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계원 kt 작전 코치는 제리 로이스터 감독 시절 롯데 3루 코치를 지냈다. 롯데 팬들에게 표적이 됐다. 3루 코치는 3루를 밟은 주자에게 홈으로 뛸지 말지 신호를 보내는 역할을 한다. 그가 팔을 돌린 뒤 홈에서 횡사하는 주자가 많았다.
짜릿한 득점 순간이 허망하게 끝나는 순간 관중의 분노는 3루 코치에게 향한다. 박 코치도 고충이 있었다. 로이스터는 공격적인 주루를 강조하는 감독. ‘아웃 타이밍’이라고 판단해 팔을 돌리지 않으면 나중에 감독으로부터 큰 질책이 떨어졌다. 울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2016시즌 많은 팀이 ‘스피드’를 화두로 내세웠다. ‘한 베이스 더 가는’ 야구를 강조한다. 공격적인 주루플레이는 필연적으로 아웃의 위험을 안고 있다. 과감한 주루와 위험한 주루에 대한 판단은 비단 3루 코치만의 몫이 아니다.
그렇다면 주루에 대한 판단은 어떻게 해야 할까. 결과를 놓고 하는 판단은 답이 아닐 것이다. 결국, 야구의 많은 부분이 그렇듯 확률의 문제다.
아웃타이밍이라도 상대 실수로 세이프가 되기도 하고, 세이프 타이밍에서 주자가 넘어지는 등은 예측이 불가한 변수다. 결국 확률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이때, 성공 가능성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손익분기점’이다.
1000원을 걸고 이기면 2000원을 받고, 지면 0원이 되는 승부에서 승률이 50%가 넘는다면 시도하는 게 이익이다. 그런데 2000원이 아닌 4000원을 받는 조건이라면 승률이 25%가 넘을 때부터 승부를 하는 게 이익이다. 확률적 선택의 손익분기점이다. 주루플레이에서도 이런 설명이 가능하다.
1사 2루에 단타가 나오면 주자는 일단 3루까지 진루하고 타자 주자는 1루에 도착해서 1사 1·3루가 된다. 3루 코치는 이때 결정을 내려야 한다.
KBO리그 2010~2015년 기록을 분석하면 이 상황의 ‘기대득점’은 1.24점이다. 1사 1·3루 상황은 5111번이었고, 이후 득점이 6354점이었다. 홈 승부가 성공하면 한 점이 들어오고 1사 1루가 된다. 1사 1루의 기대득점은 0.57점이다. 이미 들어온 1점과 더하면 성공의 기댓값은 1.57점이 된다.(<표1> 참조)
1.24점 상황이 1.57점 상황으로 변한다면 +0.33점 이익이다. 홈 승부가 실패하면 0득점에 2사 1루(기대득점 0.24점)로 변한다. 실패의 기댓값은 -1.00점이 된다.
여기에서 손익분기점이 되는 확률은 1/(1-성공기댓값/실패기댓값)으로 계산된다. 즉 76%다. 3루 코치는 3루로 뛰어오고 있는 주자가 홈에서 세이프될 확률이 76%가 넘는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팔을 돌려야 한다. 아니라면 멈춰야 한다. 76%라면 뭔가 복잡한 것 같지만, 웬만해선 모험을 걸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다. 3루 코치라면 대개 이런 판단력을 갖고 있다.
손익분기점은 성공의 이익이 클수록, 실패의 손실이 적을수록, 낮아진다. 위의 방식으로 계산하면 1사 3루에서 외야플라이가 나왔을 때 태그업플레이의 손익분기점 확률은 34%다. 손익분기점이 낮은 이유는 실패의 결과로 잃어버릴 2사 3루의 ‘본전’이 대단치 않기 때문이다.
기대득점 0.38점으로, 이닝 첫 타자가 타석에 섰을 때 기대득점 0.54점보다 오히려 낮다. 따라서 1사에서 태그업플레이는 짧은 좌익수 플라이 때도 과감하게 해야 한다. 수식으로 계산하지 않아도 야구선수들은 경험적으로 이를 알고 있다.
하지만 확률 계산은 모든 상황에서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표2>는 각 상황에서 홈 승부 손익분기점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준다.
손익분기점 확률이 절대불변이 아니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상대 투수가 강할수록, 타석에 설 우리 타자가 약할수록 주루의 손익분기점은 낮아진다. 타자의 아웃 확률이 높아지므로 주자는 열심히 뛰어야 한다. 득점이 어려운 조건일수록 공격적 주루의 가치가 크다.
그래서 지난해보다 타선이 약화된 삼성의 류중일 감독, 넥센의 염경엽 감독이 주루플레이를 강조한다. 잠실야구장이라는 ‘타자의 무덤’을 사용하는 두산이 ‘육상부’로 방향을 잡은 건 그래서 현명하다.
그런데, 야구는 상황이 이어지는 경기다. 승부하지 않고 다음 기회를 기다렸을 때 어떤 결과가 나왔느냐까지 봐야 한다.
불확실한 홈승부를 포기한 210번의 상황에서 이후 득점에 성공한 사례는 59번 뿐이었다. 평균득점 0.5점에 득점확률 28.1%였다. 두 번에 한 번, 아니 세 번에 한 번 꼴로 세이프됐어도 승부를 하는 게 나았다.
1점이 절실하게 필요한 박빙 승부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KBO리그 6년치 데이터에서 3루 주자가 승부를 포기한 상황 중 50%가 1점 차 박빙 승부였다. 홈 승부를 시도한 경우는 15%만 1점 차였다.
세 번 팔을 돌려 두 번 3루 주자를 홈에서 아웃시킨 3루 코치라면 ‘공적 1호’가 되기 충분하다. 하지만 확률적으로 더 나은 상황이라는 점은 통계적으로 명백하다. 여기에서 한국 야구의 3루 코치는 ‘보수적’이라는 판단이 가능하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큰 것으로 보인다.
분석을 해 보니 제리 로이스터가 왜 박 코치에게 화를 냈는지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됐다. 그의 눈에 한국 코치는 실패를 두려워 해 승부를 회피하면서 팀 승리 확률을 깎아먹는다고 보였을 것이다. 물론, 로이스터는 이런 통계 분석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불확실성 조건에서 ‘선택하지 않음’도 결국 선택이다. 확실하지 않다고 무조건 주자를 멈추는 것은 ‘신중’이 아니라 ‘무책임’이다. 반대로 주자가 빠르다고 해서 무조건 팔을 돌리는 건 ‘과감’이 아닌 ‘무모’다.
주자의 스피드, 상대 외야수의 송구 능력 등은 주루플레이의 ‘성공 확률’을 결정짓는 요소다. 그 확률치는 아마 코치들마다 다를 것이다. 중요한 건 확률 자체보다 주어진 상황의 손익분기점을 찾는 것이다.
어렵게 느껴진다면, 익숙한 표현으로 대신할 수 있다. “상황에 맞는 플레이를 하라”. 통계 분석은 그 플레이가 어떤 것인지를 조금 더 자세하게 보여주는 유용함이 있다.
*** 일간스포츠 연재했던 칼럼 [베이스볼인플레이] - 2016년 4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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