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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2016PS 칼럼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540&aid=0000000004



1득점 경기였다. 하지만 지루한 순간은 없었다. 오히려 반대다. 치열한 난타전이었다해도 이만큼의 박진감을 뿜어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둘 중 한팀에게 이 경기가 시즌 최종전이 된다는 절박함 때문만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명승부였다.  

 

기아 타선의 유일한 안타가 나온 것은 6회초였다. 브렛필은 1사 후 2루타로 단숨에 스코어링 포지션을 차지한다. 다음 타석 나지완의 타구는 140.7km의 속도로 날아갔다. 아주 강한 타구는 아니다. 하지만 타구각 10.8도 타구방향 -11.3도의 궤적을 그렸다. 타구각 10.8도의 공은 지면에 낮게 깔려 날아가기 때문에 내야를 빠져나가기 쉽다. 그라운드는 2루를 중심으로 좌우 45도 각도로 펼쳐져 있다. 3루는 -45도 방향, 1루가 +45도 방향이다. -11.3도는 2루베이스 약간 왼쪽 중견수 방향을 향한다. 

 

거기는 유격수 오지환의 구역이다. 지난 경기, 그의 결정적 실책으로 팀은 패배했고 엘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 어드밴티지는 무효가 되었다. 한동안 잊혀졌던 그의 별명이 지난 하루동안 수도 없이 불리던 와중이다. 그래도 오지환은 몸을 날렸고 튀어오른 타구는 글러브에 걸렸다. 결과적으로 팀은 실점없이 이닝을 마칠 수 있었다. 

 

야구에는 늘 의외성이 있다. 실력보다 행운과 불운이 승부를 지배하는 경우도 많다. 잘맞은 타구가 늘 안타가 되지는 않으며 결정적 득점이 빚맞은 타구로 만들어지는 장면도 흔하다. 나지완의 타구는 행운이 아직은 기아 편에 있음을 말한다. 지난 2년 동안의 KBO 타구추적 데이터에 따르면 그와 같은 속도, 각도, 방향의 타구 68.4%는 안타였다. 더구나 주자가 2루에 있었다. 선취점은 1차전 승리로 기세를 타고 있던 기아에게 다음 라운드로 가는 유력한 경로를 허락했을 것이다.

 

144경기 정규리그에서 오늘의 불운은 내일의 행운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 하지만 가을은 다르다. 그저 불운이었다해도 승부가 정해지면 내일은 오지 않는다.  

 

오지환의 수퍼캐치는 32:68로 불리했던 승부의 확률을 되찾아 온 것이다. 1:0 승부였음에도 치열한 난타전의 박진감이 이어진 것은 이런 호수비의 연속 때문이었다. 이 경기에서 팬들 기억에 더 강하게 남은 것은 아마도 상대 타선을 각각 0점, 1점으로 억제한 투수의 피칭보다 견고함을 넘어 화려함을 느끼게 해준 양팀 야수들의 수퍼캐치이다.  

 

기아-엘지 와일드카드 2차전의 히어로는 어느 한 선수라기보다 '수비 그 자체'였다. 그런데 수퍼캐치란 역설적으로 안타에 근접한, 치명적이고 강한 타구들이 있었음을 반증한다. 때문에 수퍼캐치에 걸려 그저 평범한 아웃카운트 한개로 기록된 '강하고 치명적인 타구'는 이날 경기의 안티-히어로다. 그래서 그라운드의 빈틈을 노리며 가장 날카롭게 날아갔던 12개의 타구에 대해 좀더 알아보려 한다. 그것들은 수퍼캐치의 반대편에 있던, 또다른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6회말 채은성이 강하게 당겨친 타구는 3루 방향으로 총알같이 날아갔다. 이 타구에 대한 공식기록은 ‘수비실책’이다. 이범호가 공을 제대로 포구하지 못하고 뒤로 빠트렸기 때문이다. 실책이란 수비수가 마땅히 아웃처리해야 할 타구를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타구는 171.3km로 날아간 경기 최고속 타구였다.  


땅볼이라 해도 이정도 속도의 타구 평균 루타수는 0.727이다. 행운과 수비의 영향으로 하나 하나의 타구결과는 알 수 없지만 예를들어 이와 같은 타구 100개를 때리면 0.727의 장타율이 나온다는 뜻이다. 


반면 스코어시트에 승리타점과 함께 기록된 9회말 김용의 희생플라이는 타구속도 136km 타구각도 26.9도로 아주 평범했다. 이런 타구가 안타가 되는 경우는 8%에 불과하다. 끝내기 패배를 막기 위한 전진수비가 아니었다면 그저 평범한 플라이아웃일 확률이 92%라는 뜻이다. 


타구의 물리적 특성은 3가지다. 속도, 각도, 방향. 각 타구로 인한 결과는 수비위치나 수비수의 퍼포먼스에 의해 갈릴 수 있지만 통계적으로 특정 속도x각도x방향의 조합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평균적 타격결과를 계산할 수 있다. 그것이 흔히 말하는 ‘타구 질’의 객관적 지표가 될 수 있다. 



