류 입니다. 즉 타자들이 그 구종을 100번 타격하면 몇점이 만들어지나를 알 수 있습니다.
볼%는 KBO와 AAA 모두 구종별로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반면 헛스윙%와 인플레이 타구의 득점생산은 좀 차이가 납니다.
KBO타자들은 패스트볼에 대한 헛스윙%는 AAA와 거의 비슷했지만 3개의 변화구에 대해서는 헛스윙%가 상당히 낮았습니다. (여기서 헛스윙%는 스윙시도 대비 헛스윙입니다) 한국타자들이 전반적으로 헛스윙 빈도가 낮긴 하지만 그건 주로 패스트볼에 대한 결과가 아니라 변화구에 대한 결과였다는 뜻입니다.
가장 인상적인 차이는 커브볼에 대한 인플레이 득점생산력 차이입니다. 구종에 따라 KBO타자들의 득점생산/100인플레이타구 가 높기도 하고 낮기도 하지만 --- 유독 커브볼에 대해서는 AAA 타자들이 100타구 당 28.2점을 득점할 때 KBO 타자들은 30.8점을 득점합니다. (슬라이더의 경우 차이가 휠씬 작지만 거꾸로 KBO타자의 득점생산성이 좀더 낮습니다)
한국 타자들의 커브볼 대응능력이 유독 좋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트리플A 투수들의 커브 구위와 KBO투수들보다 더 좋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혹시 후자의 경우라면 이로부터 우리는 어떤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요?
칼-엘(지구식 이름은 클라크 캔트. 역할은 수퍼맨)은 자신의 고향 크립톤 별에서는 나름 평범한 양민입니다. 하지만 지구에 오면 수퍼맨이 되죠. 미국 외야수의 기본사양 어깨가 한국에 오면 리그급 강견으로 격상되기도 합니다. 외국인선수를 뽑을 때 그쪽에서도 잘나가는 선수들이면 금상첨화지만 대체로 비싸고 희소합니다. 하지만 그쪽에서는 평범한 선수에 불과하지만 한국에 오면 굉징한 선수가 되는 비결이 있다면 그야말로 외국인스카우트에겐 그보다 좋은 일이 없겠죠.
앞서 말한 것처럼, 두 리그에서 커브볼에 대한 평균적 결과차이가 투수들의 평균적인 커브볼 구사능력에서 온 것이라면 미국 AAA 레벨의 평균적 커브가 한국에 왔을 때 더 좋은 결과를 얻을 개연성이 있습니다. 미국 타자들을 상대로는 그저 평균적인 결과 밖에 얻지 못한 투수라도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더 위력적인 커브로 포지셔닝될 개성성이죠. 지구에 온 크립톤별 양민처럼.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커브구사율이 높은 투수들은 AAA보다 KBO에서 더 좋은 결과를 얻을지도 모릅니다. 또 한국국 타자들을 상대할 때 커브구사율을 높이는 것으로 재미를 볼 수도 있겠죠. 물론 이것은 가설입니다. 그리고 AAA와 KBO의 리그평균 구종별 피치밸류 차이를, 타자들의 좋은 대응능력이 아니라 투수들의 구위덕분이라 해석하는 전제가 있어야 합니다.
좀더 타당한 결론을 얻기 위해서는 좀더 많은 데이터를 필요로 합니다. 외국인 투수의 커브밸류가 한국에서 좀더 나아졌는가 아닌가. 또는 커브의 회전수, 브레이크 같은 물리적 성질이 어떻게 다른가. 재미있는 주제가 될 듯 합니다. 외국인 선수 스카우팅은 여전히 중요하고 참고해볼 만한 데이터들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으니까요. AAA에서 커브볼에 아예 손을 못대던 윌린 로사리오 같은 타자들이 한국 투수들의 커브볼을 어찌 공략하는지 두고 보는 것도 재미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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