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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느슨해보이는 경기다. 3시간 여의 경기 내내 선수들 절반은 그라운드에서 느릿느릿 서성대고 심지어 나머지 절반은 그늘진 곳에 앉아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엘지 트윈스와 넥센 히어로즈의 플레이오프 1차전 5회초 승부가 그랬다.


선취점은 엘지의 몫이었다. 이날의 히어로 김용의가 선두타자 안타로 출루했고 진루타가 된 이천웅의 땅볼과 박용택의 우전 적시타로 쉽게 앞서나갔다. 하지만 1점으로 장담할 수 있는 승부란 야구에 없다. 선발투수 소사는 2번의 만루위기를 겨우 버티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날의 승부처 5회가 시작된다.


엘지는 무사 상황에서 2명의 주자가 출루하고 보내기번트와 김용의의 적시 2루타로 스코어를 3-0으로 벌렸다. 승기를 잡았지만 여전히 안심하긴 이르다. 그리고 박용택이 타석에 등장한다.


0.078초

맥그레거가 박용택에게 던진 초구는 143kmh 커터였다. 이 공이 투수의 손끝을 떠나 홈플레이트를 통과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0.423초다. 두번째 공은 139kmh 슬라이더. 0.437초만에 홈플레이트에 도착한다. 0.014초 차이가 난다. 그 전 타석 이천웅을 삼진으로 잡아낸 커브는 128kmh였다. 0.478초가 걸린다. 이날 맥그레거가 던진 가장 빠른 공은 4회초 오지환에게 던진 5구째 151km 패스트볼이다. 0.401초만에 도착한다. 가장 느린 공과 가장 빠른 공의 구속 차이는 23km다. 하지만 실제로는 불과 0.078초의 시간에 불과하다.


하지만 승부에서는 이 정도의 차이로 타이밍을 뺏고 빼앗긴다. 그 차이를 놓친 앞타석의 이천웅은 1사2루의 기회를 앞에 두고 삼진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박용택은 맥그레거의 2구를 때려 1-2루간을 뚫고 우익수 앞 안타를 만들었다.


3.13초

박용택의 타구가 넥센 우익수 이택근의 글러브에 포구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3.13초였다. 2아웃이었기 때문에 곧바로 스타트한 김용의는 이와 거의 같은 타이밍에 3루를 돌았다. 정확히 포구시간으로부터 0.13초 후이고 재빠른 송구동작을 거친 이택근의 홈송구가 그의 손끝을 떠나기 0.42초 전이다. 


주자를 잡아내기 위한 송구가 홈플레이트로 비행을 시작한지 0.15초 후 타자주자 박용택은 1루에 도착한다. 그리고 이택근의 송구방향을 확인한 후 다시 2루로 달리기 시작했다.


2.18초

우익수 이택근의 송구가 포수 박동원에게 정확하게 도착하는데 2.18초가 걸렸다. 시속 132kmh 정도로 날아온 셈이다. 또 타구가 박용택의 배트를 떠난 시점으로부터는 6.26초 지난 시점이다. 아직 김용의는 도착하지 못했다. 홈플레이트를 앞에 두고 막 슬라이딩을 시작한 상태다. 하지만 포수 박동원이 몸을 돌려 태그플레이를 하는 것보다는 먼저 홈터치에 성공했다. 득점 성공이다. 스코어는 4-0이 되었다. 타격 후 6.42초 후다. 


그 사이 박용택은 2루에 도착했다. 외야수의 송구가 홈플레이를 향하자 다소 속도를 늦추고 천천히 걸어들어간다. 이 모든 플레이가 완성되는데 걸린 시간은 8.5초다.


1분 22초

이제 한동안 그라운드 안에서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야구에서 이런 상태를 ‘볼데드’라고 부른다. 다음 타석에 타자가 들어서고 첫번째 투구가 시작될 때까지 1분22초가 흘렀다. 플레이는 멈춰있었지만 그렇다고 야구도 멈춘 것은 아니었다. 


맥그레거는 정상호에게 낮은 커터를 던져서 맞았다. 김용의에게는 몸쪽 패스트볼을 맞았다. 둘 다 2스트라이크를 먼저 잡은 후에 이어진 뼈아픈 결과다. 박용택에게는 2구째 낮은 슬라이더를 맞았다. 


다음타자는 히메네스다. 히메네스는 빠른 공에 강하다. 올시즌 148kmh 이상의 공에 장타율 0.690을 기록하고 있다. 멈춰있던 플레이가 다시 시작된다.  


야구의 속도는 종종 생각의 속도보다 빠르다. 투수가 던진 서로 다른 구종이 만드는 0.078초의 타이밍 차이를 인간이 의식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훈련된 몸의 반응일 뿐이다. 또는 앞으로 벌어질 플레이의 속도를 생각이 미리 따라 잡아야 한다. 최후의 4할타자 테드 윌리엄스는 이렇게 말했다. "타격의 절반은 머리로 하는 것이다"


주자가 타구의 방향과 수비수의 움직임으로부터 주루의 방향과 속도를 판단하는 것도 비슷하다. 불과 영점 몇 초 안에 판단과 동작이 이루어진다. 또는 습관처럼 훈련된 플레이가 그 순간 실행된다. 플레이가 멈춰있을 때 생각의 시간이 흐르고 플레이가 시작되면 그 속도는 생각을 앞질러서 달린다. 


득점에 성공한 김용의의 홈터치는 포수 박동원의 태그플레이보다 불과 0.1초 빨리 이루어졌을 뿐이다. 그 결과가 3-0에서 1점을 더 벌리며 엘지가 승세를 이어나갔던 것이고, 만약 그 0.1초를 잃었다면 상대에게 반격의 기회를 주게 됐을 것이다.   

 

야구는 느슨한 경기가 아니다. 좀 다른 시간을 가진 경기일 뿐이다. 엘지는 그 플레이에서 단 0.1초를 앞섰다. 하지만 그 차이가 플레이오프 1차전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네이버 2016PS 칼럼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540&aid=000000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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