이상적인 타구각도는 대략 15도도에서 35도 사이다. 150km이상의 타구가 이 각도로 날아가면 장타율 1.467를 기대할 수 있을 정도다. 대신 이보다 타구각이 높으면 체공시간이 길어지면서 플라이아웃이 되기 쉽고, 이보다 타구각이 낮으면 내야를 벗어나지 못하는 땅볼아웃이 되곤 한다.  



타구각도 만큼 중요한 것이 타구속도다. 15도-35도가 이상적 타구각이라 해도 타구속도 150km이하일 때 평균장타율은 0.508 에 그친다.  -15도에서 +15도 사이의 타구는 대체로 땅볼이 되는데 타구속도 150km이상일 경우 장타율 0.729 을 기대할 수 있다. 대신 땅볼 타구각이면서 타구속도가 이보다 느리면 평균장타율 0.408에 그친다. 150km이하의 타구속도에서 35도 이상으로 타구각이 높으면 장타율 0.332 로 더 낮아진다.


 

타구속도와 타구각도의 효율성을 고려하면 특정한 타구가 얼만큼의 객관적 가치를 가지는지 계산할 수 있다. 이렇게 판단하면 최고는 9회말 서상우의 안타였다. 앞 타석 문선재의 보내기번트 실패로 팀의 득점기회가 무산되기 직전, 끝내기 희생플라이 주인공 김용의에게 타석을 이어준 플레이기도 하다.    

 

162.3km의 속도로 11.7도 타구각을 이루며 날아간 서상우의 타구는 장타율 1.121을 기대할 수 있을 정도다. 이날 경기 중반 무렵 인상적인 장면이 5회초 기아 서동욱의 우측 폴대를 스치는 파울 홈런이었는데 그때의 타구속도가 157.7km 타구각도 28.1도이다. 162.3km의 속도는 타구각과 방향만 맞으면 언제라도 담장 너머로 공을 날려보낼 수 있다. 다만 서상우의 타구는 11.7도의 낮은 탄도로 인해 보통 외야수 사이를 꿰뚫은 2루타가 될 가능성이 높은 타입이다. 

 

두번째로 가치있는 타구는 5회초 김주찬이 만들었다. 몸에맞는공으로 선두타자 출루했던 노수광을 2루에 두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공은 중견수 정면으로 치우쳐 문선재의 호수비에 걸린다. 김주찬은 바로 다음 이닝 수비수로서 또다른 수퍼캐치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가 전력질주 후 넘어지며 잡아냈던 5회말 박용택의 플라이볼이 0.789의 장타율을 기대할 수 있는 타구였기 때문이다.  

 

세번째는 8회말 노수광의 또다른 수퍼캐치에 걸린 양석환의 타구다. 기대루타수 또는 평균장타율 1.002다. 1루타로 계산하면 100% 라는 것이고 2루타로 계산하면 50% 확률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안타가 된 것은 정작 타구가치에서 4번째에 불과했던 6회초 오지환의 타구부터다. 앞에서 소개한 12개의 타구는 모두 타구속도 150km를 넘겼고 비교적 효과적인 타구각을 이루며 그라운드로 향한 것들이다. 하지만 실제로 안타가 된 것은 그 절반인 6개에 불과하다. 나머지 6개는 수퍼캐치로 지워졌다. 스코어시트에는 그저 다를 바 없는 범타로 기록될 뿐이다.  

 

그런데 이 경기에 의미있는 기록으로 남지 못한 플레이가 하나 더 있다.  9회말 김용의의 플라이볼을 쫓던 기아 중견수의 수비다.  

 

1사 만루상황을 무실점으로 막아야 다음 이닝을 맞이할 수 있던 기아의 외야수는 바짝 전진수비 중이었다. 그리고 김용의의 타구가 중견수 키를 넘길 듯 날아갔다. 최소 희생플라이가 확실했고 모두가 경기는 끝났다고 느꼈다. 하지만 김호령은 그 타구를 악착같이 쫓아가 잡아냈다. 그리고 지체없이 홈승부를 위한 중계플레이를 이어갔다.   

 

아마 부질없는 일이다. 하지만 무의미한 일은 아니었다. 아주 희박한 확률이지만 기회가 남아있었다. 혹시 주자가 태그업에 소홀했거나 다음 베이스를 밟지 않는다면 어필플레이의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날 경기에는 여러개의 '더 캐치'가 있었다. 수비란 무엇인지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증명하고 과시했다. 그런데 경기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을 기아 중견수 김호령의 플레이는 어쩌면 '더 캐치' 이상의 '더 플레이'일지도 모른다. 야구의 가장 중요한 본질이 “끝날 때 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두 팀이 보여준 야구의 매력은 승부의 결정 그 이상에 걸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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